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화약 대신 전경으로 매향리를 가득 채우는군... 도대체 우리 정부는 누구네 정부야"
지난 6일 매향리에서 진행된 집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오폭사고 이후 각 매스컴은 매향리 문제를 알려나갔다. 주민들은 "이제는 해결이 되려나"라는 기대로 정부의 반응을 기다렸으나 결과는 한미조사단의 '실질 피해없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었다. 폭격재개 움직임도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하나 둘 싸우기 시작했고, 정부는 전만규 위원장을 연행, 구속조치했다.
일련의 흐름을 지켜본 김모씨는 "이 사람으로 인해 매향리가 전국적으로 알려졌어. 전 위원장은 애국자야. 선량한 사람이라구. 그런데 범법자가 됐어. 우리 정부에 의해서..." 라고 정부의 비이성적 태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또한 "성조기를 찢은 것도 아니고 그 걸레같은 깃발천을 찟었다고 구속시키다니... 전 위원장의 행동은 매향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야!"라고 주장한다.
옆에 있던 오명환(44세) 씨는 "증거가 있는데도 피해가 없다는 조사결과가 더 웃겨. 폭격 이후 2-3분은 여운이 남아서 전화벨 소리도 안 들리는 이 곳 상황을 무시해도 유분수지"라며 매향리 문제를 왜곡한 조사결과에 대해 비판했다. 한 주민은 "가해자가 조사하는 것부터가 웃겼어. 언론에서도 우리가 피해자라고 하는데..."라고 비판했다.
매향리 문제가 전국화되면서 언론에서는 피해사례를 다방면으로 알려나갔다. 다른 지역 사람들과 매향리 주민들의 청각실태, 중금속 오염도 비교분석 등으로 매향리 피해사례는 이미 공론화되었다. 그러나 한미 조사단은 왜곡된 결과를 뻔뻔스레 발표했다. 이미 50년간 계속된 피해사례가 있는데도 말이다.
김선주(69) 씨는 "바다에서 일하다가 불발탄으로 죽은 사람이 수두룩해. 청각장애로 귀 수술한 사람도 있어. 비행기로 전화도 못받고, 보기 좋은 농섬을 2/3나 날려보내 놓고 피해가 없다니..."라며 그간의 울분을 털어 놓는다.
50년 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 주민들은 논에 떨어진 대포나 폭탄을 팔아 생계유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사망한 사람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이 약 100여명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주민은 "매향리의 폭탄피해가 커서 그 심각성이 더하지만, 석촌리와 이화리의 소음피해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이야"라며 사격장에 의한 피해지역이 광범위하다고 이야기한다.
50년간 계속된 피해를 왜곡하기 바쁜 한미 조사단, '사격장 폐쇄'를 외치는 주민들의 요구에 전만규 위원장을 구속하고 수많은 전경을 배치한 정부의 행태. 이같은 모습은 주민들을 더욱 단결하게 만들었고, 각 단체의 투쟁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매향리 주민의 의식이 '주한미군 철거'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할머니는 "학생들이 함께 매향리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어.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데, 공감이 가더구만. 많이 든든해"라고 밝혔다. 또한 이 마을 경로회장 한천덕 씨(70세)는 "우리 지역 문제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라는 구호에 공감이 가고 있어. 미국이 빨리 귀향했음 싶어"라고 밝혔다.
매향리 문제해결 구호가 사격장 '이전'이 아닌 '폐쇄'도 이런 영향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정부의 이중적 모습과 미군의 비상식적 조사결과로 주민들은 투쟁으로 일어서고 있다.
양관철 씨(44세)는 "전 위원장 구속으로 마을 사람들이 단결되고 있다"라며 앞으로 힘있게 싸울 것을 밝혔다. 화약냄새 대신 매향리를 가득 메운 경찰도 50년간의 원한을 막을 수 없다. 실천투쟁 속에 학생들이 철책을 끊기 시작했다. 미군부대를 삥 둘린 철조망이 하나둘 끊겼다.
박수를 치는 사람, 철책으로 달려가 철조망을 끊는 속에서 매향리의 주인으로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의 이런 투쟁은 전경들도 막을 수 없었고, 철책을 폐쇄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바로 매향리 주민, 투쟁하는 모든 이였다. 매향리의 사격장 폐쇄를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향리 철책이 사라진 것처럼 분단의 철책을 걷어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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