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을 다시 일으킬 것인가! - 두 번째 이야기

미시령사고 희생자 추도사·추모시 전문

등록 2000.03.02 17:03수정 2000.03.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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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추도사' 전문과 '추모시' 전문입니다.

<추도사>

사랑하는 내 아들·딸. 현경이, 학윤이, 현아, 영훈이, 정태, 정은이, 근열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기가 차고 숨이 막혀 목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울음 터뜨리는 것조차 버겁다만… 아직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나운 눈보라 몰아치는 험준한 산길속에 고통스레 죽어간 너희들 아픔만 하겠느냐.

너희들이 영원히 우리곁을 떠나갔다는 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이냐. 방학이라 평소 늦잠을 잘 시간에 신입생들을 보러간다며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가방을 챙기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너희들을 지금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도 믿을 수 없다.

내 딸이, 내 아들이. 엄마, 아빠 품에 안겨서 울고 웃던 사랑스런 모습을 뒤로 한 채 느닷없이 차디찬 손마디 얼어붙은 가슴을 하고 돌아왔단 말이더냐.

아가, 우리 아가, 우리 예쁜 아가. 눈을 떠서 제발, 제발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아빠, 아빠!"하고 한번 불러 보렴. 너를 가슴에 묻고, 아빠는 남은 생을 어찌 살라고, 이 무심한 것아!

우리 딸, 우리 아들. 아빠, 엄마한테 이 세상에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더니…. 넘어질까,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고이고이 곱게 길러 놓았더니, 이제 어찌할꼬, 이제 어찌할꼬…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미시령 산신령님이 너희들 그 고운 마음을 시샘했다더냐. 가슴이 무너진다. 아빠를 용서하지 마라. 그 험하고 먼길, 동행이 되어주지 못함을. 여리디 연하고, 겁 많은 우리 딸·아들 홀로 보내야만 하는 이 아빠를 용서하지 마라.

우리 딸·아들,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가 버거웠더냐. 그랬다면 부디 그 먼길 걸어걸어 닿거든 너와 같은 사랑만 모여있는 그곳, 그곳에 가거든 현세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일랑 접어두고 내세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도모하렴.


사랑스런 내 딸, 자랑스런 우리 아들·딸들아!
정녕 이대로 보내야만 하느냐. 그러나 잊지 않으마, 영원히 잊지 않으마.
3,000여 명의 신입생들을 대신한 너희들의 거룩한 희생을, 더불어 사는 삶을 살려 뛰어다녔던 너희들을 결코 우리는 잊지 않으마.

사랑한다… 억겁의 세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 딸 우리 아들 마지막 가는 길에.
현경이 아빠가


다음은 노제 때 동국문학회 회원들이 읽은 추모시 전문입니다.

<추모시>

1.

그날의 그 길은
새 마음으로 새 후배를 맞으러 떠나던 길이었습니다.
보름 가까운 낮달이 뜬 시간,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던 고갯길에서.
스물 한 살의 친구들은 새학기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깨진 안경과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집의 열쇠.
일정이 빽빽이 적힌 다이어리와
흩어진 유리 파편들,
조각조각난 그대 마음까지
이제 우리는 떠나보내려 합니다.

그대 체취가 묻은 공간을 지나
그대와 호흡하던 사람들을 지나
그대가 자라온 시간들을 건너
미시령 고개넘어 멀리 먼 바다까지...!!
그대가 먼저 연 봄길을 따라
미시령 바퀴자국은 이곳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나이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많던 친구들.
항상 곁에서 웃던 그대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지금이라도 부르면
금세 대답할 것 같은 그 이름을
아침 인사 건네듯 이렇게 불러 봅니다.


2.

학윤아
처음 들어왔을 때 네가 보여주었던 따뜻한 웃음이 자꾸 떠올라.
뭐든지 하고 싶은 게 많았던 학윤이.
지난번 합숙 때 묘비명 쓰기에서
'죽으면 날 잊어 달라'고 했던 그 말
기억하니.
우린 네 몸에서 흐트러져 날린 하나의 흔적조차
잊을 수가 없어.
누나 자랑을 하며 좋아하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거야.
탈처럼 활짝 웃으면서 니가 가고 싶어했던 중국 다 돌아보고
사범대 벤취에서 혼자 누워
봄을 느끼던 그 모습 그대로
씩씩하게 좋은 데로 가길 바랄게.

정은아

언제나 남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친구야.
니가 좋아했던 개 백구는
엄마랑 여전히 시장 잘 갈테니까
걱정하지만.
넌 항상
좋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지.
우리가 니 몫까지 아이들에게
좋은 시 읽어줄게.
니가 부르던 노래,
니가 좋아했던 글귀들,
조금씩 담아서 나누어 줄게.
너무 착해서
남의 아픔을 참지 못하던 정은아.
네가 지켜주었던 다친 친구들
우리가 잘 보살필게.
이제는 다른 사람들 걱정하면서 우는 거 그만하고
웃으면서 가.
내 마음 알지.

현아야.

우리의 이쁜 선전부장 상도동 현아.
언제나 꼼꼼하게 일하면서
기발한 생각으로 우리를 놀래켰잖아.
털털하게 웃으면서
친구들 챙기던 모습 잊지 않을게.
니가 좋아하던 카톨릭 수화 그대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항상 니 얘기를 듣고 있을거야.

정태야

앞에 나서지 않아도
보면 항상 자리에서 웃고 있던 우리 어리버리.
큰누나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항상 죽음에 대해 얘기하곤 했었지.
큰 키에 멋적게 웃으면서
담배 피던 모습이 기억이 나.
니가 보고싶어하고
잊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언제나 밝은 모습 그대로 기억될거야.
널 보면 웃는 얼굴만 떠올라.
지금도 넌 웃고 있겠지?

영훈아

사소한 부탁도 거절 못하고
큰 얼굴로 웃던 영훈아.
우리가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더 해도 되겠니.
아버님 어머님 친구들 걱정하지 말고,
넘어지지도 말고 가서
여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니가 잘 부르던 노래도 실컷 불러.
지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지만
항상 다른 사람 먼저 생각하던 너 기억하면서
니 빈자리 채워갈게.

근열아

항상 웃고 다녀서 별명이 방실이였던 근열아
니가 가고 싶어했던 겨울바다는
꼭 들려서 가.
니가 잘 쓰던 말투,
눈싸움하던 모습,
니가 남긴 휴대폰 문자메세지.
다 이곳에 저장돼 있어.
다음엔
니가 하고 싶었던 의사 꼭 하면서
좋아했던 사람들과 건강하게 지내자.

현경아

네가 새가 되었으면 좋겠어.
보고 싶어하던 푸른 바다도 실컷 보고
슬픔 없는 세상에서
네가 가진 날개 펼치며
기쁜 일만 알려주는 기자가 되길 바래.
그래, 아주 가끔 우리들이 보고 싶으면
아름다운 날개 퍼덕이며
네가 사랑하는 동기들도 보러오고,
그래도 보고 싶으면 조금만 기다려줄래.
우리가 니 곁으로 갈 그날까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날,
네가 좋아하던 슬러쉬랑 고구마 튀김 안주 삼아
밤새 소주나 마시자.
칠푼아, 너무 외롭거나 기다리기 힘들면
이 말만 기억해.
영원히 우리는 너를 사랑하고
영원히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3.
차마 이렇게 보낼 순 없지만.
이렇게 그대 차가운 손을
놓아버릴 순 없지만
그대 편히 갈 수 있게,
오래 붙들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가끔, 아주 가끔만
그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겠습니다.
아주 환하게 웃겠습니다.

그대가 못내 가슴아파 할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딸 되어드리고
그대가 아쉬워 할
새내기며 친구들
가슴에 보듬어 안고
우리, 저며오는 쓸쓸한 마음을
달래렵니다.
이렇게 차마 그대 잊을 순 없지만
그대 흘렸던 붉은 피처럼
가슴에서 솟구치는 눈물 마르지는 않겠지만,

보내렵니다....!!

미시령 고개 넘어
소금바람 타고 나릴 그대 넋을 따라
학교 구석구석 남은 흔적들 모아서
사라지지 않을 그 이름을 새기렵니다.
계절이 바뀌고 달이 둥글어질 때마다
그 이름을 가만히 부르렵니다.

학윤아, 정은아, 현아야, 정태야, 영훈아, 근열아, 현경아
학윤아, 정은아, 현아야, 정태야, 영훈아, 근열아, 현경아
학윤아, 정은아, 현아야, 정태야, 영훈아, 근열아, 현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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