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과 장기가 거래되는 도시...소년의 운명은?

[리뷰] 파올로 바치갈루피 <십 브레이커>

등록 2012.02.13 12:11수정 2012.02.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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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십 브레이커> 겉표지

<십 브레이커> 겉표지 ⓒ 랜덤하우스

SF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대부분 디스토피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가는데 인구는 계속 늘어난다.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와 기업은 싸움도 불사할테고 계속된 개발로 자연은 점점 황폐해진다. 자연이 파괴될수록 이상기온이 생겨나고 자연재해도 많아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일반인들을 통제하려 하고 빈부격차도 심해진다. 그러다보면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2009년 작품 <십 브레이커>에도 역시 이런 디스토피아가 등장한다. <십 브레이커>는 석유가 고갈되고 해수면이 상승해서 많은 도시가 침수된 미래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로 환경이 파괴되고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하면서 살아간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사람과 동물을 합성해 만들어낸 '반인(半人)'들도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강인한 육체와 야생의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반인들은 오직 부자들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존재이다.

기후변화로 망가진 미래의 세상

주인공 네일러는 황폐한 해변의 마을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네일러는 수명이 다되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선박에 들어가서 고철과 금속을 떼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선박을 분해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십 브레이커(ship breaker)'라고 부른다.


네일러는 자기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 열여섯 살보다 어리다는 것은 아는데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모른다. 누군가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할당량 맞춰서 일할 수 있으면 되죠"라고 대답한다. 네일러는 이 일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다. 낮에는 어둡고 지저분한 선박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팔 수 있는 고철을 끌어모으고, 밤에는 친구들과 해변에 앉아서 싸구려 술을 마시는 것이 낙이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네일러가 2주 동안 받는 급료는 부자들이 반나절 동안 쇼핑을 하면 없어질 금액이다. 이런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을 판다. 혈액, 장기, 눈알, 난자 등 모든 것이 거래된다. 모든 것이 열악한 환경에서 네일러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네일러는 해변에서 난파된 호화 여객선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네일러를 부자로 만들어줄 금은보석들이 가득하다. 네일러가 귀금속을 챙겨서 떠나려는 순간 선실에서 의식을 잃고있는 소녀를 보게 된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소녀는 자신이 거대 선박회사 소유주의 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안을 한다. 자신이 지금 쫓기고 있는데 자신을 도와주면 네일러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해변을 떠나고 십 브레이커 신세도 면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네일러는 갈등한다. 그냥 소녀를 죽여버리고 배 안의 보물을 가지고 가더라도 자신은 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네일러는 소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길을 떠난다. 거대 선박회사의 음모와 추격전의 한 가운데로 던져진 것이다.

모험을 떠나는 소년과 소녀

네일러와 소녀는 해변을 떠나서 한때 도시였지만 지금은 물속에 잠긴 폐허를 가로지른다. 대책없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 때문에 세상은 엉망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거나 따라가지 못했다. 거대기업은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기 위해서 바다 밑을 뚫고 섬들을 파괴했다. 그 결과로 무시무시해진 폭풍우가 주기적으로 해변을 덮친다. 전에는 장벽 역할을 하던 섬들이 모두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한 반인이 말한다. 때로는 실수를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고. 하지만 실수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미래의 죽은 도시들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뒤쳐졌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네일러 같은 아이들에게 동정하게 된다. 단지 그들이 어린 나이에 중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은 아니다. 참담하게 변해버리기 전의 세상,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맑은 웃음이 어디서나 들려오던 세상을 네일러가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려움도 생겨난다. 미래의 세상이 마치 <십 브레이커>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변해갈까봐,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그런 미래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을까봐 두렵다.

덧붙이는 글 | <십 브레이커> 파올로 바치갈루피 씀, 나선숙 옮김, RHK 펴냄, 2012년 2월, 417쪽, 1만3800원


덧붙이는 글 <십 브레이커> 파올로 바치갈루피 씀, 나선숙 옮김, RHK 펴냄, 2012년 2월, 417쪽, 1만3800원

십 브레이커 -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쳐 자신의 길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나선숙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2


#십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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