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서 해알들이 모여 사는 곳

평택 청각장애인의 집, 해아래 집

등록 2000.03.28 15:32수정 2000.03.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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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택 해아래집 아이들은 비록 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이지만 누구보다 밝기만 하다.

평택 하북면 소재지에서 택시를 타고 10분쯤 지나 진위천 양쪽으로 넓은 논밭이 펼쳐진 곳, 잔잔히 흐르는 냇가 옆 진위면 봉남리에 「해 아래집」이 자리잡고 있다.

해 아래집은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20명의 학생들과 4명의 선생님이 생활하는 곳으로 97년 7월 문을 연 곳이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인데도 반갑게 인사해주는 학생들, 환하게 웃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그 곳이 에바다 재단과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곳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웃고 살아야죠. 어렵다고 인상만 쓰고 살면 되나요" 권오일 선생님은 그래서 항상 웃으며 다니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해 그들이 찾은 곳은 견산장로교회(진위면 견산리), 예배시간 동안 열심히 수화로 찬송을 따라 부르고 통역해주는 교사의 손길에서, 목사의 말씀을 읽는 모습속에 진실함이 있었다.

오후에는 서탄초등학교에서 해 아래집과 회화교회의 친선체육대회가 있었다. 체육대회는 해 아래집, 회화교회 식구들과 수원 삼성전자 수화동아리인「작은 손짓 큰사랑」, 수원지검 「나누리」등 모두 60여명이 참가했다.

삼성전자와 수원지검 수화동아리 회원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해 아래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또 하나의 식구다. 경기는 축구, 발야구, 이어달리기로 치러졌는데 희망팀과 용가리팀으로 나뉘었지만 승패에는 상관없이 함께 박수치며 응원도 하는 흥겨운 시간이 되었다. 한데 어울려 같이 뛰고, 공차면서 보낸 하루는 언어의 장애를 넘어서서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였다.

해 아래집을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 글씨로 한마디씩 대답해주던 얌전한 김지혜(22)씨,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수다떨다가 선생님께 지적받은 수다쟁이 김은자(22)씨,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장애인지도과에 편입을 준비하는 이경훈(22·경훈군은 탁구로 이번 7월에 열리는 방콕농아인 올림픽대회에 출전한다)씨, 전국체전 유도 금메달을 9개 가지고 있는 이성준(24)씨 등 해 아래집 식구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었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생활하며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 더불어 나누는 해 아래집은 사제관계를 넘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인/터/뷰-해 아래집 권오일교사

에바다에서 해아래 까지 "1231일째"


들풀의 울음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억새, 패랭이, 강아지풀 ...들풀은 대개 제멋대로 자란다. 다만 뿌리가 뽑혀도 금새 또 다른 풀들의 뿌리가 박힐 뿐, 들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찌들고 억장 무너지는 인간의 삶이 이 땅에 널부러져 왔듯이...

96년 12월 눈발이 흩날리던 새벽, 이불 보따리를 들고 교회로 피신아닌 피신을 하던 에바다 원생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쉽게 들을 수 없는 들풀의 울음소리처럼 추운 겨울 그들이 흘린 눈물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만은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풀의 울음소리를 하찮게 넘길지라도 그는 들풀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이 왜 울어야만 하는지를 이해하는 듯하다.

"욕 먹기 싫었습니다! 어떤 사명감도 아닌 단지 그 이유에서입니다." 얼굴에 멋쩍게 웃음을 들어내며 에바다 원생들과 한 배를 탄 연유를 권오일(39)씨는 이렇게 말한다. 횟수로 4년이다, 그의 꼭 다문 입술은 그간의 일들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자체가 너무도 부족함을 느끼는 듯 하다.

잠시 후 "제단측의 갖은 횡포도 견디기 어려웠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IMF가 터지자 후원금도 없이 20여명의 원생들과 살아가는 것이었어요." 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해 아래집 교사들이 월급을 조금씩 모으고 새벽에 자가용을 끌고 한차 가득 고물을 주어다 팔아도 봤지만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계속되는 생활고에 농성을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곤 억울한 생각이 들어 서로 부등켜안고 운 적도 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 있죠?" 라며 권씨는 그 말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의 많은 격려와 후원, 뒤이어 "MBC 칭찬합시다"에 출연하게 되어 많은 후원자가 생기자, 해 아래집은 웬만큼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에바다 농아원 문제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기나긴 싸움의 종결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원생들은 에바다 농아원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 곳에서 청각장애인들은 사람의 정이라는 것을 못 느꼈다. 아니 정을 생각하고 형제애를 느끼기 전에 항상 배고픔에 허덕여야 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듣지는 못하지만 사랑, 형제애같은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해 아래집을 떠나는 것이 두렵다고 하는 원생들, 그들 나름대로 해 아래집에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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