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오마이뉴스 1면을 통해 <오동명 기자, 한국언론 발가 벗기다>가 나가자 독자들의 많은 호응이 있었다. 다음은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인 오씨가 편집국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쓴 글이다. 오씨는 이번주중에 <당신 기자 맞아?>라는 제목의 책을 도서출판 새움에서 출간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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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울 때가 너무 많다.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나는 이렇게 할텐데'라는. 그러면 '그 자리에 앉아 봐라. 너도 별수 있나!' 이런 말을 듣겠지만, 다른 자리도 아닌 편집국장이라는 자리가 여느 장관이나 국회의원과 비교가 되는가?
각각의 자리 역할이 있겠지만, 신문사의 편집국장이라면 한 국가의 장래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그런 막강한 자리가 아닌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경계하고, 권력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정의의 선봉의 자리가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인가 말이다. 개인의 능력으로 편집국장까지 올라왔다지만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자리가 아닌 것을 다시 또 말해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자리가 고작 국회의원으로, 공보처 장관으로 가는 길목 정도밖에 안되었구나 하는 아쉬움과 한심스러움이 들게 하는 선배 편집국장들이 종종 있으니, 그들이 그래서 편집국장 시절에 독자와 국민을 위해 소신껏 일하지 못하고 기득권력에 아부하며 자기 출세의 장으로 활용(악용)했었구나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동정 이상의 측은함마저 든다.
'쯧쯧, 그 엄청난 자리를 고작...'.
이런 동정과 측은함.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어찌 그런가. 그러한 정계 진출을 두고 출세라고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1998년 5월 중순, 충남 서산에서 황새 한 마리를 보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황새를 포함한 희귀 철새들에 대한 정보를 내게 4년째 보내온 서산의 김문국 씨는 황새가 확실하며, 그런데 5월까지 남아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황새는 71년 한 사냥꾼의 총에 의해 수컷이 죽기 전까진 우리 나라의 텃새로 한 쌍이 충북 음성에 자리를 틀고 살았었다.
1990년초 남은 암컷마저 동물원에서 자연사함으로써 그후 황새는 우리나라의 텃새가 아니라 철새로서 5~6마리가 겨울철을 우리 나라에서 나고 시베리아로 돌아가곤 한다. 황새는 멸종 위기에 있는 세계적 희귀조로 천연 기념물 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한국교원대와 MBC방송국에서는 시베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수년 전 6마리의 황새를 들여와 수억여 원의 큰 돈을 쏟아가며 황새를 다시 우리나라의 텃새로 만들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을 때였다.
한국 조류보호협회 등 알고 지내던 조류학자들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황새가 틀림없다면 대단한 뉴스거리가 될 것이라고, 그 분들도 다른 일을 제쳐두고 바로 현장에 내려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사진부장께 얘기하고 2박 3일 출장을 끊었다.
"2박 3일 가지고 될까? 찍을 수만 있으면 특종인데, 그 넓은 간척지에서 황새 한 마리를 찍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닐텐데. 보고도 찍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거야."
평소 철새에 관심이 많던 한 동료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황새를 필름에 담아내는 건 정말 운이다'라며 걱정이 앞섰지만 내려가는 동안 서산의 김문국 씨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 황새의 위치를 확인했다.
도착하여 하루 종일 그 넓은 서산 간척지를 헤매고 돌아다녔지만 목격한 것은 오로지 왜가리와 백로뿐이었다. 멀리서 보면 왜가리와 황새는 구분이 잘 안 간단다. 나도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황새는 직접 보지 못했었다.
첫날 간척지에서 꼬박 밤을 세우고 새벽부터 또 황새를 찾아 헤맸다. 새벽에 먹이를 찾아 바다와 저수지를 자주 오고가는 걸 보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 12시가 되어도 보이는 것은 역시 왜가리와 백로뿐이었다. '그런 운이 내게 오겠어'하며 수 차례 자조섞인 말을 혼자 해대며 황새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였다.
"황새다, 맞아요, 황새예요. 자태가 벌써 다르거든요"
노란 경비행기가 하얀 농약을 뿌려대고 있던 그 밑으로 큰 새 한 마리가 황급히 날고 있었다. 그 비행기를 피하고 있는 듯 싶었다. 경비행기가 뿌려낸 흰 농약 아래로 큰 새 한마리가 날개를 저으며 제 몸을 피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그 장면을 못 찍어 참으로 아쉬웠다.
마구 살포되는 농약과 천연기념물 황새라? 800㎜망원 렌즈에 2배 컴버터를 끼워 화인더를 들여다보았지만 황새는 화면의 4분의 1도 차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많은 왜가리를 보았지만 그와는 확연히 다른 자태를 보였다. "새들의 황제라더니, 역시" 감탄할 사이도 없이 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그 때 시간이 오후 12시 30분쯤. 제보자 김문국 씨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할 정도로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황새에 대한 정보를 조류학자들에게 전화로 취재하면서.
그러나 사진부장의 반응은 탐탁치 않다는듯 챙기려들지 않았다. 동료들이 거들었지만 "철새 하나 찍어 온 것 가지고"하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보다는 당장에 급한 정치 사진만을 챙기고 있을 뿐이었다. 하는 수없이 후배인 과학부의 담당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찍었단 말이에요? 당연히 써야죠!"
"내 말은 들으려고 안 해. 니가 좀 말해봐!"
그가 가서 얘기를 꺼내자 사진부장은 그제서야 편집국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처음 편집국장도 사진부장과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담당 기자가 5월의 황새 출현은 의미가 크다고 계속 강조하자,
"그럼, 사회부 기자한테 기사 써보라고 하지."
그때가 마감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전혀 내용을 모르는 있는 사회부 기자에게 기사를 쓰라니. 편집국장이. 3~4년간 관심을 두고 취재해온 나와 과학부의 담당 기자를 옆에 놔두고 엉뚱하게 사회부 기자를 찾는다? 이게 바로 오만이라는 게다.
권위를 앞세운 오만이라는 게다. 아니 오만이라고도 할 것 없이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자신의 무지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 가관은 옆에 있던 부장 왈 "오동명 씨는 사회부에 자료를 넘겨주지, 빨리! 시간 없어!" 과학부의 후배 기자와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첫 판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히 과학부 기자 이름이 기사 끝에 게재되어 있었다. 창피하고 억울한 심정까지 들었지만 어쩌겠나. 사진기자는 글 하나 못쓰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게 편집국장이고 사진부장이니, 1면에 게재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며 황새의 나머지 필름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과학부의 기자가 "뒤로 빼자는 데요. 편집국장이 내게 와서 철새 하나 찍은 걸 1면에까지 실을 필요가 뭐 있느냐고 또 말하시더라구요. 나도 지쳐서 맘대로 하시라고 대답했어요. 오선배, 큰 특종해 놓고......미안해요."
오히려 후배가 미안하단다. 다음 판에 바로 제 2사회면에 작게 실리는 것으로 요란스런 황새 취재는 끝나고 말았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올라와 서산의 김문국 씨에게 다음 날 아침 전화를 했다.
"오 기자님이 기사는 안 쓰세요? 다 아시고 있는 내용 아니에요?"
"더 좋은 기사를 내보내려다보니 그런 거겠죠."
더 무엇으로 그에게 대답할 수 있을까.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라서 한국 조류보호협회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너무 작게 다뤘어. 오기자 혼자 취재해서 그런가? 취재기자 없이? 오기자가 물어온 걸 다른 기자에게 또 대답해주려니 나도 짜증나더군. 고작 그 정도 밖에 신문에 내지 않을 것 가지고 말야!"
편집국장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편집국내의 인식문제인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모르면 물어야 할텐데 권위가 먼저 앞서기 때문에 인정하려 들기보다는 지시나 명령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은 게, 지난 3월초에 야생화 사진 3장을 1면에 크게 게재한 적이 있었다. 3월초에 꽃이 활짝 핀 야생화라! 후배의 사진이었다.
"야 임마! 작년에 그것도 3월말인가 4월초에 찍은 것 아냐? 그걸 이제, 아니 벌써 게재하면 어떡하냐? 독자한테 항의 전화도 받았다. 그 농장에 가보니 꽃은 커녕 이제 풀이 나기 시작하더라고"
"미친 놈!" 후배의 대답이었다.
누가 미친 놈인가. 독자가? 내가? 이런 거짓 사진을 두고 편집국장은 '이주일의 기자상'까지 턱 주었다. 잘했다고.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편집국장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알 리도, 알 수도 없다. 자리가 무엇인가? 경험, 연륜에 따른 자리라면 지식보다는 지혜가 더 요구된다고 본다. 소규모든 대규모이든 집단을 꾸려 나가는 지혜는 상대방(부하든 상사든)을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도 모르고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려 하는지. 이런 사람에게선 자리의 의미는 책임이 아니고 권위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만일 편집국장이라면 독자 입장에서 신문을 만들겠다.
상식으로 신문을 만들겠다는 얘기이다. 지금처럼 사주의 눈치를 보고 권력(정치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 각각의 기득권력)에 비위를 맞춰주는 그런 신문이 아닌 진정한 독자(국민)의 자리로 돌아가서 신문을 만들겠다. 국민 모두가 할 수 있는 얘기인데도 이런 어린 아이같은 말을 꺼내는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편집국장들이 그런 당연한 소임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 사주에게나 기득권력자로부터 인정받으려는 눈치밥을 떨쳐 버릴 때, 독자는 참으로 편집국장임을 인정해 줄 것이다.
편집국장이라고 다 편집국장인가! 기자라고 다 기자인가! 어느 자리이건 주어진 책임이 정말 요구되는 사회이다. 책임지려고 아니하고 권리만 찾아먹으려 하는 것, 이게 모든 사회악의 시작인데, 특히 언론인들이 더움 심하니 문제다. 사주나 간부뿐만이 아니다. 기자 또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니 더욱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서 언론 개혁은 모든 개혁에 우선 되어져야 한다.
황새 보도 이후 며칠 뒤, 한국 조류보호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황새가 농약을 먹고 죽어간단다. 그리고 3일후 박제를 해서 남겨 놔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농약을 뿌려대던 경비행기와 놀라 황급히 달아나는 그 황새를 한 장의 사진에 함께 담지 못한 내 책임을 절실히 느끼며 한국 조류보호협회 사무실 한 모퉁이에 드러누워 움직이지 않는, 곧 박제가 될 큰 황새를 들여다봐야만 했다. 막대한 언론의 덩어리 속에서 내 꼴이 스러진 이 황새와 다름없이 미미하고 초라함을 느끼면서 그를 바라봐야만 했다.
취재 후, 신문에 황새 발견의 단순한 기사가 아닌 5월의 황새 출현은 약 30년만에 황새의 국내 텃새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기사가 나가만 주었다면, 바로 보호되어져 지금과 같이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사후 아쉬움과 절박한 안타까움과 함께.
농약이든 편집국장의 안목이든 인간의 무지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보호, 보존으로부터 외면당한 경우이다. 무지한 자가 권력의 자리에 앉는 사회는 능력을 무능으로 만들고, 정의를 무력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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