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3.27 01:19수정 2000.03.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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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냉장고 안에는 노란 색 비닐 봉지가 있다. 그 노란 색 비닐 봉지 안에는 냉이가 담겨 있다. 냉이가 냉장고에 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지난 주말에 친한 선배 결혼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S 였다.
"어디야.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선배 결혼식장. 너는 어딘데"
"사당동"
"6시 30분쯤 끝날 것 같으니까. 7시까지 우리 집으로 올래? "
예상보다 결혼 피로연 행사가 늦어져 양재역에서 지하철을 탄 시간은 6시 50분쯤이었다. 집이 있는 구로 공단역 까지는 최소한 30분은 잡아야 한다. 결국 25분쯤 늦게 집에 도착했다. S는 집 앞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S는 집에 들어서자 마자 신문지를 찾았다. 그리고는 검은 비닐 봉지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뭐야"
"냉이 좀 사 왔어. 혼자 있으면 이런 것 못 먹을 것 같아서. 다듬어 놓을 테니까, 두고두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라고."
친구는 신문지를 식탁에 펼치고 검은 봉지에 담긴 냉이를 쏟아 놓았다. 식탁 가득히 펼쳐진 냉이에서 특유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봄이 쟎아. 한근 샀는데 1500원이더라. 싸지. 그치"
친구는 열심히 냉이를 다듬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머쓱해진 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에 대해 썰(說)을 풀어 놓았다.
"자고로 맛있는 것을 먹으려면 고생을 해야 돼쟎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먹을 때는 좋아도 그 만큼 정성을 쏟아야 하지. 냉이 같은 건 다듬는데 손이 많이 가서 누가 사다 해 주기전에는 난 안 먹는다. 네 덕분에 올 봄에는 냉이를 다 먹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거 언제 다 먹냐 ?"
3월 둘째 주에는 일주일 동안 내리 꼼짝 못하고 앓아 누운 적이 있었다. 직장 옮기는 문제로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던 데다 오랜만에 긴장이 풀렸던 터였다. 친구는 혼자 있으면서 아팠던 내 모습이 퍽이나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냉이를 사들고(냉이 사오던 날 친구는 귤도 한 70개쯤 사왔다) 멀리 있는 친구를 찾았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맛있게 끓인 냉이 된장국을 안주로 술을 한잔씩 했다.
" 냉이 넣고 된장국 끓여서 아침 꼭꼭 챙겨 먹고 다녀. 그래야 아프지 않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냉이는 여전히 냉장고에 있다. 꼭 한번 끓여 먹을 분량이 남겨진 채 말이다.
혼자 살면서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집에서 밥을 챙겨 먹기는 쉽지 않은 일. 설사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아침 먹고 나가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 그저 노력해야겠다는 마음만 간절할 뿐.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지만 앞으로 냉이를 볼 때 마다 친구S가 생각이 날 것 같다. 친구를 생각하며 냉이를 사오고, 그것을 다듬어 준 그의 마음으로 인해 새롭게 시작되는 봄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봄을 만끽하고 싶은 자. 시장에서 냉이를 사서 들고 친구 집에 찾아가 보시라. 그리고 그와 함께 냉이 된장국을 끓여 놓고 술 한잔 걸쳐 보는 것은 어떨까. 우정도 새록새록, 봄도 새록 새록 느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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