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후보들이 진보적이라고요? 누가 그래요?--수도권 386후보지역 민심기행

민심기행 / 수도권 '386후보' 출마지역

등록 2000.03.26 20:34수정 2000.03.28 14:25
0
원고료로 응원
"글쎄요. 누가 나오는지는 아직 몰라요. … 국민회의가 민국당이 되었나? 이름이 하도 바뀌어서."

지난 3월 16일, 성북구 동선동 주택가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36)가 "어느 후보가 나오는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혼자말처럼 흘린 얘기다. 언론에서 매일 다루는 정치지만, 막상 생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에겐 여전히 정치는 멀어 보였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공천 당시 기성 정치인을 무너뜨리고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386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뭔가 다른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을까.

4·13총선 한 달을 앞둔 지난 3월 14일부터 사흘간 수도권 386후보 출마지역 민심을 취재했다.

서민경제와 정치불신에 가려진 386후보

선거를 한 달 앞둔 수도권의 민심은 '386후보'를 논하기 이전에 선거에 대한 관심부터가 지극히 낮았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정치인들의 정쟁 같지 않은 정쟁에 대한 신물과, IMF이후 어려워진 서민생활에서 비롯된다.

개봉역 근처에서 분식집을 하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모다(모두들) 선거 안 흔다고 헙디다"란 말로 무관심을 나타냈다. "안 쓰고 안 묵어도 살기 힘드네요"라는 분식집 아줌마의 탄식은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3월 16일 저녁 무렵 강북구 미아역 부근에 있는 식당을 찾았을 때, 50대 후반의 주인 아주머니 역시 "이 나라 국민이니 선거는 해야겠지만, 정치인들이 맘에 안 든다"며, 짧은 평을 늘어놓았다. 아주머니는, 잠시 뒤 들어온 옆집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아주머니와 한참 정치인 험담을 나누었다. 두 아주머니의 대화는 결국 "그래도 전두환 때가 좋았어. 그때는 살기가 나았거든. 그 사람 지금 나오면 될 꺼야"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기존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판에 들어간 386후보들의 경우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턱없이 부족한 편이었다. 3월 15일 개봉역과 영등포교도소 중간쯤에 있는 책 대여점. 학생들에게 만화책을 대여해 주던 주인 박형근씨(개봉3동, 40)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극도로 나타냈다.

"후보요? 정한용씨밖에 모르겠어요."
박씨는 이미 공천에서 탈락된 정 의원이 이번에도 나올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보다는 인물을 봐야죠. 출신지역도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정치인 되면 똑같이 될 텐데요."


박씨는 다만 "허황되게 얘기하지 않는 사람"을 뽑겠다고 했다. 박씨의 가게는 구로갑 민주당 이인영 후보의 사무실과 불과 50여 미터 거리였지만, 그 사이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장벽처럼 놓여 있었다. 기성 정치인이 만든 불신의 벽은 386후보라고 해서 쉽사리 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거리는 물리적인 50미터보다 훨씬 멀어 보였다.

386후보의 인지도가 낮다는 것이 비단 구로을 쪽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김영구 한나라당 현 의원과 박빙의 판세를 보이고 있는 동대문을의 허인회 후보 역시 유권자들에게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장안 4동에서 장한평역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김정환씨(54)는 "총선연대의 활동을 지지한다"며 선거에 관심은 보였지만, 막상 누가 후보로 나오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누가 나오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그나마 한나라당 성북갑 정태근 후보를 두고 "정 뭐라더라" 하던, 길음2동의 어느 유권자 얘기는 오히려 나은 경우였다. 따라서 동선 2동 주택가에서 슈퍼를 운영하던 강차옥씨(59)처럼 "경상도 전라도고, 공약이고 간에 일 잘하는 사람을 찍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더라도 후보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놓기엔 조금 일러 보였다.

"투표를 하기는 해야 하는디, 정치인들끼리 맨날 헐뜯기만 하니까…. 우리 아들들도 그래요.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386후보는 진보와는 별개다"

이처럼 수도권 민심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이 이면에 놓인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유권자의 심리가 내재된 선거판에서 '민주화 운동' 경력은 그리 내세울 만한 게 못 돼 보였다. 유권자들의 관심사는 '먹고살기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것 때문에 '정치에 대한 변화'를 열망했다. 그 기대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젊은 후보'였을 뿐이다.

총선연대가 불러일으킨 젊은 후보에 대한 욕구는 수도권에서도 드러났다. 오류역에서 만난 정영진씨(오류 2동, 34)는 "출마 예상자를 알지 못한다"면서도 "무소속이라도 젊고 참신한 인물이 나오면 찍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바뀌어야 합니다. 썩은 사고방식으로는 안됩니다."

개봉 2동에 사는 김성호씨(38) 역시 "우선은 젊은 사람을 보는데, 말없이 깨끗하게 선거운동하는 사람"을 뽑겠다고 했다. 그러나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386후보들이 '젊은 후보'로 인기를 얻는 반면, 기존정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하려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3월 15일 장한평역 근처에서 만난 대학원생 배아무씨(장안 1동, 31)는 "386세대는 진보와는 별개다"고 말했다. 배씨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청년진보당을 찍겠다고 밝혔다.

"정치에 대한 청사진보다도 교육재정 확충 요구 등 운동공간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 그 당의 후보들이 당선될 수 있을까요?
"목표는 당선이지만, (사회변혁) 운동이 드러나야 합니다."
배씨를 만나기 두어 시간 전에 오류역 근처에서 만난 김은성씨(오류 1동, 33)도 같은 입장이었다.

"386후보들이 진보적이라고요? 누가 그래요? 민주당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디제이가 현실로 보여주었죠. 이번엔 청년진보당 찍을 겁니다. 아마 선거 끝나면 해체되겠지만, 진보적인 정당을 위해서 그 쪽에 찍을 겁니다."

수도권 지역 민심에 '386후보'는 없었다. 다만 낡은 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욕구에 정치권에서 '386'이란 상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민심에 기반한 선거운동을 하자면, 386후보들은 스스로가 가진 '운동성'은 저만치 밀쳐 두어야 한다. 유권자가 원하면 그 쪽으로 가야 하는 게 후보자가 아니던가. 민심은 후보자를 바꾼다. 그렇다면 386후보들은 그 민심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노정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부에서 일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번 주말 놓치면 끝... 다 진 줄 알았던 벚꽃, 여긴 이제 절정 	이번 주말 놓치면 끝...  다 진 줄 알았던 벚꽃, 여긴 이제 절정
  2. 2 호랑이 뼈 발견된 호랑이 굴, 단양에 있다 호랑이 뼈 발견된 호랑이 굴, 단양에 있다
  3. 3 법원에 가야한다는 고딩 딸, 새벽 5시에 차 시동을 켰다 법원에 가야한다는 고딩 딸, 새벽 5시에 차 시동을 켰다
  4. 4 [단독] 김성태 "시킨 놈이 문제"... 대북송금 수사 '윗선' 겨냥 [단독] 김성태 "시킨 놈이 문제"... 대북송금 수사 '윗선' 겨냥
  5. 5 휴대전화 빼앗자 아이가 한 말 "선생님 수업, 대단치 않아요" 휴대전화 빼앗자 아이가 한 말 "선생님 수업, 대단치 않아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