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3.06 23:23수정 2000.03.07 11:41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젊은 친구들이 벤쳐를 하면서 억만금을 버는 동안 다른 그늘 아래에서는 죽어가는 젊음이 있으니 여기, 한 젊음이 발병에서 영안실에서 갈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이미 죽은 자의 실록이며, 살아있는 자의 예고편이다.
맹차장이 내게 다가오는데 태도가 심상치 않다. 거의 귓속말 할 정도로 다가온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기분으로 가슴이 철렁.
"양과장, 사표 써야겠어요."
"사표, 이제 입원 처리 중인데? "
연세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한 그를 문병갔을 때의 모습은 회복하는 듯이 보였었다.
"출혈이 대단하답니다. 수술을 해야겠는데 위치를 못 잡는답니다. 어쩔 수 없다고 퇴원하랍니다. "
"무슨 암? "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나가서 보고 연락드릴게요."
이게 무슨 일.
그레고리펙처럼 잘 생기고 늘 웃음띄고 만사에 긍적적인 그가 무슨 벼락인가? 겉보기엔 낙천적인 그에게 남모를 고민이 필시 한 둘이 아니었을 터이지만 그의 탄탄한 몸속에는 작은 벌레들이 스믈스믈 자라왔었다는 것인가.
입원중인 양과장을 보고 맹차장이 왔다.
"간암이랍니다. 말기라서 손을 못댄답니다. 길게 두 달, 짧게 한 달이랍니다."
아득해진다.
"출혈이 아주 심합니다. 물 한 모금도 못합니다. "
"본인은 ? "
"알려 주었습니다. 출혈만 멎으면 집에서 아이들하고 보내겠답니다. "
내 손 위 위 동서가 췌장암 선고를 받고서 한 달만에 운명했었다. 죽기 얼마 전 암으로 생긴 고통으로 인내의 한계를 못참아 거의 미쳐갔었다. 누구나 도와줄 수 없는 고통이 온다. 너무나 빨리 다가온 시간 때문에 환자에게 병을 속이고 뭐고가 없이 환자에게 바로 알려준 듯했다.
막내가 이제 두 살
부인은 어이 살까?
앞으로 다가올 세월은 무진 무진한데
어이 살까?
주위에서 안타까워한들
그것은 잠시뿐.
다행히 암보험 하나는 들었다고 했다.
술이 장사고 지난번 술고래였던 김부장의 맞수였던 그의 최후는 간암 말기이다.
평소 아픈데 없고 신검 때도 혈압 높아본 적 없던 팽팽한 젊음, 1961년 10월생은 이대로 쓰러져야 하는가?
내게는 아침까지 멀쩡하던 아내는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생명을 장담할 수 없고, 잘 되어야 전신마비될 것이라고 했다. 가슴은 절망감으로 막막했었다. 병원 2층 계단에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나는 유리창밖으로 몸을 내던지고픈 유혹을 느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살고 있다.
병원과 직장을 오고 가면서 나는 문고판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속에 현실을 묻어가며 살았다. 잠시 눈을 그냥 감고 있으면 한낮에도 악몽이 다가오고 머리에 추를 매달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를 두고 어디를 갈 수도 없는 나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꽁지를 따라 다니며 아내의 병상을 지켰다.
간암 말기로 예고 살인된 양과장 생각을 하면 나는 막막했다. 직원들이 다 퇴근한 뒤까지 사무실을 머물면서 나는 호흡까지 힘들었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자주 자주 양과장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
누구나 죽음은 정해져 있다.
때로는 유혹의 선을 넘는 사람이 있고 생각하지도 않은 사람이 선을 넘게 된다.
전신마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아내는 다행히 장애는 있으나 살았다.
양과장에 대한 진단이 오진이었으면
암에 대해 오진도 자주 있지 않은가?
함께 웃는 시간을 기다린다.
이 밤까지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