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인가 친구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16] <영사판(映寫板)>

등록 2013.03.28 18:55수정 2013.03.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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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영사판(映寫板) 뒤에 서서
어룽대며 변하여가는 찬란한 현실을 잡으려고
나는 어떠한 몸짓을 하여야 되는가


하기는 현실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
영사판을 받치고 있는 주야를 가리지 않는 어둠이
표면에 비치는 현실보다 한치쯤은 더
소중하고 신성하기도 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두 어깨는 꺼부러지고
영사판 뒤에 비치는 길 잃은 비둘기와 같이 가련하게 된다


고통되는 점은
피가 통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
비둘기의 울음소리


구 구 구구구 구구

시원치 않은 이 울음소리만이
어째서 나의 뼈를 뚫고 총알같이 날쌔게 달아나는가


이때이다―
나의 온 정신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영사판 위의 모오든 검은 현실이 저마다 색깔을 입고
이미 멀리 달아나버린 비둘기의 두 눈동자에까지
붉은 광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다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 있는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위에
(1955)



김수영 연보에서 1955년을 훑어보면 조금 특이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평화신문사>에서 문화부 차장으로 6개월가량 근무했다는 기록이 그것이지요. <주간 태평양>이라는 잡지사에 3, 4개월 근무한 이력(그것도 '프리랜서 번역가' 식이었지요)을 빼면 그가 사기업에서 '그럴듯한'(?) 직함을 갖고 근무한 경력은 이게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 수영을 <평화신문사>로 이끈 이는 수영의 친구인 소설가 이봉구였습니다. 그는 당시 평화신문의 문화부장으로 일하고 있었지요. 그는 명동의 술집과 다방을 제집 삼아 드나든 풍류객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떤 술자리에서도 점잖은 몸매무새를 흩트리지 않는 걸로 유명했지요. '명동 백작'이라는 별명도 이런 데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수영과의 관계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는 수영을 <평화신문사>로 끌어들인 뒤, 수영에게 돌아갈 번역료를 몰래 빼내 함께 술을 사 먹는 일에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중간 착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그 돈으로 수영과 함께 술집을 다니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즈음 수영은 번역을 욕된 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생활 때문에 그 일을 쉽게 때려치울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참담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신문사의 총무국으로 가서 이봉구의 그 '비리(?)'를 알게 된 수영이 깨끗하게 사표를 던진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봉구는 "당신이 그렇게 평화신문을 나가버리면 내 꼴이 뭐가 되느냐"며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그 바람에 직장을 완전히 때려치우려는 수영의 마음이 흔들리게 되지요. 불현듯 떠오르는 가족의 얼굴도 쉽게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수영은 그 다음 날 신문사에 나갑니다. 하지만 이봉구에 대한 마음의 정은 깨끗하게 정리해 버립니다.

이봉구는 한국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수영과 함께 절망의 나날을 함께했던 '절친'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수영은 낙천적인 성격의 이봉구를 따라 청계 천변의 포장술집에 갈 때가 많았습니다. 거기에서 수영은 기름이 둥둥 뜬 육개장에 밀주를 마시면서 그 험난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지요. 그런 친구의 '배신 아닌 배신'이 수영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오지 않았을는지요

그즈음 수영은 문학 강연차 군산에 다녀옵니다. 그때 그는 일기에 '귀가교훈'이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문장을 적어 놓지요. 아래가 그것들입니다.

① 독서와 생활과를 혼동하여서는 아니 된다. 전자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는 뚫고
    나가는 것이다.
② 확대경을 쓰고 생활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할 것이다.


'확대경'을 통해 "생활을 보는 눈"을 기르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주변 현실을 정확하게, 그리고 좀 더 냉철하게 보겠다는 다짐이겠지요. 그 바로 앞 문장에서 '생활'을 "뚫고 나가는 것"으로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이 시는 당시 수영이 가졌던 그런 현실 대응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돈 (번역료를 사이에 두고 이종구와 얽힌 일)과 여자 (한국전쟁 와중에 아내 김현경이 친구 이종구와 동거하게 된 사실) 때문에 벗들과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 그럼에도 특별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을 그는 어떻게 넘겨야 했을까요. "나의 온 정신에 화룡점정이 이루어지는 순간"(7연 2행)을 고대하며 그 모든 현실에 맞부닥쳐야 하지 않았을는지요.

"두 어깨는 꺼부러지고 / 영사판 위에 비치는 길 잃은 비둘기와 같이 가련하게 된"(3연) 수영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그 '비둘기'가 "구 구 구구구 구"(5연) 하고 내는 울음소리는 가려하기만 합니다. "시원치 않"(6연 1행)습니다. 하지만 '화룡점정'의 순간에 마음의 설움은 사라집니다. "영사판 양편에 서 있는 /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위에"(9연) "붉은 광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8연 3행)면서 말이지요.

그때까지도 '설움'은 여전히 수영을 붙잡은 채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움이든 그 무엇이든 끝은 있는 법이지요. 수영이 "영사판을 받치고 있는 주야를 가리지 않는 어둠"(2연 2행) 속에서도 정신을 놓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는지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영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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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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