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있었다" 곳곳에서 증언

계엄령 선포직후, 보도연맹자 사방각지에서...

등록 2000.05.27 15:12수정 2000.05.2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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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밀양 근처 청도에서도.."

(산내학살 특별취재반=심규상,이기동 기자) 1950년 대전형무소 산내 골령골 학살현장에서 사건당시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범 외에도 민간인이 끌려가 처형당했음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김영배(76,대전시 동구 용운동) 씨는 " 전쟁이 일어나던 50년 6월 25일 아침, 친 형님(김영조,당시 34세)이 예비검속에 걸려 경찰들에 의해 대전경찰서로 끌려간 후 며칠 뒤인 7월초 산내에서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 형이 잡혀가던 그날 동서기로 일하던 중동 동사무소로 형수가 전화를 했는데 '형이 대전경찰서로 끌려갔는데 어쩌면 좋냐'며 울먹였다"고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렸다. 김씨는 "피난 후 돌아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형님이 산내로 끌려갔다는 얘기를 들었고 형수(황순분, 경북 왜관 양목리에서 시집온 것으로 기억)와 두 조카(큰 조카 이름은 김종오)는 행방불명돼 지금까지 연락이 안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학살 현장을 목격한 동사무소 직원을 통해 " 사람들을 구덩이 앞에 앉혀놓고 뒤통수에다 총을 쏴 총을 맞으면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도록 했고 열흘이 넘게 총살이 진행돼 수 천명이 죽었다고 얘기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산내에서 희생됐다고 밝힌 조성환(45,대전시 용전동, 자영업) 씨는 "6.25 전쟁이 터지자마자 지서(충남 부여)에서 할아버지(조만옥,당시 38세)를 불러냈고 그 뒤로 대전형무소로 이감돼 산내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조씨는 산내로 끌려간 것과 관련해 "당시 대전에 살던 친척이 할아버지가 차에 실려 끌려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며 " 이같은 얘기는 모두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김용운(76, 대전시 동구 낭월동) 씨는 "6.25 당시 순경으로 일해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며 "계엄령이 선포된 후 보도연맹자를 잡아들이라는 상부지시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 대전형무소에 있다 총살된 상당수가 보도연맹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대전뿐 아니라 논산 등 사방각지에서 보도연맹 관련자가 끌려왔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대전에서 인민군에 쫓겨 내려갔다가 7월 중순쯤엔가 경북 밀양근처인 청도라는 곳에서도 트럭에다 보도연맹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겹겹히 포개 실어 나르는 트럭행렬을 봤다"며 "총살이 상부지시에 의해 곳곳에서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현재 산내학살 현장과 1km 떨어진 낭월동(대전시 동구)에 살고 있는 강준복(72), 윤석준(65,여) 부부도 "학살 현장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굴비처럼 엮여 트럭에 실린 채 골령골로 끌려가는 것을 여러 날 봤다"며 "죄수복 차림의 머리깍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머리가 긴 민간인 복장의 사람들도 많이 실려 갔다"고 증언했다. 이 부부는 "그때 얘기를 들으니 민간인 복장 차림은 보도연맹이라고 했다"며 "정치범 외에 민간인들도 많이 끌려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증언들은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정치범 외에도 다수의 민간인이 함께 희생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여서 주목된다.

특히 당시 순경으로 일하던 위 김용운 씨가 "계엄령 선포 후에 보도연맹자 관련자를 잡아들이라는 상부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은 민간인 학살이 7월 8일 이후(50년,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7월 8일이었다)에 집중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여서 정확한 학살기간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희생자 유가족인 위 김영배, 조성환 씨 등은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 제때 제사 지낼수 있도록 해주고 분향할 수 있는 장소만이라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대전형무소 정치범집단학살사건(일명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은 지난 해말 해제된 미국비밀문서의 공개에 의해 공론화된 것으로 이문서에는 50년 7월초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1천800여명의 정치범이 3일동안 군인과 경찰에 의해 골령골로 끌려가 집단 총살된 것으로 돼 있다.

-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최근 여러 증언과 정황들을 근거로 정치범외에 민간인이 함께 총살됐으며 학살기간도 열흘이상으로 희생자 수가 최소한 3천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이같은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대전형무소 정치범집단학살사건(일명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은 지난 해말 해제된 미국비밀문서의 공개에 의해 공론화된 것으로 이문서에는 50년 7월초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1천800여명의 정치범이 3일동안 군인과 경찰에 의해 골령골로 끌려가 집단 총살된 것으로 돼 있다.

-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최근 여러 증언과 정황들을 근거로 정치범외에 민간인이 함께 총살됐으며 학살기간도 열흘이상으로 희생자 수가 최소한 3천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 그리고 오마이뉴스는 이같은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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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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