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시민의 귀가, 분노는 그대로 남았다

[取중眞담] 박근혜 대통령은 어쩌면 모를 수 있는 '선량한 100만'의 무서움

등록 2016.11.13 12:31수정 2016.11.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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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a 청와대 포위 행진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청와대 포위 행진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a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큰 분노가 대한민국 심장부를 메웠다. 이들이 하나같이 "박근혜 하야"를 외친 것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내놓은 사과도 '총리 임명 국회 위임'이라는 수습책도 오히려 민심을 자극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증거다. 

민중총궐기 주최 측의 참가인원 100만 명이란 숫자는 연인원 집계로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경찰 추산으로도 26만 명이 동시에 "박근혜 하야"를 외친 것은 분명 2002년 한·일월드컵 열풍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도,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도,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환영 인파도 뛰어넘은 거대한 민심의 표출이다.

그 어려운 걸 박근혜 대통령이 또 해낸 것이다. 특정한 세대가 중심이 되지 않았다는 점은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과 비슷했다. 정권에 대한 분노가 응집됐다는 점에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때와 비슷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국민적 분노가 가장 큰 형태로 표출됐다. 40여 년 전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뛰어넘는 시민들의 총의가 광장에 모인 것이다.

야권 정치인들은 집회 현장에 몰려들었으나 큰 역할은 하지 못했다. 이들의 출현에도 시민들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요구할 뿐, 국무총리를 누구를 어떻게 임명하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다음 대통령을 누구로 만들고 하는 등의 정치적 계산과는 거리가 먼 현장이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세대와 진영을 뛰어넘어 오로지 "박근혜 하야"에 집중됐다.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시민들은 차분하고 배려 깊었다.

a  경복궁역 앞에서 시민들과 경찰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응급 환자가 발생, 시민들이 길을 터주고 있다.

경복궁역 앞에서 시민들과 경찰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응급 환자가 발생, 시민들이 길을 터주고 있다. ⓒ 최경준


a 구급차 길 터주는 촛불시민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퇴진' 요구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포위 행진에 나선 시민들이 구급차 통행을 위해 길을 터주고 있다.

구급차 길 터주는 촛불시민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퇴진' 요구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포위 행진에 나선 시민들이 구급차 통행을 위해 길을 터주고 있다. ⓒ 권우성


그 거대한 인파가 광장을 메우면서도 별다른 사고 없이 질서정연하게 집회를 마무리했다. 인파에 밀려 느리게 걸었지만 짜증내고 싸우지 않았다. 좋은 자리를 두고 다투지도 않았다. 구급차가 출동하면 '모세의 기적'처럼 비켜섰다. 성난 옆 사람이 욕지거리를 해대면 점잖은 말로 타일렀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다른 가족들을 위해 '텐트 수유실'을 설치했다. 집회가 끝나고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광장을 청소했다.

a  쓰레기 봉투를 들고 휴지를 줍는 시민

쓰레기 봉투를 들고 휴지를 줍는 시민 ⓒ 이홍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호가호위로 대기업에 수백억 원을 걷어내고, 권력이 무서워 생돈을 갖다바치고, 남의 회사를 뺏기 위해 선량한 기업인을 협박하고, 딸 아이를 부정입학시키는 것도 모자라 학점을 따려고 교수를 위협하고, 기업 돈으로 명마를 타면서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실력' 따위의 말을 하는, 박 대통령이 신의를 갖고 대했던 이들과는 달랐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이런 100만 명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분노에 휩싸였지만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어리석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며 서로를 배려하는 질서정연한 시민들이 현재 박 대통령이 당면한 상대다.

100만 시민들은 집회가 끝나고 귀가했지만, 분노는 아직 그대로다. 박 대통령이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선량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거대하고 질서정연하다. 그래서 이 분노가 임계치를 넘을 땐 더 큰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선량한 시민들이 더 모진 맘을 먹지 않도록 결단해주는 게 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a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부터 시작해 자정을 넘겨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부터 시작해 자정을 넘겨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민중총궐기 #박근혜 #하야촉구 #촛불집회 #대통령_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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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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