'-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59)

― ‘아내의 추천’, ‘사랑의 빚’, ‘내복의 계절’ 다듬기

등록 2009.02.13 20:00수정 2009.02.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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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아내의 추천, 누나의 권유

 

.. 〈인생은 아름다워〉는 아내의 추천으로 결혼 전에 함께 봤고,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누나의 권유로 감옥에서 봤습니다 ..  《안재구,안영민-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2003) 49쪽

 

 “결혼(結婚) 전(前)에”는 “혼인하기 앞서”나 “같이 살기 앞서”로 다듬습니다. ‘추천(推薦)’은 곧잘 쓰는 말인데 ‘(무엇)하라고 하다’쯤으로 풀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내의 추천으로”에서는 “아내가 보자고 해서”나 “아내가 (나보고) 보라고 해서”로 풀어 줍니다. ‘권유(勸誘)’도 마찬가지로 “누나가 보라고 해서”나 “누나가 보라고 알려주어서”로 풀어 줍니다.

 

 ┌ 아내의 추천으로

 │→ 아내가 추천해서

 │→ 아내가 보자고 해서

 │→ 아내가 함께 보자고 해서

 │→ 아내가 나에게 보라고 해서

 │→ 아내가 좋은 영화라고 말해서

 │

 ├ 누나의 권유로

 │→ 누나가 권유해서

 │→ 누나가 보라고 해서

 │→ 누나가 좋은 영화라고 말해서

 └ …

 

 ‘추천’이나 ‘권유’라는 낱말을 살리고 싶다면, “아내가 추천해서”나 “누나가 권유해서”로는 적어 주어야 알맞습니다. 토씨 ‘-이/-가’를 넣을 자리에 ‘-의’를 넣었거든요. 다음으로, ‘추천’과 ‘권유’를 풀어내어 여러모로 달리 써 줄 수 있습니다. 아내가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는 보기글이니, 말 그대로 “아내가 같이 보자고 해서”로 적어도 됩니다. 또한, 누나가 그 영화가 좋으니 보라고 한 만큼 “누나가 좋다고 해서 보는 영화”라 적어 보고요.

 

 

ㄴ. 사랑의 빚을 진

 

.. 사랑의 빚을 진 나는 그 빚을 사랑으로써 갚아야 할 것이다 ..  《이원수-얘들아 내 얘기를》(웅진출판,1984) 105쪽

 

 날마다 이웃한테 빚을 지며 살다 보니,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입니다. 늘 지는 사랑빚을 사랑으로 갚을밖에 다른 길이 없는데, 제가 베풀거나 나눌 수 있는 사랑이란 참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 사랑의 빚을 진

 │

 │→ 사랑이라는 빚을 진

 │→ 사랑 빚을 진

 └ …

 

 “빚을 사랑으로써 갚아야 할 것이다”는 “빚을 사랑으로 갚아야 하리라”로 풀어 봅니다. “빚은 사랑으로 갚을 수 있다”로도 적어 봅니다. “빚은 사랑이어야 갚을 수 있느니”로도 적어 봅니다. “사랑이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로도 적어 보고요.

 

 

ㄷ. 내복의 계절

 

..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갔다. 이제부터 내복의 계절이 시작되었다고 엄마가 말했다 ..  《요안나 올레흐(글),윤지(그림)/이지원 옮김-열두 살의 판타스틱 사생활》(문학동네,2008) 189쪽

 

 ‘계절(季節)’은 ‘철’로 고치고, ‘시작(始作)되었다고’는 ‘되었다고’나 ‘맞이하게 되었다고’로 고쳐 줍니다.

 

 ┌ 내복의 계절이 시작되었다고

 │

 │→ 내복 입는 철이라고

 │→ 속속옷 입는 때라고

 │→ 속속옷을 입어야 한다고

 │→ 속속옷 입을 날이 되었다고

 └ …

 

 제가 사는 집은 겨울이면 으레 영 도 밑으로 떨어집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여태껏 달삯 내며 살았던 집 가운데 따뜻하다고 느꼈던 집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찌 살았고 지금도 어찌 사는가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제가 이러한 집들에 살기 앞서 이 집에서 살았던 사람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다들 참 용케 버티어 내는구나 싶고, 방에서도 두꺼운 겉옷 입고 이불 뒤집어쓰면서 손 호호 불어 녹이거나 주머니에 쑥 찔러넣고 살아냈을까 하고 헤아려 보곤 합니다. 차라리 바깥에서 돌아다닐 때에는 몸도 움직이니까 몸도 살지만, 집에서 집안일만 하면 몸이고 뼈고 다 얼어붙겠구나 싶습니다.

 

 글 한 줄을 쓰면서도 손가락이 얼어붙어서 두 손을 비비며 녹여야 합니다. 보일러를 잠깐잠깐 돌리면 엉덩이는 따뜻해지는데 방에 불기운이 감돌지 못합니다. 집임자가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달삯 받는 집을 이렇게 내버려 두고 우리들보고 돈들여 고쳐쓰라고 하는 셈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가난하니 이런 추위를 이겨내면서 ‘고달프면 돈벌어서 내 집 마련해서 꾸미셔!’ 하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 옷을 두껍게 껴입는 철

 ├ 옷을 두툼하게 껴입는 겨울

 ├ 속속옷 챙겨입는 겨울

 ├ 속속옷 단단히 챙겨입는 철

 └ …

 

 옆지기는 집에서 속속옷을 입습니다. 저는 속속옷을 안 입습니다. 추위를 덜 타서 그렇기도 하지만, 속속옷을 입으면 움직일 때 땀이 많이 나서 힘들기 때문입니다. 골목길 마실을 하든 자전거를 타든 몸에서 나는 땀으로 온몸이 흥건하게 젖으면 외려 고뿔에 걸리기 쉬우니 옷을 얇게 입곤 합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이렇게 썰렁하다 못해 추운 집에서는 웃도리를 두 벌 입는데, 이렇게 해도 추운 오늘 같은 날은 두꺼운 겉옷을 걸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야 이렁저렁 이 집에서 견디고 버틴다고 할 텐데,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가고 나서 이 집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 있다면, 그분들은 어떻게 견디거나 버틸는지, 아니면 두 손 들고 다른 데로 내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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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3 20:00ⓒ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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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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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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