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고상하지 않다?
서구에서 동양계나 흑인이 간혹 정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백인사회 입장에서 보면, 능력이 있는 백인들은 보다 더 고상한(?)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 동양계나 흑인에게 정치권 입문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시각이 있다.
말하자면, 서구에서는 정치인은 선출직 공복(public servant)이라는 의식이 철저하고, 권한이 분산되어 있으며, 견제장치가 발달해 있고, 결국 정치인의 권한 자체가 그리 크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있는 백인들은 힘든(?) 정치권 입문을 마다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모두 정치해야 하는가?
우리 나라는 어떤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일가를 이룬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꼭 정치권으로 나아가고 있다. 왜 그런가? 우리 나라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인) 그 자체야말로 지고지선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나라 정치개혁의 첩경도 어쩌면 정치인의 권한을 줄이고 분산시키며 견제장치를 잘 가동시키도록 하는 데에서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도 형식상으로는 정치인의 권한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교문화의 나쁜 측면으로서, 사대부 관료가 민중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하는 문화적 전통이라든지, 이권개입이나 인사청탁 관행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든지, 선출과정 또한 밀실 공천, 보스 공천, 돈 공천 등 그 자체가 문제가 많다든지 하는 등등의 이유로 인해 정치인하면 거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상관없었던 4.13총선
총선과정에서 지금까지 시민단체들은 어떻게든지 정치개혁을 이룩하여, 되도록이면 깨끗하고 지역주의를 벗어나, 어떻게 하면 민의에 기반을 둔 정치와 선거를 가능케할 것인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유와 경위는 어찌되었든, 금번의 이와 같은 정치개혁 노력은 좌절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여야 기득권 정치세력의 방해 때문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상향식 공천제도, 돈 안쓰는 깨끗한 선거도, 정책 대결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지역주의가 보다 교묘해지고 더욱 더 고착화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마디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낙천낙선운동은 실패하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시민단체들이 총선을 바로 이끌어보기 위하여 애썼지만, 그래서 초기에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지만 결국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명단에 올린 인사 낙선률로 평가할 일이 못된다.
낙천낙선명단 중 영남지역 한나라당 인사에 대해서는 한 명도 낙선시키지 못하였다. 이로 보면 음모설이나 특정정당과의 유착설은 사실 여당 아닌 야당과의 그것이었다는 것이 판명(?)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역주의에 관한 한 낙천낙선 운동은 실패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각종 정치개혁 과제들은 섣부른 예상이기를 바라지만, 이번 선거 결과 새로 구성되는 국회에서도 지극히 난망하다고 보는 것이 정직한 평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당이 제출할 최초의 법안이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보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논의되던 정치개혁 과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386도 하향식 밀실공천으로 공천되어 당선된 것
설령 정치개혁 의지를 갖고 있다고 표명(?)하고 있는 정당이 자연적(?) 정계개편을 통해서라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실제로 정치개혁은 어렵다. 왜냐하면 386을 포함하여 구태에 젖은 관행에 의하여 공천받고 선거를 치른 분들의 한계는 자명하며, 보스 공천과 그에 따른 부패정치의 고리는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은 무산되었으며, 사실 이것은 각당이 철저히 상향식 공천을 하기만 한다면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 당내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면, 국민대표성 확보는 훨씬 용이해지며,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지금보다 훨씬 커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연대, 사실상 하향식 밀실공천 묵인(?)
한편 상대 당이 있는 것이지만 정치개혁 의지가 있었다면 당내 상향식 공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어느 당도 이것을 지난 4.13총선에서 실행한 당은 없다. 정당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어느 정당도 상향식 공천제도를 따르지 않았다.
사문화된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서 함운경 씨가 절차를 문제삼았던 것이야말로 총선연대가 감히 해내지 못한 상향식 공천제 도입의 거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연대는 사실상 하향식 밀실 공천제를 묵인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번 총선에 당선된 386은 상향식 공천에 관한 한 오히려 철저히 반대하고 거꾸로 하향식 밀실공천에 특출나게 잘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지나친 말일까? 이들 386입장에서 보면 출발조건이 엄청나게 뒤져 있는데 당원들간의 예비선거 등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
아마도 상향식 공천제는 정치 "개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치 "혁명"으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386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386들이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뜻을 펼치기 위해 나섰지만 공천을 받은 과정 그 자체는 철저하게 구태에 의존함으로써 가능했다.
구태에 의해 당선된(?) 386
그렇지 않으면 공천 그 자체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당선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돈선거, (역)관권선거, 흑색선전 등과 같은 "구태"에 기존 정치인 못지 않게 잘 적응했기 때문에 당선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386을 구태에 물들었다고 나무라지지는 말자. 그나마 이들의 환골탈태는 구시대 정치인보다는 아직은 보다 용이할 것이므로.
그런데 이들이 5.18 전야제 때 광주에서 술판을 벌였다 하여 주춤거리고 있다. 이들이 과연 환골탈태 의사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술판을 너그럽게 봐준다 하더라도, 하향식 밀실공천에 의존하여 당선된 이들에게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40대 기수론과 인터넷 기수론
30여년 전 당시 야당에서는 40대 기수론이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바람을 일으킨 사람들 중 YS와 DJ는 30여년 후 마침내 차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렇게 30여년 전의 젊은 정치인들이 생명을 건 민주화 투쟁을 통하여 그 뜻을 이루는데 군부독재 아래에서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여 년 걸렸다고 한다면, 지금 젊은 386 입지자들은 뉴밀레니엄 시대 인터넷 세상의 클릭클릭 덕분에 그 기간을 일순간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을 만큼 이들이 과연 새시대 새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를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정치에 적용하고 있는가 ? 386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쟁취할 것인가 ?
그래도 386에 대한 기대가 연목구어가 아니길
IMF 극복도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임수경 씨 글로 그 영향력을 과시한 "인터넷세상"의 정치가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시민단체가 제대로 된 의정감시를 벼르고 있는 이때, 386이 국민의 뜻과 상식에 따라 정치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만 할 것인가 ?
개혁적이지 않은 386에게 개혁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것이기만 한 것일까? 임수경이라는 네티즌이 386의 잘못을 지적해냈듯이, 인터넷 세상의 네티즌들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기대만은 저버릴 수 없다. 지난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았을지라도, 386 정치인들만은 구태에 물들게 놔두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 한겨레에도 동시에 올림을 밝힙니다. 문성호 (한국정당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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