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의 한마디에서 내 가슴에 분노의 <불꽃>이 일었다

벤처는 말한다, 너를 모두 바쳐라!

등록 2000.03.07 12:28수정 2000.08.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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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화요일은 '허준'을.. 수요일, 목요일은 '진실'을 보며 하루의 시름을 씻어 보냈다. 전광렬의 바보같은 표정이나 지나치리만큼 노골적인 감동 장면을 직장 동료들은 비웃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 모습들이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고 덜 세련되어 보여서 마음이 편했다. 너무 완벽한 상황을 보면 경직되는 것과 반대되는 심리이리라.

또 언론에서 연일 '위화감 조성'이니 '뻔한 스토리'니 하면서 '진실'을 깎아 내렸지만 불륜이 아닌 젊은이들의 사랑이 아름다워 보였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적들, 승리들이 나의 마음을 쓸어내려 주었다. '진실'을 보고 난 후 다음날 '울었다'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나는 정말로 가슴이 저릴 만큼 사랑이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던 '진실'이 끝나고 허전한 수요일, 목요일을 무엇으로 때우나 고민하던 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동해 마지않은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이 쓰는 '불꽃'을 보기로 했다. 한 주를 공허하게 보내다가 '어떤가 보자'는 심정으로 텔레비전앞에 앉았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진실'을 보면서 느꼈던 심한 답답증이나 눈물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그저 객관적인 입장에서 '김수현이 역시 대단해'라는 관찰자 입장에서 보게 되었다. 그 대가의 기술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넘어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빠져들지 않으려고 했을까?
아무튼 그러다가, 지난주 방영분에서 차인표가 스카웃해 온 직원 두 명과 연봉 체결하는 장면을 보고 밥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정해진 연봉 금액은 적어도 성과급 비율이 높았으면 좋겠다는 말, 그래서 연봉 4천에서 3천 5백으로 깎고 성과급을 높이고, 대출받은 돈 때문에 이자 100만원을 더 쳐주는 회사. 물론 3천만원, 4천만원 받는 사람이 보면 아무렇지도 않았겠지만 그 절반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로서는 속이 뒤틀렸다. 성과급이라는 올가미로 직원들의 목을 옥죄는 회사의 술수를 술수로 보지 않는 모습도 거짓말을 넘어서 공갈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 허를 찌르는 차인표의 한마디.

"우리는 구질구질하게 직원복지같은 거 안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 열에 두세명은 소위 벤처 회사를 다닌다. 모두들 스톡 옵션이다, 성과급이다, 누가 어떻게 되었다더라, 마치 일제시대 독립꾼에 대한 이야기인양, 전설처럼 신화처럼 무수한 소문이 떠돌아 다닌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8시간 노동, 인간다운 삶의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자본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는 것이므로 여성의 경우 어머니일 권리(생리휴가)도 보장받아야 하고, 8시간 노동, 8시간 수면, 8시간 재충전을 얼마나 바래왔던가? 하지만 벤처에는 출근시간만 있을 뿐 퇴근 시간은 없다. 휴가는 고사하고 휴일조차 쉴 수 없다.

간혹 점심 시간이 2시간이네, 회사에서 DDR을 하네... 특출난 회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과중한 업무에 삶을 담보로 살아가고 있다.
벤처는 말한다. 너의 젊음과 인간다운 삶을 바쳐라!
짧고 굵게, 한 10년 후에는, 기반 잡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는 그 때에는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야지. 아내도 사랑해 주어야지.
하지만 아내는 차가운 방에서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장바구니를 든 채 나이트 클럽으로, 단란 주점으로 향하고 있다.


벤처 회사들이여!
인간다운 삶을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휴식을 구질구질하다, 배려를 구질구질하다 생각하지 말라. 최소한의 예의, 적어도 일요일만큼은 가족의 품으로 그들을 보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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