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0.01.31 00:00수정 2001.02.1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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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쉬는 날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집사람과 함께 동네 산책을 나섰는데, 좀 걷다 보니 동네아이들이 몰려와 “하늘, 바다다” 하며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쌍둥이인 덕분에 다른 아이들보단 좀 눈에 잘 띠고, 그래서인지 어느덧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유명인사(?)가 돼 있었던 모양이다.
동네아이들이 쫓아와 반갑게 아는 척을 해대는 것에 대해, 그러나 집사람은 영 달갑지가 않은 눈치다. 아니,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동네아이들을 쫓아버리려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려 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반갑다고 그러는 것들인데 왜 그럴까 싶어 나는 의아해진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집사람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듯 “질이 별로 안좋은 애들”이라고 짧게 답한다.
비록 애들이라곤 해도 사람 겉모습만으로 그 속까지야 어찌 알랴마는, 그래도 이제껏 사회생활이란 것을 제법 하면서 보고 익힌 눈썰미로 봐선 그리 나쁜 애들 같지가 않아 나는 재차 집사람에게 묻는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질 나쁜 애들 같아 보이진 않는데?”
그러자 집사람은 그제서야 속내를 털어 놓는다. “애들 자체는 그렇게 나쁜 애들 같지 않지만…” 하고 말문을 연 집사람의 얘기는 이렇다.
문제의 동네아이들은 우리 아파트 내에선 소위 ‘버려진 아이들’로 통한다는 것이다. 애들 엄마 아빠가 일인지 뭔질 나가느라 바빠, 밥이고 교육이고 뭐 하나 제대로 챙겨주는게 없어 끼니를 거르기 일쑤고, 그러다 보니 동네 아기들이 뭘 먹고 있는걸 보면 달라붙어 뺏어먹기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집사람도 처음엔 아무 것도 몰라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니까 그저 기쁜 마음에(애 엄마들이란 거의 예외없이 자기 애를 예뻐해주면 엄청 인심이 좋아진다) 과자도 나눠주고 했던 모양인데, 나중엔 너무 심하게 달라붙는데다가 우리 아이들도 지들 과자를 뺏겨서 그런지 어쩐지 예의 동네아이들만 보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엔 귀찮게 따라붙는 예의 동네아이들을 떼내기 위해 가서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천원짜리 한장을 쥐어주기도 했다는데, 이게 결정적인 실수였던 것 같다. 그 뒤로 우리 아이들만 보였다 하면 달라붙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고 하니….
누구에게건 모진 소리를 잘 못하는 집사람은 이 일로 꽤나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애엄마 한 사람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 놓았는데, 그 애엄마 하는 말이 “그 아이들이 애한테 접근하면 좀 안됐다 싶더라도 모질게 대하라”고 충고를 하더라는 것이다.
밥을 제때 못먹다 보니 아이들 과자 등에 눈독을 들이기 일쑤인데다가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하고 다니는 짓들이란 게 거의 남의 눈총 맞기 딱 알맞은 짓들이라는 것 등이 그 이유다. 한마디로 같이 어울려서 전혀 득될게 없다는 얘기였다. 그리고는 덧붙여 한다는 말이 “이 아파트에선 그 애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기네 애를 일부러 학원에 보내는 엄마들도 여럿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고, 그곳에서 놀던 몇 안되는 아이들은 일반의 다른 애들관 달리 유난히 좀 지저분해 보이는데다가 하는 행동도 좀 거칠어 보였던 게 떠올랐다. 아마 그 때 그 놀이터의 아이들이 아파트 내에서 소위 ‘버려진 아이들’로 통하는 예의 동네아이들이었던 모양이다.
한번은 퇴근을 해 놀이터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원반 던지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쪽에서 이상하게 둔탁한 소리가 나 쳐다봤더니, 글쎄 이 녀석들이 냄비 뚜껑을 갖고 주차해 둔 차들 사이를 넘나들며 원반 던지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야단을 치고 돌아서긴 했지만, 다음날 아침까지 과연 내 차나 다른 차가 무사할까 하는 걱정을 하며 돌아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일 말고 다른 일로도 몇번 이 아이들을 야단친 적이 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부모가 문제지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마는, 그런 저런 사정을 알게 된후 집사람은 예의 동네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아는 척을 해대는 것조차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자연 나 또한 별로 달갑지가 않아졌다.
사실 내 경우 그 아이들에 대해선 달갑지 않다는 감정보다 연민이 앞서지만, 쌍둥이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늘 지쳐있는 집사람과 그런 문제로 입씨름을 벌이고 싶지 않아, 나까지 덩달아 예의 동네아이들에 대해 달갑지 않다는 감정을 갖게 됐다는 것이 보다 솔직한 이유다. 그것이 제 가정, 제 자식만 소중히 아는 이기적인 소시민 근성의 발로라 비난받는다 할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단 이유로 나중엔 다른 사람들에게조차 따돌림을 당하게 된, 우리 아파트 단지내의 소위 ‘버려진 아이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나의 행복을 확인한다는건 좀 잔인한 일이긴 하지만, 이들을 보노라면 나나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참 다행이다 싶다. 비록 남다른 사랑은 아니되 필요로 하는 관심과 사랑을 이미 받았거나 혹은 받을 수 있으므로.
그런 한편 나 자신과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들을 좀더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예의 동네아이들처럼 세상으로부터 원치않는 ‘왕따’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나 자신과 나의 일, 나의 가족들을 좀더 사랑하고, 좀더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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