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저항 시인' 고 김남주 시인의 시비가 오는 20일 오후 5시 광주 중외공원(비엔날레 본전시관 옆)에 세워진다.
5.18 민중항쟁 스무돌을 맞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전사이자 '피와 칼'의 시인인 김남주 시인의 삶과 문학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시인의 정신적 고향인 광주에 시비가 세워지는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시비 제막식은 동료 시인과 그의 지인들의 참여로 문학과 미술,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행사가 될 듯하다.
추모 시비 제작한 민중미술인 '홍성담'
전국 민족예술인들이 참가해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중외공원에 세워질 김남주 추모시비는 민중예술가 홍성담 씨가 맡았다.
이번 5·18기간중 고 ‘민족시인 김남주’와 만나 광주의 또 다른 역사유적이 될 작업을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홍성담 씨가 설계와 총감독을 하고 그림과 글씨를 그의 동생 홍성민 씨가 맡게 되는 추모시비는 3미터의 자연석과 5개의 오석, 흉상으로 구성된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라는 노래 ‘죽창가’로 유명한 그의 시 ‘노래’를 자연석에 새기고 그의 시의 상징적 이미지인 대나무를 오석에 새겨진다.
전사를 자처했던 광주의 대표적 민중시인 김남주의 시비는 건립과정에서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준태 시인)와 광주시 도시공원심의위원회와 마찰을 빚었었다. 공원 내 다른 시비의 난립이 우려되고, 김남주시인의 작품에 대한 문학성 평가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시비건립을 유보시킨 것이다.
이런 속앓이 끝에 세워지는 김남주 추모시비는 비엔날레를 찾는 전세계인의 발길과 함께 광주의 기념비적 상징 조형물이 될 것이다.
광주는 이른바 ‘5월의 사람들’을 잉태시켰다.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투사들은 열사가 되기도 했고 문화 예술인들은 오월의 형상화에 몸부림치다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중 시인 전사임을 자처한 김남주 시인은 이미 고인이 됐고, 많은 예술인들은 아직도 5월의 완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민중미술인 홍성담(45) 씨가 그 전형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간첩으로 몰려 수감되기도 했던 홍성담씨는 초인적인 정열로 수많은 오월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열정적인 작품활동은 정치적 탄압이라는 수난까지 보태져 이른바 세계적인 광주작가. 대표적인 민중미술가가 된 것이다.
김남주 시인 헌정앨범 낸 '안치환' 추모 공연
이날 제막식에는 가수 안치환의 추모 공연도 뒤따른다. 시인 김남주와 가수 안치환. 세대는 달라도 두 사람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현실속에서 시와 노래로 싸워온 사람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저항시인과 노래패활동을 하던 운동권 대학생이 ‘시대의 아픔’을 몰래 나누면서 시작된 셈이다. 안치환은 ‘노찾사’ 멤버에서 나와 솔로 활동을 시작한 뒤 91년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서 김시인의 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최근 안치환은 김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기념음반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을 발표하고 기념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나와 함께…’는 지난 95년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유고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인을 위해 가수가 헌정 앨범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므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치환 6.5 리멤버-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은 김남주 시인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여서 직접 부른 12곡의 노래와 김남주 시인의 육성시 낭송이 수록돼 있다. 그 동안 안치환이 발표했던 ‘자유’를 비롯해 ‘저 창살에 햇살이’,‘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등을 리메이크하여 재수록 했고, ‘똥파리와 인간’, ‘지는 잎새 쌓이거든’, ‘산국화’등의 시에 새롭게 곡을 붙였다.
80년대 대학시절 소위 ‘불법서적’을 통해 김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다는 안치환은 어찌 보면 자신의 노래들은 대부분 김시인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될 만큼 김남주 시인의 시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안치환은 이번 앨범의 수익금을 김시인의 유족인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을 위해 내놓기로 했다.
"김남주 시인의 시는 내가 힘들고 지쳤을 정체성을 밝혀주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깨달음이었다"는 안치환. 공연장마다 가득 메운 그의 열성적인 팬들과 그의 저력을 보면서 어쩌면 운명을 달리한 김남주 시인이 준 선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추모 산문집 '내가 만난 김남주' 출간
최근 광주민중항쟁 스무 돌을 앞두고 시인 김남주를 기리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김남주 추모 산문집 <내가 만난 김남주>는 시인 생전에 그와 어떤 식으로든 교분을 맺었던 이들이 각자 소중히 간직해 왔던 추억을 털어놓았다.
시인의 친아우인 덕종 씨가 시인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회고한 것을 비롯해, 고향 선배인 한학자 박석무씨와 동지였던 이강씨가 그의 반독재투쟁기의 일화를 들려주며, 시인 김용택·김정환 씨와 소설가 김남일·김별아 씨 등은 인생과 문학의 선배로 만난 시인의 면모를 소개한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시인 김준태 씨는 “김남주는 항상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성찰케 하는 그런 시인으로 다시 다가선다”는 말로 작고한 김남주 시인은 모두의 가슴에 살아있음을 표현했다.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구속돼 88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94년 췌장암으로 숨졌다. 작고한 김시인은 자심의 시 대부분을 10년 가까운 투옥 기간에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옥중의 그에게 펜과 종이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우유팩을 해체해서 생기는 은박지에 바느질하듯 한 땀 한 땀 못을 눌러서 쓴 것이 그의 시들이었다. 그것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밖으로 빼돌려졌으며, 오늘날 민족문학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의 대표작인 <나의 칼 나이 피>, <조국은 하나다> 등이 모두 옥중 시집들이다.
518 민중항쟁 스무돌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5월 광주. 그 한쪽에서는 20년 전 그 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칼과 피’의 김남주 시인의 삶과 문학이 우리의 가슴을 붉게 적시고 있다.
*김남주 시인은 1946년 전남 해남에서 출행하여 전남대 영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 등을 발효하고 등단했으며, 첫시집 <진혼가>(1985년) 이후 <나의 칼 나의 피>(1987년) <조국은 하나다>(1988) <솔직히 말하자>(1989) 등의시집과 시선집 <사랑의 무기>(1989), 번역시집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 옥중 서간집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 주고>(1989) 등을 간행하였다. 김남주 시인은 1979년 '남민전'사건으로 구속돼 88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94년 췌장암으로 숨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