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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2사 벤클의 진실, 발끈한 구자욱-침착했던 한유섬

[주장] 구자욱-한유섬의 다른 대처, 야구팬들의 엇갈린 반응

24.05.15 12:17최종업데이트24.05.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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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2사, 경기 종료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를 단 하나 남겨놓은 상황에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프로야구에서 나왔다. 사실상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양팀 선수들과 관중들도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보복구' 의혹이 불러온 해프닝이었지만, 다행이 큰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다. 

5월 14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리그 SSG 랜더스와 삼성 라이온스의 경기, SSG가 11안타 3홈런을 폭발시킨 타선의 힘을 앞세워 9-2로 대승을 거뒀다. 

SSG의 완승 분위기로 경기가 거의 끝나가던 9회 막바지에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영봉패 위기에 몰렸던 삼성이 마지막 이닝에서 김헌곤의 투런포로 2점을 만회했다. 이후 2사 1루 상황에서 삼성의 마지막 타자로 구자욱이 타석에 들어섰다. SSG의 마운드에 있던 투수는 박민호였다. 

그런데 박민호의 시속 135㎞짜리 초구가 돌연 구자욱의 등 뒤로 날아갔다. 다행히 공은 구자욱의 몸에 맞지는 않고 뒤로 빠졌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움찔한 구자욱은 크게 화가 난 표정으로 그대로 배트를 내려놓고 헬멧을 벗고서는 박민호 쪽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박민호의 투구가 고의적인 빈볼이라고 느낀 것.

SSG 포수 김민식과 박종철 주심이 재빨리 구자욱 앞을 막아서며 붙잡았다, 하지만 구자욱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를 본 양팀 선수들이 모두 벤치를 비우고 달려나왔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벤치클리어링은 양팀간 신경전의 일환으로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이날은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고 굳이 빈볼을 던질만한 타이밍도 아니었다. 실제로 벤치클리어링 상황이 벌어지자 양팀 선수들이 달려나오기는 했지만 격하게 충돌하는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선수들끼리도 서로 의아해하며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구자욱은 유독 그렇게 흥분했던 것일까. 앞선 경기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SSG는 7회말 5점을 추가하며 9-0으로 점수차를 벌리고 승기를 잡았다.

그런데 에레디아의 3점홈런이 나오고 7-0이 된 1사에서 다음 타석에 올라온 한유섬에게, 삼성 투수 이승민이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한유섬 역시 이날 투런포를 기록하며 활약한 타자였다. 마침 SSG가 한창 크게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사구라, 고의성에 대한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한유섬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별 문제없이 1루로 걸어나갔다. 이승민은 모자를 벗고 한유섬에게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된 듯 했다. 하지만 9회 삼성의 공격에서 박민호의 공이 구자욱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묘한 장면이 발생했다. 

전통적으로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아군 타자가 고의적인 사구를 맞는다거나  혹은상대가 비매너플레이를 저지른다고 판단되면, 공수교대후 다음 이닝에서 상대 중심타자에서 빈볼을 던지는 '보복구' 관행이 존재한다. 

박민호의 공이 단순한 실투인지, 고의성이 있는 위협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구자욱의 입장에서는 앞서 한유섬의 사구 상황이 있었던 데다, 상대 투수 박민호가 과거에도 박병호(KT)-민병헌(전 롯데) 등에게 위험한 사구를 던져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이미 여러 차례 있었기에 더 민감하게 느꼈을 만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구자욱이 섣부르게 불필요한 과잉 대응을 했다는 반응도 적지않다. 통상적으로 보복성 투구라면 문제가 발생한 다음 이닝에 곧바로 되갚아주는게 일반적이다. 이승민의 한유섬을 향한 사구는 7회였고, SSG는 이어진 8회에 삼성의 중심타선을 상대했을 때는 별다른 대응없이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렀다. 

구자욱의 위협구는 9회 2사 1루에 나왔다. 점수차가 7점차로 아직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삼성이 추격하는 흐름이었다. 만일 구자욱을 고의적인 빈볼로 출루시킨다면 득점권에서 삼성의 중심타선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었기에, SSG로서는 굳이 불필요하게 위기를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구자욱의 대응은 동일한 상황에서 상대 선수인 한유섬과도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구자욱은 위협구에 그친 반면, 한유섬은 실제로 위험한 사구를 몸에 맞았다. 심지어 한유섬은 부상에 시달리다가 이날이 복귀전이라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유섬은 감정을 자제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며 묵묵히 1루로 걸어나간 바 있다.

공교롭게도 급발진한 구자욱을 가장 적극적으로 말린 것도 한유섬이었다. 벤클 상황이 벌어지자 SSG 벤치에서 곧바로 달려나온 한유섬은, 구자욱을 붙잡고 다독이며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으로 상황이 더 크게 번지는 것을 막았다. 야구팬들도 한유섬의 성숙한 대응에 큰 호평을 보내고 있다.

이후 재개된 경기에서 다시 타석에 선 구자욱은 중견수 뜬공으로 아웃되며 그대로 경기가 종료됐다. 벤치클리어링은 큰 사고없이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똑같은 상황에서도 180도 다른 대처를 보여준 한유섬과 구자욱의 반응은 야구팬들에게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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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욱 한유섬 박민호 보복구 벤치클리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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