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눈물샘을 자극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다 아버지와 결혼한 이후로 내내 술독에 빠져 살다가 마침내 간경화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울지 마라. 사내새끼가 그렇게 약해빠져서야 뭐에 쓰겠니?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을 때에도 나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어쩌면 이를 악물어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채 새 장가를 들어야 했던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오고 나서 며칠이 지난 날 밤, 나는 비로소 새어머니에게 태기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 며칠 동안 아버지가 평소 같지 않게 순대 따위를 사들고 들어오면서 새어머니와 시시덕거릴 때 이미 알아챘어야 했던 일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그 동안 내게 소홀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후엔 그들에게 새로운 자식이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 나 같은 개망나니 자식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터넷을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 여자아이의 사연을 보게 된 것은, 내가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 지낸 지 거의 이 주일이 지난 날 밤, 새벽이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십대들의 고민'이란 사이트의 게시판에 떠 있는 그 여자아이의 사연을 읽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앉아 그 아이의 사연을 읽었다.
아빠가, 가출을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서 처음 아빠가 가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엉뚱하게도 엄마가 우리를 웃기려고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출은 그저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와 남동생은 아빠가 가출을 했다는 말에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인간은 더 이상 너희들의 아빠가 아니야.”
엄마가 아빠를 그 인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 나는 그 말이 풍기는 묘한 뉘앙스 때문에 그날 아침 심한 무력감에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는 그 인간이라고 지칭한 대상에 대한 짙은 혐오감이 배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증오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평소 그다지 금실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애정은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날 아침, 나와 동생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아침밥을 걸렀습니다. 나는 배가 고픈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동생은 식탁 주위를 맴돌면서 엄마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앉아 좀처럼 우리 남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으로 내려서는데도 계속해서 자기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습니다. 나는 이러다가 엄마마저 우리 남매를 버려 두고 가출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날 아침,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와 보면, 텅 빈 집안에 냉기와 어둠만 가득할 것이라고, 그래서 나와 동생은 졸지에 고아가 되어서 주위 사람들의 연민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슬픈 사연을 간직한 소녀 가장이 되어서 코를 훌쩍이는 동생과 함께 매스컴을 타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린 남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버스 안에서 껌을 팔아야 하는 내 기구한 사연이 전국에 방송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저런 생각에, 나는 갑자기 슬프고 비참해져서 울컥하고 목이 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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