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A 협상과 그 적들

"미국에 대한 굴종적 태도부터 바꿔야"

등록 2000.05.31 07:42수정 2000.05.3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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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이태원 외국인 전용클럽 여종업원 살해사건, 미 군무원에 의한 대구의 성추행 사건 등 벌써 여러 건의 미군 범죄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관건이 되었던 것은 바로 미군 피의자의 초상권 문제, 미군 측은 미군 피의자의 사진이 보도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이런 미군의 '자기 국민 챙기기'에 대해 우리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 나라 국민의 인권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신문윤리위원회' 김종원 사무국장은 미군이 미군 범죄자의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항의하는 것을 오만하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범죄 피의자의 경우,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본인의 동의없이 얼굴을 촬영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언론의 관행이 문제이지, 미군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초상권 문제에서도 보았듯이 미국은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국 국민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 국민이 미군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중간에서 해결하고, 중재하는 정부 기관들은 최선을 다했을까?

적은 우리 내부에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 운동본부' 김동심 사무차장은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우리 경찰의 수사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녀는 한·미우호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대의명분과 경찰의 남성우월적 편견 때문에, 기지촌 매매춘 여성이 관련된 범죄의 경우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매매춘 여성 한 명 때문에 한미관계에 금이 갈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런데서 일한 것은 이미 그럴 일을 당할 각오를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경찰의 기본 시각이라는 것이다.


김사무차장은 95년, 김영삼 대통령이 SOFA 협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외교통상부의 담당관이 주한미군과 관련한 자료를 얻으러 왔다고 기억했다. 그녀는 담당 부서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한심해서 일부러 돈을 받고 자료를 넘겨줬다고 말했다.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해 사건 피해자 조중필 씨의 매형, 서관호 씨는 사건을 맡았던 검사 두 명을 직무유기로 고소했다. 검찰이 용의자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제때 연장하지 않아 용의자가 미국으로 도주해버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전문가들은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검사가 용의자 두 명을 공범으로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미군 관계자는 한국이 형사재판 관할권을 행사하는 비율이 낮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형사재판 관할권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용산구청은 용산 미군기지 내 불법 증축 건물에 대해 철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명령은 외교통상부가 중간에 나서서 '용산구청은 미군기지 내 시설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내리는 바람에 도중에 힘을 잃었다.

외교통상부가 미군 대신 변명을 해준 것이다. 성장현 전 용산구청장은 국방부에 이 명령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한 관계자로부터 'SOFA는 국제법이기 때문에 국내법인 건축법보다 우선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왔다고 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는가

이처럼 미국은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의 초상권까지 챙기고 있지만 우리는 정당한 우리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일선 행정기관들이 뒷짐을 지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자, 주민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미군 헬기장이 위치한 대구시 남구 대명5동의 차태봉(64) 씨는 헬기장 때문에 입는 피해에 대해 그동안 수십 번에 걸쳐 청와대, 국방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알아보겠다'는 회신말고는 아무런 조치가 없자, 그는 직접 나서서 지역 미군사령부 민원실에 조치를 요구했다.

그 결과 미군 지역사령관으로부터 '소음이 큰 대형 치누크 헬기의 이·착륙을 중단시키겠다. 행사시 예포를 사용하지 않겠다. 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를 하지 않겠다'는 등의 약속을 얻어냈고, 이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단체장들도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용산구의 경우 성장현 전 용산구청장이 미군 측에 여러 문제를 제기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성구청장은 미군도 교통 위반 범칙금을 내도록 미군 당국과 협의해 징수 체계를 세웠다. 구에서는 미군 위반자들을 위해서 영문통지서를 발급하고, 미군 쪽에서는 이를 전담할 부서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대구 남구는 구청장 직속으로 미군기지 문제 전담 부서를 설치해 놓고 구청장이 관련 민원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이재용 대구 남구청장은 얼마 전 미군 비행장 주변 비행안전구역 내의 건물들에 대한 고도 제한 철폐를 관철해 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다.

성장현·이재용 구청장이 미군 측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던 것은 둘 다 '한미친선협의회'(협의회)라는 친목 모임을 통해서였다. 지역 유지와 미군 장교들간의 사교클럽에 불과했던 협의회를 두 구청장은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문제 제기의 통로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재용 남구청장은 '한미친선협의회는 단순한 친목 도모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미간의 친선 도모에 저해되는 요인을 제거하는 자리'라고 협의회의 의미를 다시 규정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만은 제발

비록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미뤄졌지만 얼마 후면 SOFA 개정에 대한 협상이 있을 예정이다. 잇따른 미군 범죄와 매향리 사건 등으로 인해 현재 미군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져 있는 상태다. 그리고 최근 들어 언론이 주한미군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SOFA 협정 개정을 위한 주변 분위기는 우리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민이 만들어 놓은 이 좋은 환경에서 어떤 협상결과를 얻어낼 지는 이제 협상 담당자의 손에 달려 있다.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평범한 시민도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 협상을 이끌어 냈고, 말단 지방자치단체장도 주민의 이익을 위해 잘못을 시정하도록 관철시켰다. 정부 당국자들도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시사저널, 554호>

덧붙이는 글 <시사저널, 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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