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3.24 10:00수정 2000.03.24 18:1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애국가를 부르는 파란 눈의 백인 여성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지난 18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시 컨벤션센터에서는 파란 눈의 한 백인 여성이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레이첼 마틴. 노래를 마치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미국태권도협회(회장 이행웅)가 주최한 봄철 전국대회 개회식에서 연출된 모습이다. 레이첼이 애국가를 부를 때 2천7백여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단상에 걸려 있는 태극기와 성조기, 협회기를 향해 예를 표했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 전역에서 미국태권도협회 소속 도장 수련생들과 가족들 2천7백여명이 참가했다. 기자는 애국가 뿐만이 아니라 행사 기간 내내 미국인 수련생들에게서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렷!', '경례!'라는 구령에서부터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법, 말끝마다 '써!'라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그랬다. 행사장 곳곳에서 마주친 수련생들은 시선을 마주치게 되면 무조건 인사를 했고 이행웅 회장을 비롯한 매스터들에게는 등 뒤에서도 인사를 했다.
미국태권도협회에서는 매스터가 되는 것이 꽤 어렵기 때문에 매스터들이 수련생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행웅 회장을 동행 취재하는 기자에게까지 최대한의 예를 차렸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생활철학으로 삼고 사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라스베거스시 교외에서 남편과 함께 태권도장을 하고 있는 브랜든 부인은 "아이들은 재미 있어서 다니고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예의 바른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도장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들이 자신의 스승이나 이행웅 회장에게 보여주는 예의가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그것이 미국문화가 아닌 한국문화라 할지라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간명하게 대답했다.
9시간 동안 수련생들에게 사인해주는 이 회장
이행웅 회장은 "미국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자신보다 나은 실력을 갖춘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줄 안다"면서 "항간에는 미국태권도협회를 이행웅이의 사조직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들을 하는데 오히려 우리 제자들은 존경할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내에는 이행웅 회장이 창설한 미국태권도협회 말고도 세계태권도연맹 계열의 미국태권도연맹(회장 이상철) 등 많은 태권도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중 미국태권도연맹 같은 경우는 이행웅 회장의 미국태권도협회를 한국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의 노선에서 이탈한 이단세력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태권도협회가 협회를 이행웅 회장을 정점으로 하면서 수련 정도에 따라 피라밋 형태의 체계를 갖춰 운영하면서 한국 태권도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무도정신을 지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품새와 겨루기 대회가 열린 18일에 대회장에서는 하루 종일 진풍경이 펼쳐졌다. 단상 아래에 자리잡은 이 회장의 자리에 이 회장의 사진이나 자신의 도복 띠를 가지고 아이들이 몰려든 것이다.
이 아이들은 그랜드 매스터인 이 회장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고 학부모들은 기념촬영을 요청해왔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이 사인행렬은 대회가 모두 끝난 오후 6시 30분까지 계속 됐다.
이 이야기는 이미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와 인천방송의 특집방송을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데 해마다 6월에 알칸소주 리틀락시에서 열리는 미국태권도협회 월드챔피언쉽 때는 이 사인 행렬이 3일 동안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장의 비서인 헤더 브레킨스(29)씨는 "건강에 무리가 가지만 그랜드 매스터 리(이 회장) 가 워낙 아이들을 사랑해 말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나를 보기 위해 미 전역에서 여기까지 찾아 온 수련생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내가 힘들다고 거절할 수 있겠느냐"면서 "월드챔피언쉽 때는 사인을 해 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 3일 동안 아예 단식을 한다"고 털어놨다.
과연 미국태권도협회는 어떤 단체고 이행웅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