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은 하야하라? 이회창 총재의 정신건강이 의심스럽다

<유시민 칼럼> 흥분 말고 근거를 따져라

등록 2000.03.28 15:17수정 2000.03.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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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정가를 시끄럽게 만든 대통령 하야론 공방은 선거를 코앞에 둔 여야 정치인들의 정신상태를 짐작케 한다.

누구나 큰 시험 앞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수능시험이 다가오면 정서 불안과 불면증, 식욕부진에 시달리고 심한 경우 우울증에 걸리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수험생이 여기저기 나오는 것처럼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도 제정신을 잃기 쉽다. 그러니 선거를 앞두고 평소와는 다른 언행을 보이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보아 넘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대통령 하야론'은 아무래도 좀 심상치가 않다.
"김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고 관권 혼탁선거가 계속 이어진다면 선거 후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
지난 22일 광주지역 합동 지구당대회에서 이회창 총재가 한 말이다.

그렇다. 누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겠는가. 원내 제1당의 총재가 대통령 하야 요구를 하겠다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는 일이다. 이 총재는 김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존망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하야론을 들먹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 총재는 남들이 자신의 그 '비장한 발언'에 동조하리라고 믿는 것일까?

김대중 총재의 선거개입에 대한 비난은 몹시 부당하다. 그는 민주당의 총재로서 후보자 공천을 비롯해서 선거의 전 과정에 개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문제는 개입 그 자체가 아니라 개입하는 방식이다. 김대중 총재는 지역구 후보에 이어 전국구 후보 공천 역시 밀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대체로 조용한 건 그가 현직 대통령이어서 감히 대드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입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회창 총재도 김대중 총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 지역구 후보 공천에 이어 26일 발표한 전국구 후보 명단 역시 이총재의 독선적 개입의 산물이 아닌가.

국가채무 논쟁과 국부유출 논란을 두고 김 대통령은 관련 장관들을 호되게 질책했다. 야단을 맞은 장관들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도하 각 신문에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박하는 대문짝만한 광고를 실었다.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대통령으로서 장관을 야단칠 문제가 아니라 총재로서 정책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정책관련 간부들을 혼내야 할 마땅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이처럼 민주당 총재의 권한과 대통령의 권한을 편리한 대로 마구 뒤섞어 쓰고 있다. 국가예산을 사실상 민주당 선거홍보에 사용하는 정부의 신문광고는 즉각 중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정도를 가지고서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할 만큼 중대한 정치적 범죄처럼 비난하는 것은 이총재의 정신건강을 의심하게 만든다.


김 대통령의 처신에 많은 문제가 있고 대통령의 독선과 전횡을 예방하고 견제하는 것이 야당 총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볼 때, 이 총재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뜬금없는 대통령 하야론은 이 총재가 지나치게 자기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과거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자기를 따르는 패거리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착각했다. 극소수 정치군인들의 안전을 국가안보로 착각했던 전두환 씨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자기가 하는 모든 선택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믿는 '자기기만적 확신'에 빠져 일을 그르쳤다. 하야론은 이 총재가 그와 비슷한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하야론을 '헌정 파괴와 정권 탈취 발상'으로 몰아부친 민주당 정동영 대변인의 성명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명백하고 중대한 잘못이 있다면 야당 총재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공격해야 할 것은 하야론의 사실적 논리적 근거일 뿐 하야론 그 자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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