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사상 최초로 열렸던 평양 정상회담(6.13-15)이 30일로 보름을 맞았다.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대사건이었던 남북 정상회담은 반세기 동안 고착된 상호 반목과 대립, 불신의 벽을 넘어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상회담은 또 냉전적 사고에 젖은 우리 국민 대부분의 의식구조에도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정상회담 기간중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인 파격적인 언행은 우리 사회에 김정일 쇼크(충격)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 국민 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사상적,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온 겨레에 흥분과 기대를 고조시켜주었던 정상회담이 개최된지 보름을 맞아 회담 후 남북한의 달라진 모습을 살펴본다.
△청와대
김대중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지난 보름동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를 사회 각계각층에 알리고, 내각에 차질없는 후속조치를 당부하는 등 모처럼 조성된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 기조를 다지는데 주력했다.
김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및 3부 요인 초청 오찬을 시작으로,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잇따라 가졌다.
또한 통일고문, 중앙언론사의 사장.해설위원.편집국장, 국가 유공자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정상회담 설명회를 가졌으며, 6.25 전쟁 50주년 기념식에서 한반도의 전쟁종식을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내각에는 지난 16일과 27일 두 차례 국무회의를 통해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당부하면서 성급한 `성과주의'를 경계하고 신중하고 차분하게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각별히 당부했다.
이와 함께 대외적으로도 미.일.중.러 정상에 특사를 파견해 정상회담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지지를 요청했으며 미.일.러 정상과는 직접 전화통화를 갖는 등 주변국과의 우호속에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모색해 나간다는 기본 원칙을 지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치
남북정상회담은 6.15공동선언에 비판적인 한나라당에서마저 목요상(睦堯相) 정책위의장이 헌법상 영토조항 개정 문제를 `성급하게' 거론할 만큼 정치권에서도 인식과 행태에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여야는 공동선언 1항의 `자주' 개념과 2항의 `통일방식'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였으나, 회담의 충격파가 워낙 컸던 까닭에 본격적인 이념논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회담후 정국주도권이 여당에 일방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야당의 공세 수준의 변화가 나타났을 뿐이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실제 진행상황에 따라 이 논란이 이념논쟁으로 다시 불붙을 가능성은 남아 있으나, 지난주 열린 국회 16개 상임위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새로운 남북관계 전개 전망에 따른 각분야의 남북 교류.협력 아이디어를 경쟁적으로 내놓는 등 남북관계의 큰 전기를 따라잡는 데 주력했다.
여야 의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회 연구단체중 `통일농어업의정연구회' `통일시대산업정책연구회' 등 `통일'이 붙은 연구단체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는 `현상도 이를 대변한다.
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당내에 남북관계 특위를 설치, 새로운 남북관계 전개에 따른 법.제도 정비에 나섰다.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 보수원조로 자처하며 폐지나 대체입법은 물론 개정에도 반대하던 자민련이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개정론으로 선회하고, 한나라당도 북한의 노동당 규약개정을 조건으로 개정 검토 입장을 밝힌 것은 괄목할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남북정상회담 직후 만난 데 이어 최근 의료계 집단폐업 문제를 갖고 다시 만나 집단폐업 철회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상생의 정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남북정상회담의 부산물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 총재는 남북정상회담후 여권에 일방적으로 넘어간 주도권을 만회하기 위해 서라도 새로운 야당 지도자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김 대통령은 회담 후속조치의 원활한 수립.집행을 위한 야당측의 협조를 기대했다는 분석이다.
△ 경제
정상회담 이후 재계는 대북경제협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10일 정상회담 개최사실이 발표된 이후 중단 또는 연기됐던 각 경제단체 및 기업체의 대북사업 추진과 기업인 방북이 다시 시작되고 경협 활성화를 위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먼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등 경제 5단체는 지난 22일 단체장 모임을 갖고 남북경협 추진을 위한 공동창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대북 경협창구로 가칭 `남북경제발전민간협의회'를 구성키로 하고 구체적인 협의회 구성 및 운영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제단체들은 이 협의회를 통해 실향 기업인들로 구성된 고향투자방문단과 중기협의 중소기업 대북투자조사단 방북 등 단체별 경협 추진일정을 협의하고 기업들의 경협창구 역할도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현대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28일 다시 방북하는 등 기업체들의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현대는 정 전명예회장의 방북을 통해 서해안공단 부지선정, 금강산 종합개발 등 경협사업 현안을 최종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함께 삼성전자의 경우 50만평 규모의 전자단지 걸설, LG의 경우 컬러TV 합영공장과 비무장지대의 국제물류센터 건립사업 등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며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를 중심으로 한 외국기업들의 대북진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는 경협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우선 남북한 당국이 투자보장 및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경협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시혜적 차원의 사업만 가능할 뿐 대규모 투자 등이 필요한 본격적인 대북경협사업은 추진되기 힘들 것이라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사회
평양 정상회담은 한국전쟁이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냉전의식 구조를 뿌리채 뒤흔들어 놓았다.
분단의 세월이 반세기를 넘어서고 분단체계가 점차 고착화 되면서 '통일은 가까운 시일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식들이 점차 확산돼 '통일무용론'까지 대두되던 사회정서에 '가까운 시일내 통일도 가능하다'는 자신감과 의지,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평양 정상회담은 남북체제 비교 위주의 교육을 받아오던 초등학생들에게 조차 '감동'을 불러일으켜 통일교육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과 함께 우리 사회에 `북한 바로알기' 운동까지 불러 일으켰다.
더구나 군에서는 '북괴'라는 표현조차 없애기로 했고 6.25 50주년 행사가 '남침규탄 행사'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특히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뿔달린 괴수'가 아니라 '인격과 예의, 유머감각까지 갖춘 지도자'로서의 모습으로 비쳐진 후 한때 사회 보수층 일각에서 우려를 표할 정도의 '김정일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어법이나 화술을 흉내내고, 여론조사결과 김위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급등하고, 심지어 일간지 삽화에 김위원장이 통일대통령 후보로까지 그려지는 등 가히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도처에 벌어졌다.
김찬기(34.회사원.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씨는 '평양회담을 계기로 버릇처럼 북한과 김정일위원장을 비하하는 분위기는 없어졌으며 신뢰를 갖고 꾸준히 얘기를 나누면 함께 문제를 풀 수 있는 파트너일 수 있겠다는 생각들이 많아졌다'고 털어 놓았다.
이처럼 평양회담은 냉전구조에 터잡은 일방적인 반북(反北)의식을 허물었고, 북한을 공존과 대화의 상대, 다시 합쳐야 할 한민족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확산시키는 획기적 계기를 만들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군
남북한 군은 정상회담이후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실전적 조치 차원에서 상호 비방을 중지하는 등 신뢰구축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우선, 양측 군간에 두드러진 변화는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실시해오던 상호 비방전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난 15일 오후 6시부터 DMZ 155마일 108곳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한 대남 체제비판 및 비방방송을 중단했다. 우리 군도 16일 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대북 비방방송을 공식 중지했다.
남북한이 DMZ 일대에서 이같은 전향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지난 72년 7.4 공동성명 이후 처음이어서 향후 군사적 신뢰구축 논의의 전도를 밝게해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우리 군은 그동안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북괴'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북한'이라는 용어를 공식 사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중이다. 군은 북한의 권력기관인 노동당을 비롯한 내각기관, 인민군 등을 지칭할 때는 `북괴' 용어를 사용하되, 주민, 지리, 사회 등을 지칭할 때는 `북한' 용어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군의 공식문서인 국방백서에 이미 북괴라는 용어가 사라진 만큼 더 이상 냉전적인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에 이같은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올해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계획했던 기념행사를 대폭 줄이는 한편 주요 격전지 전투장면 재현, 군 시가행진 등 자극적인 행사는 전면 취소했다.
물론 북한군도 `전승기념' 행사를 일체 하지 않는 등 화해 협력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리 군이 `북한은 주적이다'는 개념을 계속 고집하면서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북한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난 15일 오후 휴전선 일대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은 이날 오후 6시부터 휴전선 155마일 108곳에 설치된 확성기의 대남 체제비판 및 비방방송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같은날 국방위원회를 비상소집, 휴전선의 대남방송을 비롯해 각종 선전매체를 통한 대남비방 방송을 중지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달라진 모습은 이처럼 북한 언론매체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물론 조선중앙TV 등 북한 언론은 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의 통일방안 소개 △김 위원장의 `영도력'소개 등의 보도를 주로 내보내며 남한 비난을 일절 자제하고 있다.
특히 북한 방송들은 정규 보도시간에 북한 내 소식을 전한 뒤 일상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에서 전했던 `남조선 소식'을 생략하고 그 시간에 해외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도 정상회담 후 달라진 모습이다.
북한 언론의 변화 조짐은 남북 정상회담 기간에 나타났다. 중앙.평양방송은 지난 13일 오후 5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사실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했으며, 중앙TV는 오후 7시 정규방송을 중단, 이 소식을 자세히 전하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여 체제 선전과 대남 비방 일색이었던 북한 방송의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는 앞으로 남북 관계에도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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