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3.01 23:59수정 2000.03.02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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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저물던 지난해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홍세화씨의 귀국은 홍세화씨 개인에게나 우리사회 전체에 세기의 전환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빨갱이'로 몰려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고 남한 최고의 재벌 정주영씨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고... 홍세화씨의 귀국은 바로 근 반세기동안 우리사회를 옥죄어왔던 반공이데올로기가 이제 더이상 지배층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줬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우리는 홍세화씨의 귀국을 보면서 은연중에 '이제 정치적 망명객은 사라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이유진씨가 쏟아낸 사연은 우리의 이런 예단이 안이한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유진씨는 지난 1963년에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 5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1975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얻었습니다. 그런 그가 '간첩'이라는 멍에를 쓰게 된 것은 지난 1979년. 대학후배이자 당시 코트라 부관장인 한영길씨의 정치적 망명을 도운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이유진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영길씨는 당시 부인이 가출했다 쎄느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자(이 죽음은 자살로 판명이 났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로부터 '공무원의 신분으로 마누라 하나 간수 못해서 국가 위신을 망쳤다', '한국으로 데려가 혼 좀 내줘야 되겠다'는 등의 압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지만 아무튼 한영길씨는 한국으로의 송환을 피하기 위해 이유진씨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겁니다. 파리 거주 한인들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입김이 막강했던 상황에서 한영길씨는 중앙정보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 반정부인사 이유진씨가 인간적으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겁니다.
유신 말기인 1979년 이유진씨는 프랑스 문부성에서 일하면서 한인동포들 사이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한영길씨의 망명사건 이후 이유진씨는 한국 언론을 통해 자신이 '북괴 공작원'으로 둔갑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유신체제를 비판하던 많은 해외 지식인들이 겪었던 일을 이유진씨 역시 경험하게 된 겁니다. 당시 주불 한국 대사관에서는 이유진씨가 간첩이라는 근거로 이씨가 한영길씨를 데리고 북한영사관을 찾아갔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한인신문 "오니바(Oniva)" 2월 15일자 기사와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방송된 이유진씨와의 인터뷰(3월 1일), 그리고 파리에 있는 하석건씨의 도움말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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