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의 카드결제금이 내 발목 잡을 줄이야

[가정경제 119, 가계부를 구하라] 빚이 빚을 부른다

등록 2009.12.24 21:48수정 2010.02.04 15:05
0
원고료로 응원
"대학교 다닐 때 학교로 방문한 카드사 직원의 권유로 만들었던 신용카드였는데, 이게 제 인생의 발목을 잡을 줄은 미처 몰랐어요."

30대 중반의 연구생 L씨는 소액으로 시작된 카드 결제금액이 어느 순간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악성 채무가 된 경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

처음 부채를 만든 동기는 천차만별이나 도저히 갚아지지 않는 부채 문제로 상담을 신청하는 고객의 현재 문제점은 대동소이하다. 소액 부채 혹은 소액의 카드 결제가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나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 되어 버렸다는 공통점이 바로 그것이다.

"5000만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다 갚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어요. 결혼해서 첫 10년이 저축을 최대한 많이 할 수 있는 시기라는데 저희는 빚 갚느라 허송 세월 다 보냈어요. 이제 곧 두 아이가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닐 시기인데 그 돈들을 또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막막해요."

결혼 전에 별 생각 없이 만든 마이너스 통장 상환에 10년이나 되는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는 주부 P씨는 노후 자금은 고사하고 미래의 자녀 교육 자금 저축 때문에 벌써 근심이 가득하다.

부채를 다시 부채로 갚도록 만드는 토끼몰이식 금융 시스템도 문제지만, 부채라는 금융 비용이 발생하는 순간 미래의 재무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싹을 없애 버리는 데 더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어 향후 발생할 재무 목표마저 부채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인생이 시작될 소지가 크다.

카드 결제 금액, 사실은 미래 인생의 종자돈


a 신용카드. 신용카드.

신용카드. 신용카드. ⓒ 권우성


소비와 지출을 카드 결제로 대체하거나, 빚으로 돈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당장 내 돈이 들어가지 않아 공짜로 해결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상환해야 할 첫 결제 금액이 크지 않아 부담도 없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다.

상환해야 하는 돈은 매월 꼬박꼬박 발생하는 고정 비용인 데 반해 내 수입은 매월 변동한다(요즈음엔 일반 급여 생활자도 일 년 열두 달 똑같은 수입은 없다. 상여 혹은 휴가비, 명절 보너스와 소득 공제로 환급 받는 달까지 급여 통장을 찍어보면 매월 같은 급여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내 수입은 줄거나 혹은 중단될 위험도 있지만, 감당해야 하는 금융 비용은 내 수입의 변화에는 관심도 없다. 무섭고 차갑도록 통장의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금융 비용이라는 놈이다.

2009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의 개인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5배에 달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수입에서 각종 고정 비용을 제외하고 남는 돈이 내가 쓰거나 혹은 저축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인데 저축은 고사하고 쓸 수 있는 현금마저 말라 있는 상황이다. 10년 이후의 재무목표는 고사하고 내일 당장 써야 하는 돈도 카드로 결제하거나 빚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재무구조라는 뜻이다.

"잘 나갈 때는 한 달 내내 해외로 골프 여행을 다닌 적도 있었죠. 함께 일하던 협력 업체 임원이 빌려 달라는 500만원이 우리 가정을 저소득층으로 만들 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상상 못 했던 일입니다."

가족이 자활 급여와 각종 지원 서비스로 한 달 100여 만원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한 부모 가장의 지난 과거 이야기는 평범한 중산층에게 주는 뼈 아픈 교훈이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이나 금융 소외 계층은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편견이지만, 실질적으로 저소득층 대상의 재무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그들도 한때는 남부러울 것 없는 소비 생활과 여유를 즐기던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 현재의 고소득과 수입이 영원이 지속될 것이라는 자만과 가장 높은 수입이 들어오는 달에 맞춰진 지출과 소비 습관에 젖어 돈 관리를 게을리하고 수입 범위를 초과하는 지출에 대한 경각심을 놓치는 순간 삶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경험담이었다.

가정에 드리워지는 그늘은 단순히 금융 소외 계층으로 추락하는 것 외에도 가정 불화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자녀를 위한 교육 지출은 물론이고 매월의 식비와 생활비를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친지들이나 가족들의 도움도 시간이 지날수록 끊어지고 관계도 소원해지면서 자연스러이 사회생활이나 가족관계도 원활하지 않게 된다.

부채 불감증과 소비 사회

'디드로 효과'라는 말이 있다. 소비는 또 다른 소비를 부른다는 뜻인데 부채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외환 위기 때인 1998년 이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을 '융자'라는 용어로 사용하여 남들이 알게 될까 봐서 '쉬쉬' 하고 본인의 채무 상환 능력이나 신용 조사 등에 대한 말도 낯부끄러워 하던 시절이 있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부채도 자산이라 생각하며 부채를 레버리지로 활용한 자산 형성을 금융자본 시대에 발맞춰가는 일로 치부하게 되었다. 빚을 자산이라 생각하는 순간, 현재의 부채 외에 추가 부채 만드는 일에도 서슴없게 된다. 빚이라는 단어도 '신용'이라는 말로 대체하여 사용하다 보니 부채나 빚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나 거부감도 자연 줄어들어 버렸다.

부채 불감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일반적으로 2-3개의 카드를 사용하는 데다 부채 종류도 여기저기 발생시키다 보면 합산은커녕 어느 금융기관에서 얼마만큼의 부채를 몇 %의 이자로 상환해야 하는지조차 정리를 못 하고 있는 것이 일반 사람들이 부채에 대해서 갖는 자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출이나 소비 습관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정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어떻게 되겠지 하는 해이한 마음으로 돈 관리 습관을 고치지 않는다. 가계 재무 구조가 악순환의 늪으로 빠지면서 결국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 있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자

마약 중독 혹은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자가 회복 능력이 상실되어 결국 외부 도움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며 그 중독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채도 마찬가지다. 소액이라고 우습게 생각하거나 상환 비용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돈 관리를 소홀하게 하는 순간 부채를 부채로 갚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높다.

우리 사회는 그러나 이러한 경각심이나 위험성을 알리는 데에는 소홀하다. 오히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새로운 물건들과 그것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것으로 온 세상이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이다 보니 금융 회사에서는 모자라는 대출 실적을 보충하고자 카드 사용을 권고하고, 추가 대출 광고로 휴대폰을 못 살게 군다. 당장 결제해야 하는 카드 금액 혹은 상환해야 하는 금융 비용이 모자란다고 손쉬워 보이는 시중의 대출 상품을 활용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쪽 팔리고 아쉬운 소리를 할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해도 우선 가족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지인에게서 받은 빚이라고 소홀하게 다루지 말고 채무불이행자라는 오명을 만들지 않도록 갚아나갈 구체적인 방법도 반드시 제시하고 꼭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당장 내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빌린 지인의 돈이 사실은 지인이 미래에 써야 할 중요한 종자돈의 일부이기 때문에 반드시 갚아야 할 도덕적 의무감이 당신에게는 존재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주위 지인의 도움이지 예쁘고 상냥한 목소리로 대출을 권하는 상담원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목소리는 언제고 상환을 독촉하는 피하고 싶은 목소리로 변하게 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만 한다.


#가처분 소득 #디드로효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