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0년 4월 27일 목요일
장 소 : 광주 YMCA 무진관
시작하며
재미있게 얘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초청받고 머뭇했는데 광주가면 광주시민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런데 괜히 말 잘못해서 봉변당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바른말을 하더라도 지역주의를 고치는 방향으로 가는게 아니라, 도움은 안돼고 기분만 나쁘게 하고 뒷통수에 욕만 하는게 아닌가 싶고, 박수 받으면서 위로가 되기보다 동정박수가 어디까지 유효할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이것이 지역간 대결정서의 본질이다.
1. 지역주의,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지역주의는 이야기 전에 개탄과 분노가 앞선다. 그리고 체념하고 만다. 또 지역주의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못고치면 죽는다는 절박성이 없는 것 같다. 책임있는 해결책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젠 실천의 대안까지 이야기하자.
2. 지역주의 그 자체가 망국병이다.
지역주의는 분열주의와 대결주의의 한 형태다. 이대로 두면 나라 망한다. 분열과 증오가 불행을 초래하지 않은 역사는 없다. 국가가 망하고 집단이 망하는 것 여러 차례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젠 막연한 망국병이 아니다. 오히려 독재나 부패보다 더 심각한 병이다. 독재는 시민저항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지 않느냐. 그러나 분열은 끝이 없다. 한 민족의 역사와 건전한 민족정신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 분열이 내일의 역사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자.
3.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의 블랙홀이다.
-지역문제만 나오면 사람은 뒷전이고 지역정서로 판단한다. 선거 때만 되면 정책은 뒷전이고 지연이 우선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 판단인데 인물과 정책을 무력화시켜 버린다.
-또 지역 내 민주주의 구조를 파괴한다. 부산은 4백만 도시다. 일개 국가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다. 부산시정에 관해서는 비전과 경제균형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서비스인데, 서비스는 경쟁을 통해 높여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면 질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야당시절 내가 부산으로 간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서도 동서화합을 위해서도 아니다. 야당 없는 민주주의가 어딨는가. 그래서 부산에도 야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야당해서 더 살리기 위해 부산으로 간 것이었다.
-그리고 지역주의는 줄서기 정치의 기반을 제공한다. 민주정치의 약화, 권위주의적 발상이 줄서기 정치라 할 수 있다.
공천권 때문에 줄서기 정치가 생기는 게 아니라 줄서기 정치 때문에 공천권이 문제된다.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진이다. DJ와 YS와의 사진만 있으면 당선은 보장된다. 그러니까 줄을 안 설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아무리 논리적으로 상대주의를 얘기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절대적 사고로 판단하면 민주주의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관용과 상대주의가 발붙일 수 없는 대결적 정서 조성은 민주적 토양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지역주의 극복, 왜 이렇게 어려운가?
지역주의, 극복이 어렵다. 잘 안된다. 영 안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인간에게는 공격 본능이 있다. 대결하고 갈라서고 싸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다. 때문에 지역주의의 본질은 생기기는 쉬운 것이고, 없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 지역주의가 극심할수록 집단 내부에 덕보는 사람이 있게 된다. 게다가 그 수혜자들의 선동이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지역주의가 힘든 이유는 감성과 이성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논리가 아니라 감성이다. 감성을 논리로 설득하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지역주의를 반대하면서도, 또 선동에 대해서는 쉽게 동조하면서도 구체적인 해결방안에는 무관심인지 모른다. 민주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논리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중요한 자리에서 여러 번 강조했다. 그때 지식인뿐만 아니라 여론조사까지도 지역주의 극복방안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무관심했다. 지식인은 이익 따졌고, 시민은 선거구제에 대해 잘 몰랐다. 시민단체도 당시 조용했었다.
중·대선거구제와 소선거구제의 장단점이나 구체적 고민 안했었다. 광주시민도 이 절박성에서 해이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정권 내부 정치인중에서도 지역주의 해결에 목숨건 정치인 못봤다. 광주지역 정치인도 정치생명을 걸고 지역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지 회의적이다.
5. 부산사람 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잘못 지적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감정적 대결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지적 받아서 과오를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없다.
지역주의의 근거가 다르고 정당성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욕하는 것 참자.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주의 해결의지가 있다면 욕하지 말고 참아줬으면 좋겠다.
부산만의 현상은 아니지 않는가. 표의 지역편중현상은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다. 근거와 정당성이 다르지만 현상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나와 김정길이 욕먹을 빌미를 제공한 것 같아 부산 시민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욕하는 것 도움 안된다. 오히려 사이를 더 벌릴 뿐이다.
6. 지역주의의 전망
지역주의에는 기본적으로 이기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에 3김 시대가 끝나면 지역주의가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무책임한 말이다. 지역주의를 3김이 만든 것인 줄 알았는데 부산 내려가 총선해보니까 그것이 아니더라.
문제는 '자리'다. 지역주의가 정치적 이유인가 입지 때문인가로 볼 때, 나는 입지론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과거 대선에서 비호남연합 전술, 호남포위전략이 성공했듯, 우리 당이 그러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번 총선 득표결과를 지도에서 보면 영남주변을 빙 둘러 있다. 영남포위전략 나올 가능성도 있다. 어디를 포위할 것인가 이 대결이 되면 "절대로 저 지역에 주면 안된다"는 혈투가 될 수 있다. 대선구도가 이렇게 됐을 때 대체할 전선 보이지 않는다.
7.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의 심각함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양 지역에서 스스로 내부적인 동력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민족해방, 반독재 민주화, 조국 근대화, 가난극복, 세계화보다 더 중요한 시대적 과제일수 있다. 때문에 어떤 시대적 과제보다 더 중요한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는 항상 관용과 타협의 사고를 염두에 뒀으면 한다.
지역주의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 정당투표식 비례대표제 △차기 대선구도를 통합주의와 대결주의간의 전선 형성 △장기적으로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화와 지방화 전략 △영호남이 주도하는 국토재편성과 지역개발 전략 △행정구역 개편, 정비 등을 제시한다.
특히 중·대선거구제는 어떤 대가를 주고서라도 해야 한다. 혼란이 생기겠지만 지역주의 극복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호남정권이 부산죽이기 한다"는식의 비논리적인 선동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8. 지역주의와 호남의 역할
지역주의 해소 전략 호남에 맞게 가져야 한다. 먼저 "호남에도 지역주의가 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객관적 사실로 봐도 그렇고, 상대방 진영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이를 인정하고 출발해야 문제가 풀릴 것이다.
사실 호남 지역주의에는 특수성이 있다. 소외의 역사와 현실, 5.18의 경험, 민주당의 정통성, 권력 향유의 순서 등 이런 호남지역주의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집권과 집권세력으로서의 책임감 가져야 한다. 역사 선동하는 지역으로서 자부심 갖고, 단순 정치게임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하자는 것 어려운 주문이다. 과연 실현 가능한 부탁인가 싶다. 하지만 불가능한 부탁이라면 요행을 기대해야 하므로 어려운 과제지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부산 가서도 지역주의 극복에 대해 설득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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