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2일 오후 4시 우리 나라 분단선인 38선을 넘었다.
한때 대학가에서 통일의 꽃이라 불렸다던 임수경 언니처럼,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는 문익환 목사님처럼 나도 그렇게 그분들을 따라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 상징적인 의미를 넘었을 뿐이지 공간적인 이동은 국가 안보상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허리선을 잘라먹고 있던 빨간 글씨로 38선이라고 씌어진 돌기둥에는 미군 차량을 본뜬 우리 부대의 트럭 같은 것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아이러니하다고 여긴 나는 그림이 되겠다 싶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나 운전병이 그런 나의 행동을 의식했던지, 금세 차를 돌기둥에서 한 100미터 앞으로 몰았다.
그렇다고 그 장면을 놓칠 내가 아니다. 서둘러 셔터를 누르고 나도 유유히 그 50여년 전 치열했던 그 전쟁의 흔적을 미군의 차에게 내어주고 비켜갔다.
첩첩산중 강원도 산골에는 북한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이유때문인지 수많은 반공 표어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간첩은 자수해서 선진조국 역군 되자"를 비롯하여 불온선전물 신고 전화번호는 아예 고정적인 거리 간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반공의식으로 무장된 강원도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 자료화면에서 보여주었던 북한 시내가 떠올랐다. "조선은 하나다"라는 빨간 글씨의 표어가 새겨진 간판 말이다. 나는 북한에서 그 표어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TV화면에서 보았던 그것과 내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이는 간첩 회유를 목적으로 한, 또는 국민들 반공의식의 무장을 목적으로 한 표어의 느낌은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차는 강원도 길을 굽이굽이 돌아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이상한 것을 보고야 말았다.
"김일성, 이기붕, 이승만 별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분단 이전에 있었던 별장을 최근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산정호수의 것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 곳곳에 김일성 별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언론에 알려진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난생 처음 보는 곳이다.
국가보안법상 한때 적국의 원수였던 사람의 별장이 선진조국 남한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별장과 나란히 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인가? 우리 정부는 그것을 '국가안보보전'의 이름으로 기념화 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별장 입구에는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자도 서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나 혼자의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곳을 그냥 그렇게 지나가면서 훔쳐 본 그 별장은 소나무 숲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고성 같은 곳이었다. 드문드문 한옥풍의 건물들이 눈에 띄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예전이나마 김일성이 한적하게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별장 안을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 동안 정부와 언론이 보여줬던 것처럼 그 기념관에서도 역시 김일성은 "나쁜 놈"으로 그려져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뻔한 것일지도.
우리가 마치 김정일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 그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가 뭐라 해도 후세에 길이 남을 일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우리들의 의식은 예전과는 달리 바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도 있는 반면,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통큰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하는 모습 역시 많이 볼 수 있다.
세상은 언제나 바뀌는 것이고, 그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간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 있어야만 이뤄지는 것이기에 결과는 언제나 더디다. 나는 강원도 여정을 꾸리며, 그 힘의 '더딤'을 '디딤'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