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화장실 전쟁 그리고 청소

등록 2002.12.29 23:44수정 2002.12.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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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나고 어느 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화장실 문을 짝짝짝짝짝 하고 노크를 하자 안에 있던 사람이 대~한민국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는 재미난 콩트가 웃음을 짓게 하였다.

몇 년전 우리집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짜증을 나게 하였고, 아침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면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단독주택 3가구 12명이 살고 있었던 우리집은 수세식변기와 소변기가 하나씩 있는 화장실을 모두 함께 사용했다. 그래서 특히 아침이면 화장실은 언제나 만원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 안에서 조금만 오래 앉아 있어도 바깥에서 똑똑 하고 문을 두드려 안에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였다. 그리고 변기와 소변기가 문 바로 옆에 있어서 안에서 소변보는 소리가 다 들려 불쾌감을 주었다.

또 여러 세대가 같이 사용하다 보니 화장실 안은 항상 지저분하게 젖어 있어서 사춘기였던 나에게 화장실 사용은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에게 짜증도 자주 내게 되고 그래서 변을 참고 학교에 가다보니 변비가 심하게 걸려 병원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 청소를 하시던 어머니께서“젊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는지” 하시면서 혀를 차시는 것을 보고는 "왜 엄마만 청소 하는거야 옆방 아줌마들도 같이 치우면 더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을텐데 ” 하고 되물었다.

“그래 맞다” 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청소 당번표를 만드는 것이다.

방으로 돌아와 당번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10일씩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고 당번표에다가 ‘화장실을 안방처럼’이라는 문구를 적어서 화장실 문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였다.


먼저 화장실 문을 열고 난 뒤 바닥에 세제와 물을 뿌리고 솔로 빡빡 문질렀다. 이런 모습을 보던 옆방의 아주머니는 칭찬은 커녕 “왜 지금 하니? 아침에 급한데 저녁에 청소하면 되잖니” 라고 불만 섞인 투로 말씀하셨다.

그 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뒤 화장실 안에 냄새를 제거해주는 향수통을 놓고, 사용중 이라고 반듯하게 적은 팻말을 화장실 문에 못질을 한 뒤 걸어 두었다. '화장실을 다 사용하신 후에는 돌려주세요'라는 작은 글귀와 함께..


다음날 화장실 청소를 한 후 방으로 돌아오니 아주머니의 말씀이 들려왔다.

“화장실이 정말로 깔끔해 졌어. 우리 방 보다 더 좋네” 하시면서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자고 얘기를 하셨다. 이렇게 열흘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뿐만 아니라 '좋은글 좋은말'도 화장실 벽에다 붙여 놓았다.

화장실 분위기가 전과는 다르게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신 어머니께서 옆방 사람들이 화장실 사용하는게 확 달라졌다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 사용할 때 줄도 서지 않고 노크도 하지 않았는데 하시면서 기뻐하셨다.

지금은 집수리를 하여 세대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편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머니들께서는 그때 함께 사용하던 행복의 소리가 끊이질 않는 예전의 그 화장실이 그립고 참 좋았었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아침마다 이웃끼리 인사도 나누고 때로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 짜증나는 소리대신 사랑이 함께 하는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그 때 그 화장실을 잊지 않고 계셨던 것이다.

좌변기에 욕조도 있고 냄새도 나지 않아서 지금의 화장실은 예전처럼 하루에 몇 번씩 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는 우리가족과 이웃을 보면서 내가 시작한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이라는 조그만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 헛되지 않았구나 라고 느꼈다.

또한 몇 년전의 우리집 화장실처럼 지저분했던 곳도 얼마든지 깨끗한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가지게 되었다.

화장실이 오래되고 낡았다고만 탓할게 아니라 그것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청소를 해야겠다는 나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용한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지금의 잘못된 화장실 문화는 바꿔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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