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이도 '마돈나'식 화장을 시작했다

홍성식의 百日詩話 48

등록 2000.06.30 15:01수정 2000.06.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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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이도 '마돈나'식 화장을 시작했다

그녀는
삼천 달러가 넘는
브래지어를 스무개나 샀다
할렘에선 흑인 아이들이
애완용강아지 통조림을 핥고
기아(饑餓)의 아프리카에선
기민(饑民)의 시체 위를 파리가 떠다녀도
"나는 관심 없어"
삼천오백 달러의 브래지어로도
다 못가린 풍만한 가슴 흔들며
비음으로 "처녀처럼"을 외치고 있다


정은은 이태원에서
숏커트로 머릴 잘라 노란물을 먹이고
신촌에서
마돈나 귀걸이와
"RAPE ME !"라 씌여진 험블셔츠를 사선
압구정 밤거리를
망망한 바다 부표로 떠돌고 있다

정은이를 거리로 내쫓은 무엇인가
배추꽃 찾는 나비로 살아야할 그 소녀를


1989년 여름 작

시작 메모

지금에야 몸매도 무너지고 이빨 사이도 벌어진 몰골이지만, 내가 10대 후반이던 시절 마돈나는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녀의 페미니즘 성향이나, 당당함, 입지전적 성공 이야기는 나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럼 왜 너의 영웅이었냐고? 글쎄?


마돈나는 앵글로 섹슨 미녀의 전형이다. 브론드 컬러의 머리칼과 탄력있어 보이는 몸매...

그러나 나, 당시에는 마돈나를 좋아한다고 공언하고 다니지 못했다. 그녀가 콧소리 섞어 부르던 '트루 블루(True Blue)가 너무 좋았지만 그건 집에서 혼자만 들었다. 대신 다니던 학교의 전통예술연구회의 꽹과리 소리를 좋아하는 척 해야했다. 고통이었다.


재론의 여지없이 과도한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경직되게 한다. 위의 졸시는 의도적 이념의 삽입이 시의 어깨를 얼마나 뻣뻣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우습다. 어린 시절 이런 걸 써놓고 딴에는 대견스러워 술병 마개를 따던 시간을 떠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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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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