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한강 대교에서 차는 미끄럼을 타고 대파되니 사람인 들 오죽할까.
눈 한쪽에 유리가 박혀 긴 치료끝에 의안을 낀 눈으로 회사에 겨우 출근한 B 상무는 동병 상형이라고 내게 말하기를
“능력 있는 변호사야. 보상비를 제법 받았어. 자네도 부인 일이라면
맡겨봐. “
하는 권유에 나는 그를 만나러 갔으니, 아내가 교통 사고로 퇴원을 한 다음, 불구의 아내와 함께갈 인생의 길을 아득한 때였다.
덕수궁 건너 소공동으로 가는 길쪽에 있는 태평빌딩 1201호에 이인제 변호사사무실이 있었다. 이 변호사를 소개한 사람이며 내가 찾아온 경위를 말하자 이 변호사는 조용조용하고 나즉하게
“해보지요. 아픈만큼 보상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하며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때가 1988년 1월.
누가 그때 그가 10년이 채 안돼 대통령 후보가 될 줄 알았겠는가.
그는 젊은 변호사였고, 그의 아래에는 법조의 탁류에 적당히 물든 사무장이 그의 치다꺼리를 하고 있었다.
교통사고 배상 청구액은 육천만원 정도였다.
그의 사무장은 이인제 변호사와 내 이름으로 합의서를 썼다.
“보상액을 수령시, 30%는 변호사가 나머지 70%는 의뢰인이 수령한다."
재판은 몇 달 걸렸고, 끝났을 때 사무장은 나를 불렀다.
천만원을 주면서
“30%는 공제했오."
나는 얼마를 받았는지 몰랐다. 내가 전체 수령액을 궁금해 하자 그는
“천 오백이요. “
하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어 나중에 소송 피고인 해동화재에 확인 하니 금액은 틀림없었다.
“영수증은?”
하고 내가 웅얼거리듯 하자 그는 못들은 척
“자, 끝났오.”
사건을 의뢰할 때는 쌍방이 합의서를 쓰고도, 돈을 받을 때 마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상비를 주듯 하는 사무장에게 나는 쩔쩔맸었다.
교통사고 소송은 흔히 7.3제로 사고 피해자와 변호사간에 일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민사의 계약이니 무슨 시비가 있을 것인가.
불구의 아픔을 일생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법에 약하니, 다만 얼마라도 건지면 다행.
정의의 편에 서겠다고 법전을 끼고 있는 변호사가 역량껏 일해서 보상금을 받았으니 무슨 시비인가.
나는 그 시비를 이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합의에 따른 돈을 받았으면 당연히 영수증을 써주지 않는 사무장의 자세를 따진다.
10여 년이 지나도 그 일이 걸린다.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사람이 주위 사람들때문에 닥달질당하는 것이 어디 한 두가지일까.
내가 말하는 이런 업무적인 일은 얼마나 티끌중의 티끌인가.
그러나 이인제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말할 때마다 나는 내가 그에게(그의 사무장)에게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들에게 넘어간 돈과 그 돈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못 받은 영수증 생각이 고통처럼 다가 오는가.
선비처럼 단아한 변호사와 적당히 더럽혀진 사무장의 완벽한 부조화 속에 다른 소송들이 그 전후 이루어졌을 터.
필시 나만 겪은 일이 아닐 것이며, 법조의 물결에 능수능란한 사무장이 때로는 상전이기에 변호사가 몰랐을 수도 있겠지.
사무장 하나 거느린 시절의 이 변호사가 지난 번에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었다.
이제는 다시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 뛰겠대지 ?
그의 수하에 참모들이 그를 따르고 있을 것이니 참모들 몇몇의 흉이 이인제 씨의 흉이 될까 염려한다.
소리 높혀 정의와 한국의 운명을 카랑카랑하게 말하는 이인제 씨의 모습을 오늘도 텔레비젼에서 보면서 나는 투명한 정치인이 되주기를 바란다.
변호사 시절, 불구가 된 사람의 돈을 정당히 받고 정당히 영수증을 써주어야 했듯 국민들이 그를 믿고 밀어주면 그에 따른 영수증으로 살신성인하여야 한다.
그가 남을 말하듯 <서산에 해지는 사람>처럼 그는 지지말고 뜨는 태양이 되기를 바란다.
그와 한 번의 거래를 하고 나는 여태도 그에 대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단호하고 분명했던 태도를 정답게 생각하지만 다른 숫한 민초의 소리없는 아우성은 그는 들어서 일처리를 유리알처럼 하라.
한 번 태어나 사나이가 대통령 한 번 하자면 해보는 거지만 나중에 더럽혀지는 대통령보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대통령으로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남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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