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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관속에 갇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독창적인 연출로 냉정하게 현실 그린 스릴러 영화 <베리드>

10.12.04 15:41최종업데이트10.12.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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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리드 포스터 ⓒ 베리드

폴 콘로이는 돈을 벌기 위해 이라크로 온 트럭 기사다. 어느 날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관속에 묻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라이터 불빛에 의지한 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관속에서 휴대전화기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납치한 인질범은 5백만 달러를 요구하며, 휴대전화기로 유투브에 올릴 피랍 동영상을 찍으라고 협박한다. 이제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무대는 관속, 배우는 단 한 명

2010년 끝자락에 참신한 영화가 나왔다. 무대는 땅에 파묻힌 관속, 배우는 단 하나.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는 관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약이 많을 걸로 예상되지만, 감독은 아이디어로 멋지게 연출해 기대 이상의 스릴을 제공한다.

우선, 영화는 좁디좁은 관속이란 세트의 한계를 암전(연극에서 막을 내리지 않고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하여 장면 전환을 하는 것)과 조명, 그리고 극단적인 카메라 샷을 통해 해결한다. 이 영화에서 조명은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매우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보통 야외에선 태양이 광원 역할을 하고, 실내에선 전등이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땅에 파묻힌 관속에서는 광원 역할을 할 만한 게 없다. 감독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을지 몹시 궁금했는데, 영악하게도 라이터와 핸드폰, 고장난 손전등을 통해 기막힌 장면을 만들어 냈다.

영화 시작 시, 어두운 화면만 계속되어 '필름이 끊겼나?'란 의문이 들었다. 의문이 계속될 즈음 주인공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주섬주섬 라이터를 찾아 켜면 비로소 사건이 진행된다. 이후에도 연극처럼 암전을 이용한다.

설정의 제약을 영리하게 이용한 감독

조악하기 짝이 없는 조명은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며,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를 체험하게 한다. 불친절하고 극단적으로 클로즈업된 카메라는 잘생긴 라이언 레이놀즈를 평범남으로 전락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어설픈 액션영화를 비웃듯 카메라는 독창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이 영화가 스릴러였음을 재차 확인시킨다.

어둡고 좁은 관을 밝히는 다양한 조명이 등장하는데, 모두 제약이 있다. 첫 번째는 라이터다. 장시간 촬영으로 달궈진 라이터에 살타는 냄새가 나는 줄 모르고, 극에 몰입한 라이언 레이놀즈 때문에 스태프가 가슴을 졸였다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관속이라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에, 라이터와의 산소 흡입 경쟁은 부담된다.

두 번째 조명은 핸드폰. 액정의 차갑고 우울한 파란 빛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연결된다. 폴이 전화하는 사람들은 짜증날 정도로 답답하고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휴대폰은 관속에 갇힌 폴을 세상과 연결해 주고, 희망과 절망의 시소질을 만든다.

그렇지만 핸드폰도 치명적 한계가 있다. 바로 배터리. 오랜 시간 켤 수 없는 것이다. 점점 떨어지는 휴대폰의 배터리 표시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몇 억씩 쏟아 붓고, 자동차 여러 대를 부셔야 만들어 내는 긴장을 휴대폰 하나로 만들어내는 감독의 연출은 정말 영리하다.

▲ 베리드의 조명 연출 핸드폰은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고, 야광봉은 기괴한 분위기를 만든다. ⓒ 베리드


세 번째 조명은 인질범이 동영상을 찍으라고 관속에 넣어둔 손전등과 야광봉이다. 영화 중반에 등장했기에 이제부터 충분한 조명이 공급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둘 다 고장 난다. 야광봉은 어이없는 침입자로 인해 털리고, 불량 손전등은 자꾸 꺼진다. 결국 둘 다 무용지물이다. 감독은 일부러 불충분한 조명을 사용하여 관객을 더욱 몰입시킨다.

휴대폰을 통해 벌어지는 희망과 절망의 시소질

이제 관속에서 세상과 연결해 주는 핸드폰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생매장 당해 관속에 갇혔는데, 다행히 휴대폰이 있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누구에게 전화 할 것인가? 가족? 위안이 된다. 그렇지만 그를 구출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떨까? 인질범이 요구하는 돈을 제공해 주고 그를 살려 낼까? 선량한 시민이니 국가에 희망을 걸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국가는 안타깝게도 유투브에 올라온 피랍 동영상과 테러리스트 본지에 폭탄 투하하는 것에만 신경 쓴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 폴 콘로이는 고 김선일씨를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해 그들을 적으로 만들고, 2004년 김선일씨가 돈을 벌기 위해 이라크에 갔다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던 것처럼 콘로이 또한 거룩한 '국가의 이익'을 위한 희생양이 된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렇게 버려진 희생양이 무척 많다는 암시를 준다.

휴대폰을 넣어둔 인질범은 어떨까? 주인공은 인질범에게 따져 묻는다. "왜 내가 갇힌 거지? 난 단지 트럭기사야. 돈 벌려고 이라크에 왔을 뿐이라고. 귀여운 애들도 둘이나 있어. 이 테러리스트야." 그러자 인질범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테러리스트라고? 나도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는 평범한 시민이었어. 애들 셋이나 잃고, 집과 직장 다 잃었어. 먹고 살려고 이러는 거야. 그리고 너 미국인이잖아."

너무도 '불친절한' 미국 사회에 대한 비유

큰 절망을 주는 대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바로 회사다. 회사는 그를 속이고 책임을 회피할 궁리만 한다. 심지어 보험금을 지출하지 않기 위해 트럭을 운전하는 '비정규직'인 주인공을 곧바로 해고해 버린다. 억울하게 관속에 갇혀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이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라니!

▲ 스릴러 영화 베리드 관속에 묻힌 주인공은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어쩜 우리네 삶이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닐까? ⓒ 베리드


영화는 불친절한 미국 사회의 모순을 관에 갇힌 폴 콘로이를 통해 보여준다. 폴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상대는 유감이라 말할 뿐이다. 폴이 영화 <킬 빌>처럼 중국 무술로 관을 손끝으로 뚫고 나올 수 없다. 주변 도구로 기발하게 탈출하는 맥가이버도 아니다. 폴은 그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다.

폴이 관에 갇힌 건 누구 탓일까? 영화는 재밌게도 악랄한 인질범을 악당으로 몰지 않는다. 인질범은 궁지에 몰려 살기 위해 범죄를 택한 이라크인이다. 그렇다면 이라크 전쟁을 벌인 미국의 부시 탓일까? 돈 준다며 이라크로 보낸 회사 탓일까?

이 영화는 '우리네 삶 또한 관 속의 폴과 정말 다를까?'하는 마음의 짐을 안긴다.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는 냉정하게 결말을 향해 간다. 관속으로 모래가 흘러내리고 공간이 점점 비좁아진다. 숨 쉬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진다. 우리는 모두 관 뚜껑을 열고 땅위로 나갈 궁리를 해야만 한다.

베리드 로드리고 코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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