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존 휴즈 <아버지와 나 >

등록 2001.07.30 16:35수정 2007.06.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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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늘 가까이 있어 언제까지나 친밀함을 잃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여기 나이 들어 정년퇴직한 뒤 점점 기억력이 쇠퇴해지더니 결국은 알츠하이머라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언제까지나 친밀함을 잃지 않고 가까이 하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점점 자라면서 아버지와 반목과 대립의 관계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존 휴즈의 <아버지와 나>는 일종의 만화책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만화책을 떠올린다면 예상이 빗나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가볍게 읽고 휙 내던지기는 쉽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지요. 우선은 만화책보다 무게가 좀더 나가고, 내용 또한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만듭니다. 어찌 보면 만화형식을 빈, 속 깊은 그림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라고 합니다. 보수적인 목사인 아버지와 예술가인 아들은 서로 잘 맞을 수가 없는 건 당연한 일. 결국 서로 등을 돌린 채 살아가게 되지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등을 돌리고 살 수만은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혼자 남게 된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증세가 나타났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증세는 점점 더 심해진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란 병은 레이건 대통령 때문에 유명해진 병이지요. 그 병에 걸린 아버지는 점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게 가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까이 살던 이웃이 아버지를 돌봐주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점점 괴팍해져 가는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모십니다.

양로원에서도 아버지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기저귀를 차게까지 됩니다. 기억력을 점점 잃게 되는 아버지는 오래된 앨범 속의 사람들을 보면서 말합니다. "누군지는 알겠다만,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구나." 그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 앞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간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들이 어렸을 때 한없이 거대해 보여 못하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아버지는 이제는 그런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식들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인간의 품위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6년 동안 양로원에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들은 홀가분해졌을까요?

짧은 시간에 볼 수 있는 책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올해 예순 넷이신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장 무서워하는 병이 치매라는 사실도 더불어. 아마도 그건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나이든 노인들이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요.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마저도 남김없이 빼앗아 버리는 병이 바로 치매니까요. 치매에 걸려 가족들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손을 꼭 필요로 하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요? 그런데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림이 별로네요."
6학년인 아들녀석이 책을 대충 훑어 본 뒤에 한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림이 상당히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과 그림 사이에 숨어 있는 의미가 너무 깊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열세살짜리가 세상을 보는 눈과 마흔살이 훌쩍 넘은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 책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고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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