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무, 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아"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17) #5. 다부동전투 ③

등록 2013.07.25 10:22수정 2013.07.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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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들길에 쓰러진 피난민들(1950. 8. 25.).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들길에 쓰러진 피난민들(1950. 8. 25.). ⓒ NARA


간이 야전병동

성곡리 간이 야전병동은 유학산 계곡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야전병동이라기보다 나무 사이에 천막을 친 뒤 가마니를 깔아 만든 부상병들의 임시 피난처였다. 이곳에는 전문 의료진도 없고, 약품도 부족해 위생병들이 부상병의 상처를 소독한 뒤 붕대를 감아주는 게 고작이었다.


8월 25일, 야간 육박전에서 부상당한 윤성오 상등병이 들것에 실려 왔다. 그는 대검에 가슴이 찔리고 다리마저 수류탄 파편으로 중상을 입었다. 그는 최순희 위생병에게 파편 제거와 봉합치료를 받은 뒤 오후 느지막에야 깨어났다. 그는 상처에 빨간 약(머큐로크롬)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준기에게 물었다.

"동무, 어느 학교 댕기다가(다니다가) 입대했수?"
"넹벤 농문둥(용문중)학교야요."

"나는 펭양(평양)사범학교를 나와 농강(용강) 인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디."
"아, 예. 교원이셋구만요."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가까운 곳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김준기에게 소곤거렸다.

"간밤에 국방군 아새끼와 된통 붙었지. 아, 그 놈이 나한테 '야이 괴뢰군새끼야!'라구 외치면서 대검으로 내 가슴을 찌르더군. 기래 나두 맞받아 '이 국방군 괴뢰새끼야!' 하구는 대검으루 그 놈의 배를 찔렀디. 그런 뒤 정신을 잃은 거디."
"호상간(상호간) 괴뢰라구 부른 거구만요."


"기런 셈이디."
"………."

a  미제 엠원총

미제 엠원총 ⓒ 한 재미동포 제공


a  소련제 따발총

소련제 따발총 ⓒ 한 재미동포 제공


엠원총과 따발총


"조금 전 의식에서 깨어나니까 가슴에 칼로 찔린 상처보다 간밤에 어린 국방군이 나한테 '괴뢰'라구 한 말이 더 아프게 들레와서(들려왔어). 그래 눠서(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호상간 피당파당(피장파장)이더만."
"우리는 그동안 소련제 따발총을 들었구, 남조선 국방군 아새끼들은 미제 엠원(M1)총을 들었으니 기런 셈이디요."

"맞어. 우리 어릴 때 왜놈 총을 들고 설치던 만주군 아새끼들을 인간말종으로 보구 '만주군 괴뢰'라구 불러서(불렀어). 긴데 이 전선에서는 양측 병사들이 호상간 괴뢰라구 부르니 기가 멕힐 노릇이디. 내레 정말 통곡하구 싶어야. 이 전선에서 서루 총질하는 우리들은 한 탯줄에서 태어난 형제일 수두, 같은 마을이나, 같은 학교 동무일 수도 있는데 말이디."
"아, 기럴 수두 이갓구만요."

"기럼, 내레 미티가서. 거(그) 순간 이번 전쟁은 북남 인민들에게는 아주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구만. 디금은 미소 갸네들이 공짜루 무기를 줘서 우리가 전쟁놀음을 하구 있디. 세상에 공짜는 없어야. 언젠가는 우리가 갸네들 무기를 아주 비싸게 사다가 호상간 또 치고받을 거디. 서루 귀한 자식들 죽이구, 피땀 흘려 번 돈을 무기 사는데 다 써버리면 우리 인민들의 삶은 불안해지구 피폐해딜 건 불을 보듯이 분명할 거야."
"기렇게 될 수도 있을 같구만요"

"갸들이 우리 조선인민이 이쁘서 무기 거저 주디는 않아. 나중에 우리끼리 싸우다가 무기가 떨어지면 리성을 잃고 웃돈까디 줘가며 사갈테니까." 
"…."

"이보라우, 김 동무. 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아. 피차 배후에는 미소 두 강대국이 떡 버티구 있기 때문이디. 와, 우리 조선 속담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디. 우리 조선인민이 거 새우꼴이디. 조선인민들은 호상간 티고받으면서 죽어가는데 갸네들은 뒤에서 닭싸움 구경하듯 즐기면서 배를 두드린 놈도 있디."
"기런 놈이 누기디오?"

"전쟁을 뒤에서 조동(조종)하는 무기상 놈들이디. 거 자식들은 싸우는 구경해서 도코(좋고), 저들 무기 팔아 돈 벌어 도코. 거야말루 도랑티고 가재잡기디."
"쉬, 윤 동무. 말조심하시라요. 독전대 아들이 듣습네다."

"와, 내레 틀린 말했나?" 
"우리 오마니는 늘 혀 밑에 죽을 말 있다고 전쟁터에서 살아님을레믄 바우터럼 말이 없어야 한대수."

"기래서 내레 동무에게만 몰래 하는 말이디. 지금 우리 조선 북남 전사들은 미국과 소련이 2차 세계대전에서 남긴 무기들을 소모하는데 동원되구 있는 거디. 갸네들 엄청나게 많이 남은 무기로 아주 골티 아파서야. 무기를 소모해야 경제가 돌아가거든. 기래 갸네들 무기가 바닥이 나지 않은 한, 이 전쟁은 쉽사리 끝나디 않아. 두고 보라야, 내 말이 틀린 겐가. 거저(그저) 애달푸구 불쌍한 건 우리 조선 북남 인민이디. 기런데 이판에 왜놈들은 아두 신날 거야. 문닫았던 갸네들 군수공장조차도 아마 신나게 돌아갈 거야."
"쉿! 누가 듣습네다. 낮말은 새가 듣구 밤말은 쥐가 듣는 답네다."

"알가수다. 김 동무 말이 백 번 옳습네다. 내레 앞으루 말 조심하디요."
"기러시라요. 기래야 우린 고향에 돌아갈 수 있습네다."

a  융단 폭격 뒤 왜관읍내의 모습(1950. 8. 19.)

융단 폭격 뒤 왜관읍내의 모습(1950. 8. 19.) ⓒ NARA


고약한 냄새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들은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그 까닭은 날만 새면 유엔군 진지에서 포탄이 날아오거나 하늘에서 미 폭격기들이 폭탄을 마구 쏟았기 때문이다. 야포의 포탄이나 폭격기의 폭탄 탄착점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상대 적진에 떨어지는 것보다 그 외곽에 떨어진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민간인 피해도 엄청 많았다. 전투가 벌어진 도시는 성한 건물이 거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유엔군 측 화력이 더욱 막강해졌다. 그러자 인민군 전사들은 미 전투기의 폭격소리와 포탄의 폭발소리에 가위눌려 전의를 잃은 전사들이 점차 늘어갔다. 그럴수록 독전대들이 더욱 설쳤다.

다부동전투가 장기전으로 이어지자 그 일대 산과 들에는 피아 병사들의 사체가 가을 낙엽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 사체들은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푹푹 썩어갔다. 다부동전선 산야에는 사람의 사체만 널브러진 게 아니었다.

소나 말도 군수품을 산으로 나른 뒤 포탄이나 폭격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사람이나 소와 말의 사체에는 파리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피를 빨거나 구더기가 허옇게 들끓었다. 그 사체 썩는 고약한 냄새가 유학산 일대에 진동했다. 거기가 지옥이었다.

병사들은 전투 중 식수를 현장에서 자급하기 마련인데, 계곡물에는 사체 썩은 물이 시뻘겋게 흘러 내려 하는 수 없이 그 옆에다 땅을 판 뒤 괸 물을 마셔야 했다. 병사들은 그런 물을 마시다 보니 복통을 앓거나 설사병을 앓았다.

a  훈련을 마친 국군 신병들이 전방으로 떠나고자 화차에 오르고 있다(대구, 1951. 5. 18.).

훈련을 마친 국군 신병들이 전방으로 떠나고자 화차에 오르고 있다(대구, 1951. 5. 18.). ⓒ NARA


신병들

다부동전선 곳곳에는 유엔군 폭격으로 부서진 탱크와 야포들이 팽개쳐져 있었다. 이런 전쟁터에 날마다 죽어간 병사의 숫자만큼 신병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떼 지어 몰려 왔다. 초기에는 자원 입대한 경우가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태반이 강제 징집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젊은이들은 길거리에서 누구에게 붙잡혔는가에 따라 인민군이, 국군이 되었다.

이들 애송이 인민의용군, 국군 학도병에게는 무슨 대단한 이데올로기가 있었으랴. 그들은 누구에게 붙잡혀 끌려오느냐에 따라 미제 또는 소련제 총을 잡고, 북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총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다가 다시 총도 바꾸고 총구도 바꾸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세계전쟁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미 전폭기의 공습이 무서운 것은 인민군만 아니었다. 국군도, 피난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지형에 낯선 미군 조종사들은 심심치 않게 아군 전투지역에도, 피난민 움막촌에도 폭탄을 떨어뜨렸다. 이런 오폭으로 졸지에 부하를 잃은 지휘관들이나 가족을 잃은 피난민들은 그저 애꿎은 하늘을 바라보며 시절을 한탄했다.

특히 전선의 인민군들은 날씨가 흐리거나 컴컴한 밤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럴 때는 대체로 미군 전폭기나 전투기의 공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원없이 폭탄을 한반도에 쏟아부었다.

a  전선에 널브러진 전사자의 시신들(1951. 7. 6.)

전선에 널브러진 전사자의 시신들(1951. 7. 6.) ⓒ NARA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일일이 검색하여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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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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