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미국놈 뿐이네"
아시아관에서 부딪쳤던 그 노인회 일행의 말에 전시관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수치적인 통계를 대지 않아도 북미관은 유달리 사진과 자화상이 많다.
북미관 뿐 아니라 다른 전시관에서도 초상이나 자화상, 몸뚱이를 표현한 작품이 부지기수인 것은 ‘Man+Space’라는 번역문에 의존하다보니 주제가 내포한 ‘Relation’부분을 간과했다는 후문이 있다.
주최측에서 지적한 문제점을 단번에 간파한 한국의 할머니들!
훌륭한 관람수준에 박수를 보낸다.
북미관을 지나 한국관에 들어섰다.
이전 전시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전시관 입구에서 대여해준 자동음성 해설용 헤드폰이 귀찮아진다.
특별전을 포함해서 6개의 전시실의 작품을 일일이 설명해줘서 도움이 되겠지만 표시된 부분 근처에 서야만 작동되므로 대형작품이나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설치미술의 경우에는 오히려 성가실 수 있다.
**특별 코너, 곽덕준의 <클린턴 Ⅱ와 곽>**
특별코너가 감상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국관에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기 이전에 눈여겨볼 특별코너가 하나 있다.
얼마 전 광주 예술의 거리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던 곽덕준의 <클린턴 Ⅱ와 곽>이라는 사진전이다. 미국 대통령과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듯한 이미지는 타임지 표지에 나오는 얼굴에 거울을 붙여 만든 트릭이다.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두 개의 대형 사진이 언뜻 보면 그게 그거구나 할만큼 비슷할 정도다. 또 자신의 작품을 미국 백악관 앞에서 설치한 비디오필름도 선보인다. 백악관 앞에서까지 이 작품을 전시한 것은 클린턴 역시 거울에 비친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미술기자상에 빛나는 김호석의 <광주민주화운동>**
한국관에 들어서면 '미술기자상'에 빛나는 김호석의 <광주민주화운동>, <역사의 행렬> 등의 수묵화에 발을 멈추게 된다.
달력그림에서나 봤음직한 전통 산수화적 스타일로 역사적 사건을 표현해내고 있어 이색적이다. 사진과 판화 정도로 보아온 광주민주화운동을 동양미술 기법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눈길을 끌만 했다.
작가 김호석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의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주목받는 미술가라고 한다. 한국 근현대 민주화운동사를 표현한 김호석의 작품속에서 시선을 모으게 한 것은 수묵화임에도 불구하고 붉은색으로 그려낸 '구국의 횃불'이라는 깃발이다.
**관람객 인기상(?) 김태곤의 <교실>**
다른 작품에 비해 유난히 학생들이 모여있는 전시실이 있어서 기웃거렸다. 한국관의 전시작품 중 '인기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한 작품. 김태곤의 <교실>이다. 설치미술로 눈은 물론 귀의 감상이 필요하다.
지난해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참사를 표현한 것으로 1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조명은 어둡게 하고 가는 빛으로 건물 테두리 모양의 선들만 살려 불타버린 건물을 느끼게 하고 있다. 게다가 기괴한 음향효과로 당시의 참혹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치 문을 열고 들어가 감상하도록 되어 있는 <교실>을 들어갔다 나오는 여고생들은 마치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서 나온 듯 겁에 질린 표정들이 흥미롭다.
작품 <교실>은 인+간의 함축적 의미인 공간, 장소, 상황, 역사 등을 처참한 희생과 건물을 재현하면서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대상 후보로 지목됐던 임영선의 <숙주의 방>**
대부분 작품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생소한 재료와 표현들이라 어느 것 하나 이색적이지 않은 작품들이 없다. 비교적 한국관은 편안하다 싶다. 여러 전시작 중 인상적인 작품을 메모해 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상후보로 지목됐던 작품이라고 한다.
임영선의 <숙주의 방>.
좁은 문틈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방안을 살펴보면 천장에 매달린 투명 실리콘들로 꽉 차있다. 애벌레를 표현한 것이다. 작품에 대한 이해라기 보다 단순히 방안 가득 매달린 벌레들 때문에 본능적으로 뇌리에 박혔던 모양이다.
입구에 붙어 있는 작품해설에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애벌레를 통해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보다는 21세기형 과학발전에 따른 염세주의와 사회에 만연된 불감증을 경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민중 미술가 홍성담의 <나비가 나이고, 내가 나비인지 모른다>**
한국관을 관람하던 중 반가운 전시공간을 만났다. 익숙한 작가의 작품을 보니 굉장한 친분이 있는 작가처럼 기뻐했다. 1회 비엔날레에 이어 다시 만나게 되는 작가 홍성담. 한국관에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가가 아닌가 싶다.
'민중미술 15년전', '인권선언 50주년 기념전'을 갖는 등 민중미술가로 알려진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 <나비가 나이고, 내가 나비인지 모른다>라는 제목으로 관객을 찾았다.
사람과 나비 모양의 108개의 형상이 가운데를 축으로 나비처럼 양쪽으로 나열되어 있다. 108개의 인물형상, 그 위를 자연스럽게 날아다니는 듯한 나비들.
해설에는 "이 작품이 기대고 있는 동아시아적 상상력과 사유체계에서 부화해 나온 나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유영하여 이윽고 그 부드러운 곡선의 비행을 통해 우리를 역사적 시선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어느 소설가의 평을 옮겨놓긴 했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다소 어렵다.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작품을 대하면 좀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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