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통재라, 대한민국이 죽었구나

'광주촌놈'의 인사동 블루스

등록 2000.03.26 15:59수정 2000.03.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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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촌놈'인 나는 모처럼 이번 주말을 서울에서 보냈다.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서울의 구경거리들을 찾아나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인사동 골목이었다.

그런데 '한국 것'이 널부러진 '한국의 거리' 인사동을 걸으며 나는 생경해졌다. 그 이유가 무얼까?


바람에 출렁이는 '전통 매듭', 쑥쓰러운 듯 창밖을 내다보는 '한지 인형'.
인사동엔 온통 '한국 것'뿐인데 '한국사람'인 내가 '한국 것'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였던가.
친구의 초청을 받아 그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사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독특한 취미를 꽤나 자랑스러워하며 늘 자랑을 하곤 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집은 일단 푸른 정원이 있어서 좋았다. 관상목 사이로 간간히 석등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부러움에 찬 눈길로 정원을 훑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물건 아니 내 손에 상당히 익숙했던 물건이 비중있게 전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 절구통에 목재 절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겉보리를 가득 넣고 절구를 통통 찧던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나 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게으른 노동의 도구가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한 순간을 나는 증언자처럼 지켜보았다.

생활이 거세된 노동의 도구를 민망하게 응시하던 그날의 기억이 인사동 거리를 거니는 동안 새롭게 떠올랐다.


새색시 패물함으로나 씌였을 법한 한지로 만든 함이 한국의 전통공예 '작품'으로 전시되고, 시아버지 숭늉그릇 노릇이나 했을 법한 사발 대접이 한국의 전통유기 대접을 받으며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것'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감상하며 '골동품'의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수준높은 관객에 의해 선택되어진 '골동품들'은 그들의 집으로 들어가 집주인의 교양을 한껏 높여주는 인테리어 장식품이 될 것이다.


유용되지 못할 생활도구들 태반이 '한국 것'혹은 '전통공예 작품'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인사동을 채우고 있다. 인사동에서 산 한지 함에 패물을 넣을 새색시는 없는 듯 하다. 인사동에서 산 사발대접에 숭늉을 따를 며느리는 없는 듯 하다.

생활도구들이 생활문화를 형성하는데 쓰이지 못하고 '구경'되어지는 기막힌 역설이 인사동의 현재의 모습은 아닐까.
'한국사람'인 내가 '한국의 거리' 인사동에서 접하는 유일한 '한국적인 것'이 동동주 뿐이라면 인사동은 더이상 한국의 거리가 아니다.

오늘도 의식적으로 '전통'을 만나보려는 젊은이들이 인사동을 찾을 것이다. 생활이 거세된 생활도구들은 다시 그들에게 의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쓰임'과 '얼'이 빠진 문화가 과연 문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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