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3.01 21:55수정 2000.03.02 14:20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회의원 김 홍신은 ROTC 출신이다.
그는 가끔 럭비공처럼 날라다니지만 그는 생각이 있는 공이고, 그는 내게는 자랑스러운 동기생이다.
그와 나는 함께 근무한 경력이 없고, 그와 차 한잔을 나누는 우정의 시간도 없었지만 그와 내가 학군단 출신이라는 행복한 관계 아닌가?
이제 나는 다시 내 아들이 군에 있고, 내 아들만한 후배들이 어제 어깨에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대학 2년 동안, 학과 과목보다도 학군 교육이 더 실감났을 동안 너희들은 소위 임관을 위한 질주를 해왔고, 이제 그것은 이루어졌다.
너희들은 이제 다시 내일 입영열차를 탈 것이다.
사병이던 장교이던 입영 열차를 타기 전의 밤은 공허하고, 절박하며 세속을 떠나는 구도자의 마음 같기도 하리라.
그러나, 이 시간은 한참 지난 뒤에 돌이켜 볼 때 청춘의 빛나는 순간이었음을 알리라.
이제 너희들은 청춘의 완성을 소위 계급장을 통해서 했고,
이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30년 전 내가 ROTC 장교로 임관을 하고나서 소위 계급장을 단 채로 장교기본 교육을 받으러 갈 때 표정이 굳을 것도 없었고, 슬플 것도 없었던 것은 군문은 젊음의 과정이었고, 당당한 성인 의례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면, 직장 생활 20여 년에 대한 것보다 군 생활동안의 기억이 더 생생하며, 바로 어제인 듯 피가 뜨거워진다.
그 때는 월남전이 한창 고비였었다.
밥풀떼기 소위들은 월남전에서는 바로 베뜨꽁의 총알밥이었다.
그러나
젊은 혈기는
월남을 가고 싶었고
그것도 해병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고
땀과 피와 탄피와 흰 아오자이와 그리고 손톱눈만큼 있을 정의와 어쩌면 그 소녀와 청년 장교의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해병을 못가고, 나는 육군으로 갔으니 아오자이 소녀와 사랑은 없었으나, 동기생의 우정은 장미색깔보다 진했었지.
청춘의 추억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내가 가진 절반의 추억과
네가 가진 절반의 추억이
마주치는 순간
추억은
방금
만들어진 생채기 모양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이니
임관 후 보병 기초보수교육이 일생동안의 추억을 만들었다.
부대 배치를 받고, 동기들을 만나고 그 중 마음에 통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
구중위.
군대 생활이 자리를 잡혀가던 그 해 겨울
눈은 온 세상의 소리를 가슴에 품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눈의 무게에 사람이 눌리고 집이 눌리고
길도 눌리고
우리는 방에 갇혀 있었다.
손바닥만큼 따뜻한 아랫묵의 온기를 아끼려고 펴놓은 이불 속으로 자옥이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 둘은 낄낄 하하 대다가도 때로는 진지했었다.
진부령에서 만난 소녀 이야기를 했고
그냥 바람처럼 산다는 소녀를 제 방에 머물게 했던 가을이 끝나고 겨울.
눈 오는 날 떠난 소녀가 남긴 낙서는
"나는 진부령에서 눈 오는 날 죽고 싶다 "
새 봄, 꽃 피는 진부령에 갔을 때
지난 겨울의 소식은 철쭉에 묻혀 있었고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공병대 소대장이었고
나는 사단 사령부의 참모부 보좌관이었다.
그와 나는 ROTC 동기였고
한 집 함께 붙은 방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내가 군복을 벗고 그 곳을 떠난 지 24년이 지났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오면 내가 군용 더블 백을 메고, 그곳 사령부로 전입갈 때 길가의 코스모스가 한들대고 공병대 중대본부에서 만난 검게 탄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세상을 제 무게로 누르던 눈과
진부령 아가씨가 세월의 벽을 넘어서 아직도 소녀의 나이를 한 채 애뜻해진다.
얼마 전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보자
와라.
동기 한 명과
그가 있던 군사령부의 장교 숙소로 갔다.
그는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속일 수 없는 세월의 진실로 돋보기를 써야 글씨가 보이는 인생의 고비에 있었다.
대령 숙소에는 대령들만의 목욕탕에서 함께 목욕을 하고 장교 숙소 건너편 민간인 식당에서 생태찌개와 소주 한 병을 나눈다.
"우리가 옛이야기를 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 때 우리가 젊었기 때문이야. 우리는 조건을 걸고 좋아하지 않았고. 우리는 상하관계에 있지도 않았지.수평적인 상태에서 어울렸어. 군대 생활이 이제 거의 30년이 되어 가고 너와 나의 만남은 단 2년간이었지. 그 세월은 20년보다 더 강하고 진했었다. "
하고 나는 말한다.
육군 대령 구대령이 아닌 자옥은
"그래 맞다 맞아. 조건없이 좋을 때였어. "
술잔이 돌고 우리의 이야기는 세월의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 했다.
그나 나나 아가씨 꽁무니 따라 다니던 뜨거운 피의 청춘 장교가 이제 남을 위해 헌신하는 나이와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그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 둘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한 안 숨어서 했지.
그러나 이제 드러내기로 했다.
내가 말을 하여야 남들도 남에게 도움을 주는거야.
사람들은 남을 돕고 싶어도 도울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
그의 말을 들으면서 한 이부자리에서 느꼈던 그의 따뜻한 체온과 진득하고 차분한 젊은 날의 목소리와 패기를 나는 생생히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추억의 이름으로 기억 될지 모르는 이 밤
우리는
다시
이 밤을 조심스럽게 찢어서 절반씩을 나누어 가질 참이다.
지금 이 시간
누구는 연인과 밤을 밟고
누구는 군장을 차리며
누구는 앉아서 묵상하리니
이제
너희의 청춘은 이제 문을 닫고 인생의 출발이 시작되었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다치고
또 더러는 건강히 나오리라.
장교는 무엇인가
내가 있고 부하가 있고
젊음!
패기가 있기에 아름다운 것.
내가 추억을 말하는 동안
너희들은 추억을 만들라.
후배들을 태우고 떠나는 입영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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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