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4일) 대전의 한 유치원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저녁식사가 있었다.
대전지역품앗이운동 「한밭레츠」(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 회원들의 ‘품앗이 만찬’이 바로 그것.
"봄나물을 뜯어 간장에 무쳐오더라도 이웃을 향한 마음을 내는 자리가 되도록 합시다”
회원들은 이 한마디에 집에서 각자 서너 가지의 반찬과 먹을거리들을 준비했다. 싸온 것을 테이블 위에 모아놓으니 훌륭한 뷔페식단이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음식은 남김없이 먹고, 둥글레차로 그릇을 씻어 마셨다. 그래도 음식찌꺼기가 예상보다 많았다고 혼이 났다. 남은 음식은 각자가 가져온 그릇에 나누어 담아갔다.
회원들을 돌아가면서 자기소개와 함께, 그동안 거래했던 내용을 소개하고 제공할 수 있는 품앗이와 제공 받고 싶은 품앗이를 소개했다.
“전 사실 애 돌보는 것 자신없고 잘 못해요. 근데, 우리 애들 둘을 키우고 있으니까 그냥… 내놓을 수 있는게 그것 뿐이더라구요. 애 맡겨보세요. 우리 애들하고 잘 놀면 봐 줄 수 있어요. 못놀면요? 나도 몰라요 그건..”
"며칠 전에 우리밀 빵을 사면서 한밭레츠 회원이랬더니, 만원어치를 칠천원에 샀어요. 3천원 싸게 산거죠. 어? 그게 아니라구요? 싸게 산 게 아니구 나머지는 지역통화 '두루'로 거래한 것이라구요? 아무튼 전 3천원 싸게 사먹었는데…”
"저는 회원은 아닌데, 오늘 이런 자리가 있다고 해서 와봤습니다. 00동에서 주유소 운영합니다. 근데, 기름값 밑지고 팔 수는 없으니까, 회원들에게는 공장도 가격으로 드릴까 합니다. 공장도 가격은 통계청에 알아보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근데, 거래 수수료를 5% 내야 한다는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제가 거래가 제일 많은 ‘거래왕’이라는데…. 사실 빚잔치예요. 거래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제 계좌는 마이너스가 늘어 가거든요. 컴퓨터 출장수리, 침강좌 등 이것저것 받은 것만 많다보니… 이게 워낙 그런 거 같아요. 제가 내놓은 것도 좀 많이 이용해주세요. 그래야 빚을 갚죠. 오늘 이 행사 준비에 밥 제공하고 자원봉사로 조금 벌어 빚을 좀 줄였습니다. 그리고 집에 놀고 있는 자전거와 어린이 비디오를 빌려드리려고 하니까 많이 이용해주세요”
“오늘 이 곳에서 사용한 그릇들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가끔씩 쓰는 물건이나 행사용품 등을 모아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일명 나눔센터(sharing center)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일년에 한 두번 벌초때 쓰는 예초기 같은 걸 돈을 들여 장만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나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메모하면서, 필요한 거래를 생각해본다.
'이사가면 집수리는 저 아저씨한테 부탁하고, 저 아줌마는 친구가 필요하다는데 애엄마하고 처지가 같네… 빵은 우리밀 빵을 사먹고, 둘째 백일, 돌떡은 저 아줌마한테 부탁해야지. 새로 컴퓨터 구입은 저 아저씨한테 조립해달라고 하고 중고 컴퓨터는 저 선생님께 드리면 되겠다…'
대전지역품앗이운동 「한밭레츠」(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는 지난 달 1일 창립됐다. 한밭레츠는 회원간 물품이나 각종 서비스 등을 현금 없이 ‘두루’라는 무형의 공동체 화폐로 주고받는 녹색통화운동을 위한 모임이다.
어떻게 거래가 이뤄지냐고요?
가입회원들은 서로의 노동력을 품앗이함으로써 일정금액의 「두루」를 적립했다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회원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 꼭 「두루」를 쌓아논 이후에야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아니다. 적립된 「두루」가 없는 회원도 상대방의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듯 두루도 미리쓰고 나중에 갚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방진료기능이 있는 회원이 자신의 집수리를 원할 경우 회원중에 건축일에 조예가 있는 회원으로부터 집수리 도움을 받고 나중에 한방진료를 필요로 하는 회원에게 진료를 통해 갚으면 되는 것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지라 회원도 60여명에 불과하고 품앗이 내용도 다양하지 않다. 게다가 한 달 거래 액수가 2천만원은 되어야 자체운영비도 조달하면서 유지할 수 있다는데, 거래 건수는 20여건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나누며 사는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데 큰 뜻을 둔 이 운동에 회원들이 갖는 기대와 애정은 이미 서로의 얼어붙은 마음을 뚫고 새로운 공동체의 싹을 틔워내고 있었다.
소유와 축적의 수단이 아니라 베품과 나눔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화폐 ‘두루’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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