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98)

― '친구의 집안', '친구의 탄식' 다듬기

등록 2010.04.16 18:45수정 2010.04.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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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친구의 집안

 

.. 그 친구의 집안은 광활한 포도밭과 포도주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36쪽

 

'광활(廣闊)한'은 '드넓은'이나 '넓디넓은'이나 '끝이 안 보이는'으로 다듬습니다. '포도주(-酒)'는 '포도술'로 손보고, '소유(所有)하고'는 '갖고'로 손봅니다.

 

 ┌ 친구(親舊)

 │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   - 친구를 사귀다 / 친구와 다투다

 │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   - 이 친구 많이 취했군 / 알고 봤더니 그 친구 재미있는 사람이더라고

 │

 ├ 그 친구의 집안은

 │→ 그 친구 집안은

 │→ 그 친구네 집안은

 │→ 그 아이 집안은

 │→ 그 아이네는

 └ …

 

토박이말 '동무'를 밀어낸 '친구'입니다. 제도권 정치꾼과 학교와 지식인이 밀어내고 짓밟은 토박이말 '동무'입니다. 요즈음 들어 조금씩 새힘을 얻기도 하고 차츰 살아나고 있으나, 워낙 정치힘과 교육힘 따위로 억누르던 '동무'였기 때문에, 쉽사리 '친구'를 털어낼 수 없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털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함께 써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 친구를 사귀다 → 동무를 사귀다

 └ 친구와 다투다 → 동무와 다투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손질하거나 북돋우는 매무새를 잃었습니다. 또는 우리 스스로 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라는 낱말이 없이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를 잃거나 잊었습니다. 또는, '친구' 사이에서 어떤 낱말로 마음과 마음이 오갔는가를 잃거나 잊었습니다.

 

'동무'며 '너나들이'며 '어깨동무'며 '이야기동무'며 '놀이동무'며 '일동무'며 모조리 잊었지만, '이이'나 '저이'나 '그이'라는 말까지 잃었습니다.

 

 ┌ 이 친구 많이 취했군 → 이 사람 많이 마셨군

 └ 그 친구 → 그 사람 / 그 녀석 / 그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잊거나 잃은 낱말은 '동무'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우리 말을 우리 손으로 허물어뜨렸습니다. 우리 머리와 마음으로 우리 말과 글을 끔찍하게 내쳤고, 모질게 깎아내렸으며, 무시무시하게 몰아세웠습니다.

 

우리가 우리 말을 배우는 까닭은 민족주의 때문이 아니며, 국수수의 때문도 아니고, 보수주의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 말을 배웁니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고 있으니, 우리가 넉넉히 주고받으면서 기쁨과 슬픔을 고루 나눌 만한 우리 말을 꾸준히 가다듬거나 추스릅니다. 우리 동무들하고 노닥거리기도 하고 바지런히 땀흘리기도 하며 싱그럽게 사랑을 나누기도 하니까, 저절로 우리 말을 할 뿐입니다. 우리 삶터를 한결 아름답게 키우고픈 마음에, 우리 넋을 북돋우고 우리 얼을 살찌우고자 우리 말을 헤아리고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볼 뿐이에요.

 

 ┌ 그 사람네 집안

 ├ 그쪽 집안

 ├ 그 집안

 ├ 그들

 └ …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잊지 않고, 오늘을 즐기면서 앞날을 맞이하려는 우리들이기에, 우리들 생각주머니를 고이 여미고자 우리 말을 여밉니다. 우리 스스로와 우리 앞사람과 우리 뒷사람 모두를 알뜰살뜰 잇는 고리임을 깨닫고,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돌볼 수 있기를 꿈꾸니, 우리 말을 사랑하고 우리 글을 아낍니다.

 

바깥나라한테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모자라나마 애써서 키워 보고픈 마음밭이기에, 우리 말을 갈고닦습니다. 누가 거저로 선물을 해 주어도 고맙지만, 엉성하거나 어수룩해도 우리 힘으로 일으켜세우는 문화며 예술이며 사회며 교육이며 정치며 경제일 때가 한결 보람이 있거든요. 처음부터 익숙하게 잘하는 일이란 없고, 처음부터 흐트러짐이나 모자람 없이 매끈하게 해내는 일이란 없으며, 처음부터 거룩하거나 훌륭하게 느껴질 만큼 펼쳐 보이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조금씩 애쓰고, 아직까지 서툴기에 꾸준히 힘쓰면서 가다듬습니다.

 

삶도 삶터도 그렇고, 말도 글도 그렇습니다. 생각과 넋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와 겨레라고 다르지 않으며, 학교와 일터와 집안도 똑같아요. 하나씩 매만집니다. 차근차근 어루만집니다. 지며리 손질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이면서, 똑같은 목숨붙이 하나이거든요.

 

 

ㄴ. 친구의 탄식

 

.. 동갑내기이자 나와 마찬가지로 미혼인 친구의 탄식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곽아람-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아트북스,2009) 145쪽

 

'미혼(未婚)인'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혼인을 안 한'이나 '혼인 생각이 없는'이나 '혼자 사는'이나 '홀로 지내는'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말 그대로 '혼인 안 한'이라고 합니다. 이를 한자말로 옮길 때에 '미혼'이 될 뿐입니다. 혼인을 했을 때에는 '혼인한'입니다. 이를 굳이 한자로 옮기며 '기혼(旣婚)'이라 하는데, 우리는 우리 깜냥껏 '혼인하다'라는 낱말을 알맞게 살려서 쓰면 좋습니다.

 

 ┌ 친구의 탄식 앞에서

 │

 │→ 친구가 탄식하는 앞에서

 │→ 동무가 쉬는 한숨을 들으며

 │→ 동무가 쉬는 한숨소리를 들으며

 │→ 동무가 내뱉는 말을 들으며

 │→ 동무가 뱉어내는 말을 듣고

 └ …

 

"한탄을 하며 한숨을 쉰다"는 뜻을 가리키는 한자말 '탄식(歎息)'입니다. '한탄(恨歎)'이란 "한숨을 쉬며 탄식함"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탄식 → 한탄 + 한숨'이요 '한탄 → 한숨 + 탄식'인 셈이니, 국어사전 말풀이가 말장난인 꼴입니다.

 

이 보기글을 쓰신 분이 "친구의 탄식"이라고 한 줄을 적기 앞서 국어사전을 한 번이라도 뒤적이면서 '탄식'이라는 한자말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살폈더라면 이런 말장난 한자말을 쓰지 않았을 텐데 싶으면서, 이런 말장난 한자말임을 알았다 할지라도 그예 '탄식'이라는 낱말을 붙잡았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저 '한숨' 한 마디면 넉넉하지만, 글쟁이라는 이름을 얻거나 얻으려는 분들은 '한숨' 한 마디로는 넉넉하지 않은 듯 여깁니다.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에 길에 몰아서 쉬는 숨이라 '한숨'이기에 '탄식'이든 '한탄'이든 하는 한자말을 쓰지 않더라도 말느낌을 살릴 수 있고 말맛을 드러낼 수 있으나, 이러한 말느낌과 말맛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합니다.

 

 ┌ 동무가 쏟아내는 말을 들으며

 ├ 동무가 한숨짓는 말을 들으며

 ├ 동무가 내뱉는 한숨을 들으며

 └ …

 

한숨을 쉴밖에 없는 우리네 글 문화라고 하겠습니다. 한숨만 푹푹 나오는 우리네 글쟁이 매무새라고 하겠습니다. 한숨이 가득한 우리네 지식 사회 얼거리라고 하겠습니다.

 

한숨짓는 나날이 이어지는 우리 삶터입니다. 한숨을 거두어들일 나날이 사라지지 않는 우리 삶자락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4.16 18:45ⓒ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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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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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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