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가출 3

등록 2000.03.24 12:00수정 2003.10.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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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가 "빌어먹을 자식아"라고 소리치고 나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앉아 버린 것이 무척 슬펐다. 나는 분명히 그의 자식이었다. 그것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의 외아들이었다. 빌어먹을 자식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 자신도 내가 그의 자식인 것만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하다못해 아버지가 그래 어디 병원이라도 갔다와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봐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나의 그런 작은 기대조차 너무 지나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 며칠이 더 지나자, 새어머니는 또 다시 내게 언제 학교에 나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내 속에 들어 있는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것은 위험했다. 사람들은 그 무엇 하나 순수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는 내 생애 두 번 다시 학교 문턱을 넘어서는 멍청한 짓은 되풀이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올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서 그 어떤 특별한 이유와 설명을 듣게 되기를 원할 것이지만, 싱겁게도 내 대답은 언제나 똑같을 뿐이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그저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학교가 싫었다.
그 학교를 뱅 돌아가며 정방형으로 둘러친 시커먼 쇠창살 담장이 싫었다. 그리고 그 학교 안의 스물 아홉 개인지 삼십 개인지의 사각형 교실이 싫었다. 그 교실마다 앞뒤로 두 개씩의 문짝이 달려 있는 것이 싫었으며, 언제나 그 문짝 위에서 덜그럭거리는 배불뚝이 자물쇠가 싫었다. 역시 예외없이, 그 어느 구석인가에 어떤 놈이 질겅거리다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껌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 사십 다섯 쌍의 책상과 의자가 싫었다.

늘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교사들이 싫었으며,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이름표를 달고 앉아 있는 사십 네 명의 커트머리들이 싫었다. 자갈 투성이 운동장이 싫었으며, 그 운동장 한 편에 놓여 있는 하나같이 시커멓게 녹슨 운동도구들이 싫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넘도록 같은 판형에 같은 글꼴의 글씨를 찍어내고 있는 교과서도 싫었다. 단 한마디로 나는 학교와 관계된 모든 것이 싫었다. 나는 학교 혐오증 환자였다. 내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면, 나는 오히려 더욱 더 많은 결핍을 느낄 뿐이다. 내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한다면, 내 몸 속의 구멍은 결핍으로 점점 더 커질 뿐이다. 그러다 나는 결국, 그 어느 한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학교가 싫다고 해서 학교에 가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의 심정은 절망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말 내가 제멋대로 살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무심한 태도로 봐서 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어머니 역시 나하고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게 언제 다시 학교에 나갈 것인지를 묻지도 않았다. 새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들은 나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오해와 불신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내게 그나마 관심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까지 비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 모두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천애의 고아라도 된 것 같은 격한 비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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