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19년동안 살아온 곳은 충북 청주시이다.
분지라 바다를 접할 수 없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 내가 살았던 때만해도 인구 30만명에 지나가는 행인들 얼굴만 봐도 모두 낯이 익은 그런 곳이었다.
어느 날 이웃 집에 전라도에서 새댁이 시집왔다.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고 조금씩 조금씩 이웃들과 어울려 갔다. 그러나 늘 친구들과 놀다보면 아주머니들의 쑤근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역시 전라도 치들은 못믿어...."
대학을 서울로 오기 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친구들은 모두 동네 애들이었다. 기껏해야 청주 외곽인 증평, 충주 등에서 유학(?)온 친구들이 다른 도시(?)출신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내가 처음 대학신입생 환영회 날, 처음으로 광주에서 올라온 같은 과 동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두근거림은 잊을 수 없다. 적어도 내게 있어 광주는 평양보다도 먼 곳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동기들은 이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건만, 광주에서 올라온 동기는 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해외동포로 느껴졌다.
대학 4년동안 우리세대의 주제는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군사정권과 변절문민정권의 독선에 대한 투쟁과 조국통일운동이었다. 참 많이도 최루탄 향기에 취해 봤고, 여러번 유치장에서 12시간 이상동안 컵라면 하나 먹으며 갇혀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광주출신도 부산, 대구 출신도 아닌 부도덕에 함께 저항한 그저 내 친구였을 뿐이었다.
최초의 문민정권이라고 떠들던 변절자를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 11위 경제규모가 하룻밤 새에 경제파탄선언 직전까지 가도록 철저히 파괴되었다. 변절자와 무능력자는 같은 의미라는 것을 인식시켜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 국민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없이 개발도상국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는 여당이 정책실패로 국가를 파탄으로 몰고간 데에 대해 당연히 그 책임을 묻고 이에 새로이 야당에게 정책설계를 맡긴 것일 뿐이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정권이 옮겨간 것이 아니라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옮겨간 뿐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보였다. 아니 그들은 교활했다.
그들은 다시 우리나라 역사를 국사책에서도 수천년 전으로 기술된 삼국시대로 되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외쳤다. "자, 다시 경상도에서 정권을 창출하자!"
5.16군사 쿠테타의 반역자로서, 파쇼정권의 창출자로서의 평가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 먼저 또다른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너희들이 충청도를 위해 무슨 일을 했기에, 감히 충청도에 기반을 두었다고 외치는가? 충청도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기에 너희들이 감히 너희들의 텃밭이 충청도라 외치는가?"
초등학교 시절 난 우리나라 크기가 미국의 1개 주만도 못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더구나 그 작은 땅이 반으로 갈라져 있고...
난, 아직도 내 조카들을 통해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과거 신라에 의한 불완전 통일이 아닌 하나의 조국.
그러나 지금 나의 소원은 작은 통일이다. 또다른 조국, 북한을 생각하기에 너무도 추잡한 그들이 있기에 지금 나의 통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의 완전한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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