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경배씨의 주제발표문이다. 주제발표를 맡은 민경배씨는 사이버문화연구소실장이며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1. 미디어가 희망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우리에게 신대륙처럼 다가왔다. 하얀 백지를 받아든 아이들처럼 사람들은 이 무한한 미개척지에 새로운 문명을 그릴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이버스페이스에 세워질 새로운 사회는 자본에 의한 물상화, 권력에 의한 위계화로 얼룩진 현실세계와 달리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고 풍요와 행복이 꽃피울 수 있도록 설계된 계획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거대한 현실구조의 벽 앞에서 소외되고 좌절된 사람들은 사이버스페이스가 자신의 욕망과 자유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 생각하고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현실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의 전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이버스페이스를 변화와 개혁을 위한 대안적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 들어왔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이라는 철갑선을 타고 상륙한 정복자들 앞에서 사이버스페이스 원주민들의 꿈은 하나 둘씩 깨져갔다. 자본은 사이버스페이스 여기저기에 거대한 성을 짓고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의 ID는 디지털 화폐로 환산되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권력은 윤리와 안보라는 양날의 칼을 앞세워 사이버스페이스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이버 라스베거스와 사이버 홍등가를 기웃거리며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신대륙은 서서히 현실세계에 의해 식민지화 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마침내 사이버스페이스를 지키기 위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카피레프트와 리눅스가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고, 해커와 사이버펑크가 전위대로 나섰다. 곳곳에 안티 사이트(anti-site)라는 진지가 구축되고, 가상공동체의 깃발아래 모여든 네티즌들은 사이버 시위로 저항했다. NGO와 시민단체들의 조직적 지원도 이어졌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원주민들과 정복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버렸다.
가끔씩 들려오는 작지만 의미있는 승전보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의 저항운동은 전반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복자들은 때로는 막강한 화력으로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원주민들을 회유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의 헤게모니를 장악해가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하얀 백지는 점차 현실세계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정복자들의 침투력이 미약한 영역이 있다. 바로 미디어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원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지는 독립 미디어들은 규모와 자원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절대 열세에도 불구하고, 현실세계에서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기성 미디어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세계에까지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독립 미디어의 파괴력은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통해서도 널리 입증된 바 있다. 매트 드러지(M. Drudge)라는 청년이 운영하는 <드러지 리포트>는 기성 언론들보다 한 발 앞서 클린턴의 성추문 사건을 터뜨림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지식정보가 가장 핵심적 자원인 정보사회에서 지식정보의 생산·공급·소비를 직접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바로 미디어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가장 일차적 전제조건인 '공론'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공간 역시 미디어이다. 그러기에 현실세계의 지배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지점이 미디어라는 사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과 현실세계의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는 미디어가 희망이요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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