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3.24 19:04수정 2000.03.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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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 2월 18일, 금요일
셀은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오늘 일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입주식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조급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고, 이제 지붕 공사가 관건이다. 지붕에서 하는 모든 작업은 자원봉사자들이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고,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자들이 별로 없는데다 전기 드릴이나 지붕공사에 필요한 특수한 장비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젯밤 셀은 전기 드릴은 두 개밖에 없고, 철근을 자르는 데 필요한 장비도 하나밖에 없어서 공사를 제때 마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전문 기술자와 장비 부족으로 어젯밤, 몇 안되는 기술자들은 지붕 공사를 제때 끝내기 위해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까지 작업을 했다. 내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작업장쪽에서 번쩍거리는 불빛과 간혹 요란하게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작업을 끝내고 내일 입주식을 갖기 위해서는 적은 인원과 장비가 부족한 여건에선 밤새워 일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몸으로 때우는(?) 나같은 자원봉사자도 절실히 필요하지만,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고가의 장비들에 대한 지원이 헤비타트 운동에 있어서 시급한 문제라 하겠다. 집이란 것이 여러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러한 분야의 지원 없이는 주택 보급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셀과 함께 나도 걱정 속에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일어나지를 못했다. 어젯밤 이유를 모를 심한 설사와 복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셀은 타국에서 온 우리 대원들의 건강에 아주 예민해 있었는데, 설사나 열이 있는 사람은 곧바로 자신에게 얘기해 줄 것을 당부해 왔었다. 셀은 혹시 내가 미네랄 워터가 아닌 이곳 사람들이 먹는 물을 먹지 않았나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설사를 한 것은 별 문제가 안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이지만, 문제는 설사 이후에 내가 기운을 차릴 수 있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한 설사를 겪고 나면 모든 사람이 힘이 빠지면서 탈수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뭔가를 섭취해 주어야 하는데, 나는 계속되는 구토때문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운이 없고 일어나지를 못했던 것이다. 아마 뭔가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면 아마 평소 때처럼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메디컬 팀에선 나에게 탈수를 막아주는 링겔을 놔주었다. 사실은 그냥 마셔버리면 되는데, 내가 계속 아무것도 못먹겠다고 하자 주사로 놔준 것뿐, 링겔이라고 해서 내가 심각하게 아팠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들 내 손등에 꽂힌 링겔 주사 바늘을 보고 정말 많이 아픈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냥 누워있으라고만 했다.
오던 날부터 이들이 얼마나 친절한 사람들인가에 감동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황송하리만치 나에게 신경을 써주었다. 워낙 먹은 것이 없었던 나에게 수시로 물을 가져다 주었고, 배앓이에 좋다는 필리핀 과일도 가져다 주었다. 그외에도 자주 숙소를 들여다보며 혹시 더 나빠지지는 않았나 확인을 했었고 내 이마를 짚어보며 혹시 열이 있지는 않나 꼼꼼히 나를 돌봐주었다.
어젯 밤 한숨도 자지 못했던 나는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날이 더웠는지, 실내에 누워있는데도 여느 때보다 더 후끈거린다는 것이 느껴졌다. 점심시간쯤 선정이 언니가 돌아왔는데, 유난히 오늘 날씨가 후덥지근하다고 했다.
혼자 누워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작업이 얼마나 되어가는지 너무 궁금해서 오전의 일들을 물어봤더니,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단계라 남은 일들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멤버들이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지금은 쉬는 중이라고 언니가 말했다. 또 오늘따라 날이 너무 더워서 필리핀 기술자들도 쉬엄쉬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냥 누워있기만 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지만, 커다란 링겔병을 달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았다. 아픈 걸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주사바늘을 꽂고 밖으로 나가면 아무래도 사람들한테 걱정만 끼칠 것 같았다. 그런데 셀이 내가 답답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 나에게 나가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주사때문에 안될 것 같다고 하자 셀은 한사코 걱정마라고 하면서 나를 밖으로 끌었다.
천막엔 어제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늘은 라디오 방송국과 케이블TV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 우리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필리핀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무척 호의적이라 우리에게도 쉽게 말을 건네곤 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한다는 마가렛은 내 옆으로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이번 일에 참가한 것에 대해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았는데, 한국의 2월은 겨울이라고 하자, 그녀는 무척 놀라며 더운 날씨가 적응이 잘 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선정이 언니가 캠코더로 몇 장면을 찍으려 하자 그녀는 자기도 우리의 인터뷰를 따고 싶다며 마이크를 가지고 왔다. 지난번 방송국에서 나를 인터뷰했을 땐 말이 제대로 안나와서 참 쑥스러웠는데, 이번엔 분위기가 편안해서 였는지 무난히 인터뷰를 끝내고 저녁 시간이 되어 숙소로 돌아갔다.
셀도 알고 있었다. 우리 대원들이 필리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도 분명 걱정이 많았으리라. 어떻게든 우리가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녀는 우리를 위해 특별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고 있는 한 부부가 있었는데, 셀이 그들에게 우리의 입맛을 얘기한 듯 싶었다.
그들은 탈락 시내에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에 데려가기로 했다. 음식이 꽤 비싸고 탈락 시내에서도 부유한 사람들만 간다는 곳이었다. 어김없이 우리는 집니에 올랐는데, 셀은 아직도 나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비좁고 먼지가 많이 들어오는 집니에서 내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식당으로 안내할 그 부부의 차를 타지 않겠냐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멈칫거리고 있자, 그 부부가 다가왔다. 남편의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그 아내의 이름은 팀핀이었다. 서슴지 말라고 하면서 그녀는 차 문을 열어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는 차에 올랐다. 그 식당도 꽤 먼 거리에 있었는데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물과 비스켓 두 조각밖에 없었던 나는 덜컹거리는 차속에서 장시간 시달리는 바람에 심한 멀미로 고생해야 했다.
팀핀은 무척이나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면서 오늘 밤 자신의 집에서 묵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에어컨 바람 좀 쐬고 편안한 곳에서 잠을 자면 몸이 좋아질거라고 하면서 필요하면 의사도 불러줄 수 있다고 했다.
신세지는 게 미안해 한사코 거부했지만 팀핀의 오랜 설득으로 나는 선정이 언니와 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의 집에 들어서고 나서야 이들이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대부호임을 알게 되었다. 아팠던 덕택에 나는 그 집에서 하루를 머무르면서 평생 가도 느끼지 못할 필리핀의 극과 극을 경험하게 된다.
팀핀의 남편은 탈락에서 대규모 운수회사를 경영하는 운수업체 사장이었다. 나이는 겨우 서른 여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것을 물려받아 젊은 나이에 돈을 꽤 모은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집은 그냥 평범한 아파트처럼 보였지만, 안에 들어가보면 말이 달라진다.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실내와 대리석으로 된 바닥, 다섯명이 넘는 가정부, 두살 난 아들에게 딸린 보모와 한살 난 딸에게 딸린 보모, 그리고 우리가 타고 온 차를 운전했던 운전기사, 개인 수영장, 그리고 가구도 모두 비싼 것들이었다.
짐작할 순 없었지만 아무래도 내놓라 하는 갑부였던 듯 싶었다. 팀핀의 남동생은 필리핀 헤비타트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헤비타트 필리핀 지회의 director 였다. 그래서 팀핀과 그의 남편은 헤비타트에 자주 지원을 해왔었고, 헤비타트가 집을 지을 땅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는 집은 아직 한국에서도 보지 못했는데, 도대체 빈부격차가 얼마나 격심한 것일까. 집이 없는 사람이 400만이 넘는 나라에서 대리석이 깔린 집에서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른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필리핀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깨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핀엔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잘 사는 이들이 없을 거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방식 말이다.
한편으로 다행이라 생각이 든 것은 부유한 사람들이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나누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서 하루를 머무르는 동안 홈파트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일 오후, 홈파트너들이 지금 살고 있다는 판자집을 직접 방문하게 되면서 필리핀의 극과 극에 대해 머리가 어지럽도록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 마지막 날 이야기 : 입주식과 작별... 그리고 우리가 느낀 것,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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