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비만

<이효성 칼럼 5>

등록 2000.09.27 15:00수정 2007.06.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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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비만인 사람이 많다. 한국에서처럼 그저 약간 남보다 살이 더 쪄서 통통한 정도의 비만이 아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불룩한 배를 중심으로, 여자의 경우에는 터질 듯한 엉덩이를 중심으로 살이 출렁거릴 정도로 찐 비만이다. 몸 전체가 거의 원통형에 가까울 정도로 살이 찐 경우도 상당하다. 이런 사람들이 버스나 전철의 좌석에라도 앉게 되면 그 사람 좌우의 바로 옆 좌석에는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일본의 스모 선수처럼, 거동을 민첩하게 하지 못하고 어기적거리면서 느릿느릿 걷게 된다. 아예 자신의 몸을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미국인들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비만에 속한다. 좀 과장을 하자면, 중년 이상이 된 미국인 가운데 체중이 정상인 사람은 오히려 예외에 속할 정도다.

비만에는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 인종에 따른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만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 문화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비만한 사람이 많다는 의미에서 사회 문화적 현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는 사람들을 뚱보로 만드는 어떤 사회 문화적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라는 뜻이다.

같은 미국인이라도 아시아계 특히 동아시아계에게는 비만인 사람이 적다. 이 점은 흔히 동아시아인의 체질 때문인 것으로 말해지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사회 문화적 차이 때문으로 봐야 한다. 동양계는 대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문화에 아직 전적으로 동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교적 전통에 따라 미국에서도 음식섭취에 대한 가족 내의 통제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포식이 일반화하는 요즘에는 비만이 늘어간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인이 체질 때문에 비만이 적은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미국인을 비만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사회적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풍요와 이에 따른 음식물의 과소비라 할 수 있다. 세계 도처의 많은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서, 또는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어서, 먹고 싶어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미국인의 평균 소득이 높아서 미국인이 먹을 것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과식을 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사람이 섭생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섭생에는 가족 특히 배우자나 부모의 통제가 중요하다. 그런데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배우자나 부모의 통제력도 강하지 못한 듯하다. 더구나 미국에는 홀로 사는 사람들이나 타인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의 섭생에는 가족적 통제가 전무하다. 그러니 많은 미국인들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인이 소비하는 음식은 거의 산업적으로 생산된 것인 만큼 먹는 사람의 건강보다는 대량 판매를 겨냥한 것이다. 많이 팔려면 자극적인 맛을 내야 되기 때문에 이들 식품들은 지나치게 짜거나 달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광고매체들은 끊임없이 이런 음식을 사먹도록 촉구한다. 그래서 미국인에게는 짜고 단 음식의 과도한 섭취가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미국인들은 이렇게 짜고 단, 칼로리 높은 음식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반면, 과다하게 섭취한 음식에서 나오는 많은 칼로리를 소모시킬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다. 그들은 주로 차로 움직이고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많아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다. 소모되지 않은 칼로리들이 지방으로 체내에 축적되어 몸이 점점 불어나게 되고 결국은 비만이 되는 것이다.

미국인의 비만은 미국이 풍요롭고, 식품 산업이 발달하고, 식품과 외식에 대한 광고가 난무하고, 별로 움직이지 않고,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체제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비만의 원인이 사회체제에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책도 사회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식품의 염도와 당도를 낮추도록 규정하고, 음식에 대한 광고도 제한하고, 텔레비전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벗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무엇보다 부모의 통제가 강하게 미칠 수 있는 가족 구조와 문화를 복원하는 일 등이 될 것이다. 이것은 비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미국에서 비만의 해결책은 이런 식으로 모색될 수 없다. 그런 해결책은 자본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일로 또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모색될 수 있는 비만의 원인은 개인적인 내 탓이고, 비만의 처방은 산업적인 사후약방문이다. 비만의 책임은 개인에게 돌려지고 따라서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며 그런 개인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처방이 유료로 제공된다.

비만한 미국인에게는 이런 산업적 처방이나마 비만이라는 저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다. 그들에게 살을 뺀다함은 좀 더 날씬한 몸매를 갖기 위한 몸매 관리 차원의 한가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다. 비만에서 오는 온갖 불편과 생명단축의 절박한 문제다. 그런 그들에게 비만산업들의 처방은 구원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살 빼기와 관련된 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보인다. 식품마다 저지방, 저염분, 무설탕의 제품들이 따로 있다. 식이요법이다 지방추출법이다 새로운 운동기구다 해서 많은 비만해결책들이 연구되고 개발된다. 비만 문제를 다루는 서적이나 잡지도 부지기수로 많다. 대중매체 특히 텔레비전들은 식품 광고를 하면서도 쉬지 않고 비만과 살 빼기를 화제로 다룬다.

이처럼 미국 사회는 비만 인구가 많고, 비만에 관한 사회적 담론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비만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근본적 예방책이 강구되지 않고 산업적 차원의 대증적 치료책이 주로 제시된다. 심하게 말하면, 미국의 산업주의는 돈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비만을 조장하고 그들의 비만을 해결해준다는 구실로 다시 돈을 버는 셈이다. 완벽하게 병주고 약주는 격이다.

미국에서 비만은 사회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적으로 해결해야 할 개인적 문제로 남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비만은 해결할 수 없는, 풍요로운 사회의 저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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