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자란 이름에 침을 뱉는다 5

31살의 희망에 대하여

등록 2000.03.28 12:59수정 2000.03.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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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놓아두고 나가는 이런 돼먹지 못한 놈"

아버지, 전 신문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집에서는 아직 이 사실을 모릅니다. 제가 선배 기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도 모릅니다. 제가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사직서를 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5개월 동안 잠도 못 이루면서 "안에서 싸워야 한다. 나가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회사는 저의 업무를 폐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잡지를 폐간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이런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저에게 전해왔습니다.

저는 지난 2월 신문사 감사기간 동안 가진 감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00잡지는 회사의 대외적 이미지 제고와 관보급, 독특한 컨셉 등으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회사의 장기적 비전을 위해 00잡지는 유지되어야 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회사에 심각한 회의의식이 들어 사직의사를 고려중이다. 하지만 00잡지는 다른 기자가 맡더라도 계속 발행되어야 한다"는 말을 드렸습니다. 끝까지 잡지일을 지키고, 저의 업무를 다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이미 물건너 간 상태였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회사에서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기에 자구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무런 의식도 비전도 없는 회사에서 더 이상 기자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떠나기에 앞서 지난 23일 사장 앞으로 탄원서를 올렸습니다.

구구절절한 탄원서 끝에 자의에 의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므로 관례상 그에 상응한 6개월분의 임금 지급과 폭행건이 회사의 책임하에 실시된 연수회에서 발생한 사건이므로 치료비를 지급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밝혔습니다.


"H신문이 농어민에 부끄럽지 않는 언론직필의 한길을 갈 것을 기대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에서도 단호하게 이를 비판하며 저의 힘을 다해 개혁을 촉구할 것을 밝힙니다."

이 탄원서를 부서장에게 보여줬는데 서로간에 언성이 오갔습니다. 제가 품신을 해 올려 입사한 후배 기자가 현재 업무영역보장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 이를 시정해 달라는 요구를 탄원서에 올렸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도중에 부서장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잘난 녀석이 후배를 놓아두고 나가. 이런 돼먹지 못한 놈."
그 말은 저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찬 신문사에 후배 기자를 팽개치고 나가는 돼먹지 못한 놈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희망에 대하여

어젯밤 밤새도록 황사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창문이 덜거덕거렸고, 밤새 잠 못이루는 저를 흔들어 댔습니다. 전 강박증에 빠진 환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전 신문사의 개혁을 촉구했고, 기자들과 노동조합의 자정과 반성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신문사에 있는 동안 이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성취하지 못했고, 이제 회사를 떠난다는 생각에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과 분노, 슬픔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동네 연립주택 단지 앞의 목련나무가 활짝 봉오리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유난히 목련꽃이 빨리 필 모양입니다. 31살의 나이에 슬픔과 희망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세상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조직사회에서의 배척과 따돌림을 받은 슬픔,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고통을 인내해 내야 하는 슬픔, 기자직을 접고 30개월 동안 다닌 직장에서 쫓겨나는 슬픔, 익숙해져 있던 취재수첩과 컴퓨터에서 멀어지는 슬픔, 나를 아껴주고, 내가 좋아하던 직장 동료들과 헤어지는 슬픔, 무엇보다 정의롭지 못한 논리와 힘의 세력들이 이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권력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슬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에서 이별하는 슬픔 등 제가 감내해 내야 하는 슬픔이 많습니다.

하지만 31살의 나이에 희망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도전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주는 희망, 객관적인 위치에서 신문사를 비판하고, 응당 고쳐야 할 것을 고치는데 나의 몫을 다해야겠다는 열정이 주는 희망, 익숙한 일상을 탈피해 내가 더욱 노력하고, 사랑하고 보듬고 함께 이 세상을 살아나갈 사람에 대한 믿음이 주는 희망, 한동안 집에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낚시를 가볼 수 있다는 희망, 얼마전 동생이 장만한 컴퓨터에 동생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기능들을 설치해 주고, 생활에 유용한 인터넷사이트와 무료 이메일을 알려줄 수 있는 재미가 주는 희망, 농사꾼이셨던 돌아가신 아버지 당신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 아버지의 존재가 나에게 주는 산맥같은 든든함이 주는 희망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찾아들 수많은 희망들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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