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와 한국의 19세기는 어떻게 달랐을까

[독서공방 8] 박노자가 지은 <우승열패의 신화>

등록 2015.02.22 11:27수정 2015.02.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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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덴마크는 행복사회로의 여정을 19세기 후반에 시작했다. 교육, 노동정책, 시민연대의 기본정신과 제도가 이때 마련됐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는 덴마크가 프로이센에게 영토의 3분의 1을 빼앗기고 헤롱헤롱하던 '국력 쇠퇴기'였다.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곡창지대인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땅을 독일에 빼앗긴 덴마크 사람들은 대국을 향한 허망한 꿈을 내려놓고 개개인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준비를 시작했다.

150년 전 한국은 어땠을까? 한국도 사정이 어렵기는 덴마크와 매한가지였다. 정조가 지피려던 유교적 이상국가를 향한 마지막 불씨는 1800년 그의 죽음과 함께 사그라졌다. 능력있는 관료들이 애민정신에 근거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건국이념은 너덜너덜해졌다. 19세기 말이면 전 국토가 세도정치의 등쌀에 몸살을 앓은 지도 벌써 한참이 되었을 때다.


바깥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전쟁이 1840년, 일본의 개항과 메이지유신이 각각 1854년과 1868년에 일어났다. 메이지유신으로부터 불과 8년 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사조약 따위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고.

한국 사회의 모순은 언제 시작되었나?

a  박노자, 우승열패의 신화

박노자, 우승열패의 신화 ⓒ 한겨레신문사

박노자 교수는 <우승열패의 신화>라는 책에서 이 시기를 '경쟁과 생존을 키워드 삼아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한국형 생활양식'의 시원으로 지목했다. '남과 늘 경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폭력 능력이 없는 자는 당장 삶에서 도태되는 '위험사회'에서의 삶을 피곤하게 느끼면서도 왜 우리는 집단적 차원에서의 경쟁을 이토록 당연시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가?(45쪽)'. 구소련 태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저자의 질문이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이자 잘 알려진 '논객'인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사회의 모순을 드러낸 바 있다. <우승열패의 신화>는 말하자면 그 모순의 출발점을 찾아간 셈이다.

박노자는 살기 팍팍한 한국사회의 기원이 2천년간 뼈에 사무친 외침의 역사에 있다는 인식을 부정한다. 대신 그가 주목한 것은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의 경험과 유산이다.

영토를 절반 가까이 뜯어먹힌 덴마크인들이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 시스템 구축에 나서던 그 시점에 지구 반대편의 한반도를 지배했던 사상은 '사회진화론'이었다. '인간 세상에서도, 생물계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윌리엄 커버)이며 '약자를 제거해주는 한 종 안의, 그리고 여러 종 사이의 생존투쟁이 종 전체를 강화하고 촉진한다(허버트 스펜서)'고 믿는, 당대 유럽의 지성계를 지배한 담론이었단다.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을 강령삼은 신흥종교 사회진화론은 메이지 일본의 가토 히로유키니, 청말의 량치차오니 하는 지식인들을 통해 망국의 길을 걷던 19세기말의 조선으로 수입된다. 외부 사상의 수용이야 탓할 일이 아니겠으나 문제는 단점이나 부작용을 생각할 겨를 없이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국가간 경쟁에서 도태된 모국을 바라보던 구한말 지식인의 입장에서, 사회진화론이 가리키는 것은 개인들 간의 연대에 근거한 행복사회의 건설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외려 개개인을 도구삼은 강한 국가의 수립과 그를 통한 치열한 경쟁을 추구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졌다.


더구나 당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던 조선과 조선인, 조선의 문화는 한없이 한심해 보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한국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선택권이 있다면 동양의 낙원인 일본에 살고 싶다'고 빌었던 윤치호와 같은 이에게 덴마크의 그룬트비가 했던 것과 같은 '인민을 위한 제도의 창설' 따위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사회진화론'의 진화

이런 상황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악화됐다. 박노자의 글을 그대로 빌리면, '가장 후진적인 제국주의 국기 중 하나인 일본의 식민지가 된 상황에서 반제투쟁을 포기한 토착지배층에게 남은 건 바로 비굴한 힘겨루기를 통한 개인적 체제순응과 체제순응적 집단 안에서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경쟁이었다(23쪽)'.

해방이후 독재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원조와 65년 이후 대일경제종속을 토대로 집권한 '주변부적 신파시스트적 정권'들은 국내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탓에 노골적인 폭력의 무제한적 사용과 동시에 원칙과 연대를 결여한 이기심/사욕으로 움직이는 모래알형 사회를 지행했다(24쪽).'

주변부니 파시스트니 하는 용어까지 굳이 쓰지 않더라도, 19세기말 20세기초에 한국 지성계를 파고들었던 우승열패의 담론이 오늘날 전혀 낯설지 않다. 이 사실만으로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에서 유지된 사회진화론, 또는 적자생존 신화의 명맥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중 누가 100년 전 개화기 지식인들 마음 속에 들어찬 서구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거라는 불안감을 비웃을 수 있을까.

서동진 교수는 구본형이나 공병호를 위시한 우리나라의 자기계발담론을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았고 이 논문은 나중에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이 책은 20세기말의 주요한 사회적 특성 중 하나로 사회문제를 개인화하고 스스로 '우등'해지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점을 꼽았다.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이러쿵저러쿵. 근데 박노자의 말에 따르면 이게 10, 20년이 아니라 한 150년 됐다는 거다. 신자유주의보다 훨씬 먼저 맹위를 떨친 사회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거다.

생각하는 시민의 힘

이렇게 써놓고 나면 힘이 빠진다. 이게 100년도 넘었단 말이야? 대한민국 주류와 비주류에 속하는 모든 이들이 왕조와 제국과 식민지와 공화국을 두루 거치면서, 현대한국이 만들어진 모든 기간 동안, 말 그대로 전투에서 승리하는 국가와 그 국가에 복종하는 개인을 빚어내기 위해 애를 써왔단 말이야? 이런 질문 안 나오게 생겼나.

로버트 퍼트남은 이탈리아 남북부 격차의 원인을 연구해서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라는 책을 썼다. 제목처럼 두 지역의 사회적 자본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퍼트남의 대답인데, 사회적 자본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따져묻던 저자는 결국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찾는다.

11세기인지 12세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만 아무튼 엄청 옛날. 재미있게 읽다가 책을 덮은 뒤 뭔가 엄청난 허무함에 시달렸던 기억이다. 지역간 격차가 무려 10세기, 그러니까 1000년간 쌓인 역사 때문이라면 대체 남부는 무슨 수로 좋은 시절 맞냔 말이야 뭐 이런. 1000년은 아니지만 150년도 부담스럽다. 우리 할머니가 겨우 여든 다섯인데. 우리는 달라질 수 없는 걸까.

박노자도 쓰다보니 답답했는지,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좀 긍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다. 20세기초 사회진화론의 광풍 속에서도 꿋꿋이 다른 길을 찾아 걸었던 이들을 소환하고 있는 것.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인물은 한용운이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채로 무려 뒷걸음질을 쳐서 사라졌다고 했던 그 스님. 박노자는 3·1운동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의 저자로 한용운을 지목하고 (최남선이 썼네 한용운이 썼네 갑론을박이 있는 모양) 그가 추구했던 자유의 정신을 높이 샀다.

그가 20세기 초입을 살아간 여느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진화론의 자장 아래 있으면서도 그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찾은 것은 승려로서의 수행 덕분이었다. 그는 자유의 근원을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의 원리로부터 찾고자 했단다. 약육강식의 현실은 불교적 차원에서 보면 '미혹된 중생들의 망상과 착각에 불과'하다. '세상은 강약성패에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평등하고 이같은 평등에서 일체 생명의 자유가 비롯된다(417쪽)'. 박노자는 한용운의 사례를 통해 생각의 힘을 강조했다. 다수가 옳다고 말하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수양과 고민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갑자기 한용운처럼 머리 깎은 뒤 짜잔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 되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험한 시절에도 중심을 잡고 사람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새길 필요는 있지 싶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내 삶을 돌아보는 일로 귀결된다. 지난 '독서공방'에서 다룬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주장처럼,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것은 생각하는 시민의 힘이다. 갑자기 '우승열패의 신화'를 벗어던지는 것 보다는 이발소 가서 파르라니 머리 깎는 게 더 쉬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두꺼운 책을 읽은 대가로 그 정도 생각할 거리는 챙기는 것이 상식적이겠다. 시대의 조류가 개인의 삶을 자꾸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면 그저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기 보다는 고개를 내밀고 팔에 힘도 좀 주고 노를 한번 저어보는 것이다. 물살과 반대로. 그게 모이고 쌓이면 종국에는 닻이 되고 둑이 되지 않을까.

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2005


#독서공방 #지상현 #정대훈 #우승열패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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