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라리 병에 걸리고 싶다

권리와 행동! 이것이 삶의 개념이다

등록 2000.05.30 05:05수정 2000.05.3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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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아야 하는 곳이 병원, 감옥, 파출소라는 농담이 있다. 그러나 특히 병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강남의 부르조아지들에게는 유명한 모 산부인과에서 탯줄을 끊고, 삼성병원 영안실에서 생을 달리하는 이상한 전통이 있을 정도이다.

하여튼 고작 감기만 걸려도 으레 찾는 곳이 병원인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발행인과 같이 가난한 넘은 판콜 한 병으로 참고 견딘다.

그런데 이 사회에 환자가 디따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라면이라도 끓여먹으면 굶주리지 않고, 의료혜택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도 노예제의 평균 30세보다 두배 이상 늘어났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찾아야 한다. 이윤을 위한 착취 -> 축적을 위한 이윤 -> 경쟁을 위한 축적에서 인간의 얼굴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너도 한 번 찾아봐~)

즉, 속도 무한정의 경쟁을 위해 오늘도 고혈을 짜내는 착취는 쉬지 않는다. 반면, 착취당하는 사람에게 현실은 고통 그 자체이다. 인식하든 못 하든 간에 그는 임금노예라는 부정할 수 없는 굴레에 속박되어 있다.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든 권리는 애당초 노예에게는 꿈일 수밖에 없다.

어디 한 번 되돌아보라. 그대는 마릴린 몬로의 섹시한 엉덩이와 그 사이에 있는 음탕한 무엇을 생각할 수는 있었다. 화장실에 갈까, 만화책을 끝까지 읽을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월급날에는 술 한잔으로 기분을 내고, 사창가에 가서 그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자유로운 행동이고 진실로 생각이고 자신만의 선택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생각의 자유마저도 박탈하고 있다.


민주노조를 건설하겠다는 우리들의 행동과 선택은 공공연히 노동법과 자본가의 방해책동에 의해 좌절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 선택의 권리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계급과 돈으로 결정된다. 대학원을 다녔던, 전문직에 종사하던 간에 최소한 부분적인 자유조차도 형실적일 뿐 질적인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형식적인 자유민주주의조차 보장하지 않는 경찰국가에서 고스트레스는 말먹이다. 따라서 남한이 아시아에서 가장 스트레스 많이 받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음은 처음부터 아이러니가 아니다.

새로운 정보, 소음, 긴장, 혼잡, 개인적 갈등 등 다양한 형태의 억압은 그것이 투쟁을 통해 외부로 피력되지 않는 한 자신의 몸을 반복적으로 파괴하는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육체의 부교감 신경 반응(휴식하고 회복하는 반응 기능)이 부정된다면, 인체는 또다른 부정을 통해 휴식을 강력하게 원하게 된다. 즉, 면역체계를 극도로 저하시켜 억제된 감정을 질병으로 나타내기에 이른다. 극단적인 질병은 암이다.

1893년 암과 스트레스의 관계를 통계학적으로 연구한 스노우는 그의 저서 <암과 그 경과>에서 "모든 형태의 암 발병의 원인 가운데서 정신적 요소가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서 정신적 혼란이 최대이고 심신을 소모하는 빈곤, 고생이 뒤를 잇는다. 정신박약아와 정신병자에게는 이상하게도 어떤 종류의 암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달리 말해서, 질병에 걸리는 사람은 그 삶이 너무나 지쳐 보람을 얻지 못하여,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구한 것이다. 보통 병으로 인한 핑계나 변명만큼 사회적 동정과 면책론을 구하기 쉬운 것은 없다. 이것은 소위 '죽이는 마음'으로 불린다.

500명의 암환자의 생활상을 조사한 레샨 박사는 <살기 위한 싸움-암을 발생시키는 심리적 요인>에서 이들의 공통점과 특징에 관해 "이들 환자에게 보이는 선인(善因)인 체하는 온화한 성질은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희망을 품을 수 없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우리가 질병에 걸려야 하는지 -산업재해를 비롯해 물질적이고, 외부적인 상황에 기인한 질병은 논외다.- 단 한 마디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그것이다. 또 이 사회는 우리를 조금도 쉬지 못하게 강제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절망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을 간과했다. 또한 절망은 현재 상태가 아닌 새로운 삶, 활기차고 살맛 나는 그런 삶을 위한 마지막 자구책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반대급부로 인간적 따뜻함, 직관력, 상상력이 황폐화되어 버린, 즉 삶의 불꽃이 절망이라는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어야만 이 치명적인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또다른 절망이 아닐 수 없다.

삶의 개념은 휴식에 있다. 맑스의 사위였던 게오르그가 주창한 "게을러질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져야 한다. 하루 16시간 동안 노동해야 했던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30세였던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보자.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제를 갈구했다.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여유로움을 원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적인 삶의 초석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투쟁이 영국에서, 미국에서, 또 1930년 조선의 원산만 총파업에서 계속되었다. 마침내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들불처럼 타오르는 노동자 투쟁은 죽일 수 없을 것이다"는 유언을 남기고 16시간 또 12시간 노동제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의 경우 대충 80세를 넘겼다. 이러한 사실들은 잔혹한 노동의 착취가 인간의 생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독점화되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 모든 야만적인 사태의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광범위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전투!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전투는 산업재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여튼 우리는 이 염병할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여 휴식을 취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해방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병원이 진정한 해방구가 될 수 없음은 병원의 태생적 한계이다. 의사들은 값비싼 약과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대신 폭리를 취한다.

환자들은 근본적으로 낫기를 거부한다. 다시 건강해져야 봐야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억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직장, 가정, 사회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생활해야 한다. 차라리 병원에 있기를 원하고, 어떤 경우 건강은 더 악화일로에 선다.

이제 분명해졌다. 절망은 새로운 세계를 바라는 인간의 근본적이고 무의식적인 언어이고, 행동이라는 부분이다. 착취와 억압에 '안돼!'라고 저항하고 있다. 비록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대응이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명확하고 올바른 희망의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즉 노동하는 인간은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더 고귀하고 질적인 차원으로 변화·발전시켜 온 것처럼 앞으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 본능'이다. 그때에 가면 더 이상 이 저주받을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기파괴를 시도할 이유도 소멸될 것이다.

인간은 절망을 통해 자기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세포들을 다시 묶어내어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조직하기도 한다. 권리와 행동! 이것이 삶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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