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을 학교 호적에서 파겠다"

성대 4명 출교 조처 ... 내사문건 공개 '괘씸죄' 의혹

등록 2000.06.30 18:36수정 2000.07.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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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학교를 떠나라. 성균관대학은 다시는 너희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성균관대학교는 지난 6월 12일 대학생과 대학원생 4명에게 '출교' 조처를 내렸다. 또한 같은 날 4명의 출교를 포함해 22명에게 재적, 무기정학, 유기정학 5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학교는 방학이라서 그런지 조용했다. 600주년 기념관 옆에 있는 너덜너덜한 플래카드와 함께 설치돼 있는 천막이 유독 눈에 띠었다. 예전 대학본부로 쓰였던 건물은 지금은 학생 자치회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꽹꽈리 소리며 관현악기 소리가 간간이 그 건물에서 세어 나왔다.

그 건물 4층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정대(28, 대학원 정치외교 석사 1기) 씨는 한눈에도 집에 한참 못 들어간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부시시했다. 지난 6월 12일 학교로부터 '출교' 통보를 받았다는 그는 대학원 총학생회 사무국장이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출교 조처, 70년대 이후 처음인 초강경 징계

'출교'라는 단어가 낯설어 그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물어봤다.

"호적을 파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대학원생의 경우 성대 대학원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고, 대학생은 재입학이 불가능한 것이죠. 재적이나 정학은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것에 비해 출교는 말 그대로 학교에서 영영 쫓아내는 제도죠."

성균관대 학칙 61조 2항에 보면, 근신, 재적, 정학, 출교 조항이 있다. 학교의 명예를 심하게 실추시켰거나 학생의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경우 취해질 수 있는 조치라는 게 학교쪽 설명이다.

출교를 당하면 지금까지 이수한 학점도 인정 되지 않을 뿐 더러 재입학이 불가능하다. 학교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출교 처분이 70년대에는 빈번하게 있었지만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학교로부터 출교 통보를 받은 학생들은 김정대씨를 포함해 모두 4명. 대학원 학생회장 김태일 (국문 석사3기, 34) 씨를 비롯해 학부 총학생회 이주형(사학 4, 24) 부총학생회장과 김치성(역사교육4 ,25) 사무국장 등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에게 '출교'라는 극약 처방이 내려진 것일까.


이들의 출교에 대해 학교는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학부 총학생회와 대학원 총학생회는 등록금 협상 과정에서 지난 4월 11일부터 5월 14일까지 34일 동안 600주년 기념관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 때 교수, 교직원들과 충돌 과정에서 일어난 기물 파손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점거농성 중에 '삼성재단의 학내 사찰 및 제 단체 무력화 작업 문건'을 외부적으로 공개해 학교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됐던 것이 4월에 언론에 발표된 '삼성재단의 학내 사찰 및 제 단체 무력화 작업 문건'이었다고 봅니다. 교수들의 개인적인 성향에서부터 친소 관계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 내용의 문건이었습니다.

어느 교수는 DJ계열이니 어느 교수는 어떤 교수 라인이느니 하는 것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강사노조나 학생회 간부들에 대한 세밀한 동향보고도 있었구요. 명백한 불법 사찰이었는데 이를 언론에 공개한 것이 삼성재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문건에 대한 학교쪽의 반응은 좀 다르다.

"회사에도 100인 이상 사업장에는 '인사 존안 파일'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구성원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고 봅니다." 성대 대외협력처 백인욱 주임의 설명이다.

학생 징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교학부처장 정규상(법학)교수도 백 주임과 비슷한 의견이다.

"그 문서를 무조건 내사, 사찰 문건으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문서의 성격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문서를 무조적 내사, 사찰용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삼성재단 내사 문건 공개에 대한 '괘씸죄' 의혹

어쨌든 내사문건은 공개됐고 계속되는 학내분규로 인해 삼성재단 법인사무국은 철수 성명을 발표했다. 5월 12일 법인사무국이 학교를 떠나던 날, 학생대표와 학교는 최종 협상을 타결했다. 그러나 법인사무국의 철수는 교수, 교직원과 학생들 사이에는 삼성재단이 학교를 떠나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한편에서는 반총학생회(ASA;anti student association)라는 모임이 생겼고, 이들은 △장기적인 600주년 기념관 점거에 대한 학부와 대학원 총학생회의 책임있는 행동 △법인 사무국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명 작업을 벌였다. 대부분 학생들 정서인 '삼성재단 퇴진 불가' 입장을 반영이라도 하듯 8000여명이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600주년 기념관에서 점거 농성을 접는 조건으로 심윤종 총장님과 징계 최소화와 함께 8대 요구안에 대해 합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아무개 교수님과 박아무개 교수님이 중재 역할을 맡으셨구요.

그런데 점거 농성을 풀자 징계최소화에 대해 언제 합의를 했느냐고 징계 대상자 22명에게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더군요.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천막농성에 돌입하게 됐죠."

중재 역할을 했던 박아무개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당시 상황은 대화가 막혀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징계 최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너무 감정에 골이 깊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단위도 아니고 교수들 중에도 의견이 다릅니다. 더욱이 재단도 있으니까 학생들이 원하는 쪽으로만 결론이 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학교는 5차례의 회의를 거쳐 결국 6월 12일 22명에 대해 징계를 결정했다. 학교쪽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번 징계는 규모 면에서 연세대 한총련 점거 농성사태와 외국어대 정원식 총리 계란투척사건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상 교학부처장은 학부와 대학원 총학생회가 주장하는 징계 최소화 약속에 대해 "전혀 근거없는 사실"이라고 논박했다.

"학생들은 본분에서 벗어난 행위를 했습니다. 34일 동안 600주년 기념관을 점거하면서 행정업무가 마비되고 학교에서 계획했던 사업들이 모두 정지됐습니다. 학생들이 한달 동안 보인 모습은 등록금인상이라는 교육투쟁을 벗어난 월권 행위입니다."

그러나 김정대 씨는 학교의 징계처리가 괘씸죄 성격이 크다고 지적한다.

"구성원 내사를 진행한 것에 대해 삼성이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재단 퇴진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면서 구성원들에게 불안감을 고조시켰습니다. 학부, 대학원 학생회 활동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대량 징계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징계 받은 22명 가운데 2명은 강사노조에서 간사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재적과 유기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아예 이런 학교 다닐 수 없다고 자퇴서를 대자보에 붙여 놓은 상태구요."

김씨는 투쟁 과정에서 학부와 대학원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해 총의를 모아내지 못한 점은 분명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그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이 생겼던 부분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아버지가 경인지역 민주노동당 지구당 위원장이 아니냐는 유언비어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김씨의 아버지는 새천년민주당 당원이였는데 말이다.

"삼성재단의 철수를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삼성 법인 사무국이 기업의 논리를 그대로 대학에 적용시키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내사를 무마시키려는 것이나 회사에서의 무노조 논리를 그대로 학교에 적용시키려고 하는 정책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매번 강사노조 위원장을 맡는 사람은 그 다음 학기에 강의 배정에서 제외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생들의 600주년 기념관 점거 이후 기념관 앞에는 주황색 모자를 쓴 용역직원이 새롭게 등장했다. 또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미스러운 점거를 막기 위해서다. 학교는 방학을 맞아 한산했지만 4월 이후 계속된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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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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