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계약제 범위에 대한 상반된 입장
수가계약제의 쟁점 중에서 중요한 문제인 수가계약의 범위에 대해 복지부와 의사단체 간의 이견이 존재한다. 그 쟁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수가계약의 대상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가계약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복지부는 수가계약의 대상에서 약제비와 재료비를 제외하고 있는 반면 의사단체는 현재 약제비와 재료비가 실구입가제로 보상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계약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포괄수가제가 실시될 경우 포괄수가 역시 계약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가계약의 내용면에서도 복지부는 요양급여기준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후 복지부장관이 심의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시로 정한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만을 계약내용으로 정하고 있다.
반면 의사단체는 요양급여기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상대가치의 결정, 상대가치점수의 점수당 단가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의료계가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의사단체는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만을 계약대상으로 하는 것은 계약범위를 최소화하여 계약제의 본질을 크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점수당 단가만을 계약의 내용으로 하는 것은 보상할 비용을 결정하는 여러 단계중 한 단계에만 국한된 것으로 전체적인 합리성을 제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양명생 병원협회 경영연구원은 수가계약의 범위를 ①상대가치 점수 ②상대가치 점수당 단가 ③총인상율, 진료행위부문별, 기본진료료 등 ④의약품 보상가격 ⑤특정 치료 재료대 ⑥DRG수가 ⑦신의료기술 등 수시 추가인정 보험급여 대상수가 ⑧진료수가 산정지침(심사지침)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②상대가치 점수당 단가만 계약대상으로 하고, 나머지는 보건복지부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반론에 대해 양위원은 위의 여덟 가지 모두가 요양 급여 대상이므로, 당연히 계약의 대상에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 단계에서의 합리성을 제고하지 않을 경우 점수당 단가만의 합리성으로 비용의 전체적 합리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용계약의 내용은 전 단계로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결국 정부에서는 비용계약의 내용으로 비용결정의 마지막 단계인 '점수당 단가'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전병율(보험급여과) 과장은 "현재 의료계의 주장은 고려는 할 수 있으나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또한 수가를 계약 형태로 결정하자는 주장은 의료계에서 먼저 제기한 것이고, 그를 받아들여 복지부가 실시하게 된 것이다"라면서 "수가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을 경우 복지부장관이 심의조정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고시하게 되는 부분을 의료계가 문제삼는 것은 복지부장관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계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 과장은 또한 "수가계약의 범위는 현 상황에서는 점수당 단가 외의 다른 항목이 계약범위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의료계 내부에서도 주장이 통일되지 않고 있는데, 개별적 주장들을 모두 수렴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비용계약의 체결이 되지 않았을 경우
건강보험법은 계약이 계약기간의 만료일 전 3개월 이내에 체결되지 않을 경우 복지부장관이 심의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건강보험법 제42조 3항), 자동적으로 복지부장관의 개입을 명시하기보다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중립적인 제3자에 의한 구체적인 중재 과정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수가계약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계약이 체결되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어떤 중재와 재협상 절차에 의해 요양급여비용이 결정되는 지를 제시해야 '계약'으로서의 원래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험자와 공급자간의 계약은 사전에 모든 가능한 영향요소와 돌발상황을 고려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 이른바 불완전계약의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지부의 건강보험법 시행령(안)을 보면 원만한 계약 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생략된 형태이다.
우리 나라 의료보험의 특징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할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요양기관을 정하고 또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건강보험법 제40조). 즉, 보험급여 공급자의 의사는 거의 배제되어 있어 수가계약의 법적 성질에 비추어도 문제가 된다.
복지부 장관의 개입 규정을 정부가 자주 활용한다면, 이름만 계약제이지 실제로는 종전의 수가고시제와 똑같이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때문에 정부가 계약제 실행의 의지를 진정으로 갖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따라서 이 규정은 계약제의 근본 취지에 맞추어 삭제되거나 개정돼야 하는 것이다. 즉, 당사자의 합의가 성립되지 못할 때에는 중립적 지위에 있는 중재기구의 공평한 판단에 따라 수가를 정해야 한다.
중재기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중재기구의 구성은 의약계에서 추천하는 자와 공단에서 추천하는 자는 물론 양 당사자가 추천하는 공익대표도 포함돼야 한다.
참고로 독일은 수가를 포함해 의료행위 전반에 관하여 '연방보험의사협회'와 '연방질병금고협회' 간에 총괄계약을 체결하는데 계약 불성립의 경우 중재청의 다수결 판단에 의한다.
중재청은 의사협회 및 금고협회의 대리인이 각각 동수로 참가하고 3인의 공익대표가 참여하게 되어 있다. 다만 중재청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는 종전의 계약내용이 잠정적으로 효력을 유지하게 된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는 수가를 포함한 요양급여에 관하여 금고협회와 의사협회 간의 계약에 의하고 계약 불성립의 경우에는 중개기구의 결정에 의하나 당사자들이 충분히 사전 준비와 빈번한 협의를 통하여 계약을 성립시키므로 계약 불성립의 경우를 거의 상정할 수 없도록 운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양명생 전문위원은 "수가계약의 기본적인 원칙은 당사자간 형평성이 존중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법상 수가계약의 관련 조문이나 정부당국의 태도를 보면 간섭으로 일관하는 '규제된 계약'이고, 계약제와 고시제가 혼합된 '반계약 반고시제'의 인상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우여곡절 끝에 입법화된 '수가계약제'가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체결되려면 정부의 간섭은 배제되고 '보험자와 의약계의 대표자간'에 타결을 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법 제42조 3항, 6항의 내용이 수정돼야 하고, 지난 1월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 제24조의 전문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보건복지부 전병율 과장(보험급여과)은 "중재기구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고려중에 있지만 현실적으로 법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구체적 방법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해 의협과 병협의 시행령(안)에 대한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요양급여비용계약제의 법률관계
백태승(연세대 법과대학) 교수에 의하면 공법상의 계약은 공법상의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복수 당사자의 의사표시의 합치에 의하여 성립되는 공법행위로 일반적으로 정의된다.
이에 반해 사법(私法)상의 계약은 사법관계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복수 당사자의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의 합치로 성립하는 법률행위를 말한다.
사법상의 계약은 자기의 의사표시로 자기의 법률관계를 정한다는 사적자치의 원리가 지배한다. 그러나 공법상의 계약은 이 사적자치의 원칙이 지배되지 않고 계약의 체결, 내용결정 및 방식 면에서 많은 제한을 받는다.
그렇다면, 요양급여비용계약은 행정주체(공단)가 계약의 당사자가 되므로 공법상의 계약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백교수는 "공법상의 계약과 사법상의 계약의 구별기준은 그 계약의 당사자가 행정주체인가 여부에 있지 않고 그 법적 효과가 사법관계인가 공법관계인가에 있다"고 말하면서, 수가계약의 경우 비록 행정주체가 그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내용상으로는 사법상의 계약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요양급여비용계약은 각 계약당사자가 대리인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는가 아니면 계약 당사자가 제 3자(요양기관 또는 보험가입자)를 위하여 계약을 체결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된다.
건강보험법 제42조 제2항에 의하면, 계약이 체결된 경우 공단과 각 요양기관 간에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계약당사자가 본인의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닌데도, 요양급여비용계약이 체결되면 요양기관은 요양비의 지급을 직접 공단에 청구할 수 있고(동법 제43조), 또 보험가입자도 보험급여를 직접 요양기관에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수가계약은 민법 제539조에서 정하는 일종의 제 3자를 위한 계약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료보험 수가계약에서 비록 공단이 계약당사자가 되나 그 계약의 법적 효과는 보험급여에 대한 대가를 정하는 것이므로, 이는 일종의 사회법상의 계약으로서 공법적 측면과 사법적 측면의 양자의 성격을 겸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법학계에서 사회보장법은 공법과 사법의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법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요양급여비용계약제와 같은 사회보장법상의 계약은 기본적으로는 양당사자의 합의를 전제로 출발하기 때문에 특별한 공법상의 제한이 없는 한 계약 당사자의 자치가 존중돼야 한다.
따라서 계약제와 관련된 법령을 제정하거나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계약제의 법적 성질에 맞게 운용돼야 한다.
수가계약제 시행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수가계약제의 실시는 계약이 체결될 경우는 커다란 문제점이 없어 보이지만 체결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많은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자든 공급자든 건강보험법이 입법화된 취지를 서로 잘 살리는 방향으로 운용해야 한다.
정부는 수가계약제를 통해서만 의료비를 억제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새로운 정책개발을 모색해야 하고, 의료계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통해 수가계약제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의료계는 각 단체별 실무반을 편성해 자료수집, 분석, 토의 등의 절차를 밟아 범의료계 차원의 대책 및 협상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각 단체별 의견을 최종심의 결정하여 대표단에게 제출해 보험자 측과 협상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와 내용 등을 최소한 8월말까지는 준비해야 한다.
수가계약은 매년 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올해만 넘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이 작업을 연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구의 마련이 절실하다.
아울러, 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는 의료계의 각 단체들은 서로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의료계 전체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에 대한 의사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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