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30명이 인사동 술집에 모여서 춤을 췄다고?

'인디포럼 2000 작가의 밤' 행사에서 떠오른 생각들

등록 2000.06.01 11:50수정 2000.06.0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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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존재하는 곳 어디라도 권력은 존재한다.

영화계에도 이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영화제는 영화계의 권력지도가 가장 극명하게 그려지는 장이다.


누군가는 심사위원이 되고, 누군가는 그 심사위원에 의해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는다. 당연지사 명망가 앞에 줄서기와 막후의 로비가 없을 리 없다.

주류 영화계의 영화제란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판의 권력구도를 읽어낼 수 있는 장에 다름 아니다. 일례로 가장 근간에 있었던 프랑스 '칸느 영화제'와 한국의 '전주국제영화제'가 그렇다.

세칭 메이저로 표현되는 영화 제작자와 영화 배우, 영화 담당 기자를 제외한 비주류의 영화인들에게 영화제는 냉혹하리만치 배타적이었다.

철조망으로 무장하고 관계자 외에는 접근을 막은 주상영관을 중심으로 진행된 칸느 영화제의 폐쇄성과 몇몇의 주류 언론을 제외하고는 인터뷰, 관련 학술행사 등 어떠한 취재에도 기본 편의를 제공치 않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메이저 언론 모시기'는 영화판의 권력구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형성된 권력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동시에 즐기자는 영화인들의 축제를 지향하는 '인디포럼 2000'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사가 '권력'이란 단어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말 그대로 '축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7일 '아트 선재센터'에서 홍형숙 감독의 '시작하는 순간-두밀리 두 번째 이야기'로 개막을 알린 '인디포럼 2000'은 지난 1996년부터 시작된 독립영화인들의 영화축제다. 심사위원도 없고, 수상작품도, 수상을 치하하는 상금도 없는 영화제.

자본과 자본을 투여한 제작자의 입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영화. 한국의 독립영화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먼저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유수 영화제에서 우리 독립영화가 주요상을 수상하고 호평을 받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너무 많아 수상작품의 예를 일일이 들기가 힘들 만큼.


이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모이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얼 하며 놀까? 이 궁금증에 답하는 자리가 5월 30일 밤에 인사동의 라이브 카페 '스피릿 모노'(Sprit mono)에서 열렸다. 이름하여 '독립영화 작가의 밤'.

저녁 8시부터 시작된 행사는 참석자 모두가 적당히 취기가 오른 9시 40분경 절정을 이루었다.

이번 영화제에 '싸일런트 뮤직밴드'라는 작품을 출품하기도 한 영화집단 '유랑극단'의 배꼽 잡는 '차력 공연'.

'기저귀 고무줄로 배꼽 때리기', '빨래 집게로 코 당기기', '휘발유를 가장한 생수로 라이터 불 끄기' 등이 과장된 익살과 재담으로 진행될 때마다 관객들은 모두 배를 잡고 박장대소했다.

이어 이번 '인디포럼 2000'에 작품을 출품한 감독들을 소개하는 시간. 그 순간 내 마음이 내지른 감탄사.
"오! 놀라워라".

내 바로 뒤에서 맥주를 마시며 키득대던 벙거지 모자의 청년이, 지저분하게 콧수염을 기르고 군화를 질질 끌고 화장실을 오가던 이가, 두손을 다소곳하게 모으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웃으며 고개 끄덕이던 검은 원피스의 소녀가, 그들 모두가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자그마치 30여명의 영화감독을 한자리에서 본 것이다.

그들이 전한 인사말에는 어떤 권위도, 허세도 섞여들지 않았다. 그들은 진지하고 겸손했다. 뿐 아니라 술자리 막판에는 참석자들과 함께 춤을 출 정도로 격의 없었다.

그 광란(?)의 한가운데서 시쳇말로 '독립영화판에서 6년을 굴러먹었다'는 한 참석자는 "우리는(독립영화인) 메이저 영화에 대한 반감을 어떤 형태와 크기로든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충무로라는 거대 자본의 영화거인이 손짓할 때, 그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딜레마다"라 말하며 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당연지사 예술이어야 할 영화가 영악한 자본과 어설프게 결합했을 때 어떤 비극적 결말이 초래되는지.

'베이비 세일'이란 정신 없는 삼류 코미디를 만든 감독이 '모범 시민'을 찍은 영민했던 영화작가 김 본이라면 당신은 믿겠는가?

'가변 차선'을 제작한 양윤호가 '미스터 콘돔'이란 쓰레기-미안하다. 하지만 내 언어 사용능력으로는 이 영화를 '쓰레기' 외에 호칭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를 양산해 낸 이유가 거대 영화자본의 지나친 간섭 탓이라는 것말고 어떤 방법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철거민의 천막촌.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게서 영화적 진실을 발견하려던 김의석이 충무로로 가서 고작 '결혼 이야기' '홀리데이 인 서울' 따위를 만들어 천박하게 대중추수 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주류 영화판으로 가서 '접속', '텔 미 썸딩'을 만들어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나는 내 영화를 정치적 영화라 해석한다"는 '말 같잖은 말'을 일삼는 장윤현이 '파업 전야'로 다수 대중을 문화적으로 고무시켜 가슴 벌렁거리게 한 선동가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할까?

그날 그 자리에 모여 영화와 삶을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울고, 춤추던 그들만이라도 가난하지만 위대한 예술로서의 영화를 지켜주기를, 지전(紙錢) 몇 닢에 신념과 지조를 매매(賣買)하는 장사꾼이 되지 않기를 바란 것은 비단 기자의 마음만일까?

94년 타계한 시인 김남주는 그의 시 '예술지상주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가의 밥그릇 주위나 서성대며 흘린 밥알에나 눈독들이는 예술이라면...... 에라, 죽으면 개도 안 물어가겠다...".


권력과 자본에 귀속되는 예술은 이미 예술이 아니다. 그것이 영화든,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여하튼, 독립영화 축제 '인디포럼 2000'은 6월 4일까지 종로 '아트선재센터'에서 계속된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 독립영화 한편 쯤 보는 것도 그들이 자본과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의연히 제 갈 길을 가는데 힘을 보태주는 행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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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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