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자동차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나이 많은 한 선배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근황을 물었는데, 선배 왈 “최근 사내에서 중국어강좌를 개설해 무료로 동료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해외서비스 업무를 하면서, 어떤 땐 몇 개월씩 현지에서 사는 등 한 10년간 중국을 들락거리다 보니 중국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그래서 독학으로 중국어를 익혔는데, 실력이 어느 정도가 되자 주변 사람들이 “우리도 좀 가르쳐달라”고 청해와 강좌를 열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어 강좌 얘기를 계기로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이런저런 중국 얘기를 들려주던 선배는, “중국이야말로 21세기 세계를 이끌어나갈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감탄사를 발한다.
20년 넘게 자동차쪽 일만 해왔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선 별로 아는게 없지만, 자신이 잘 아는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봤을 때 중국이야말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미완의 대기라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냐고 묻자 선배는 대답은 않고, “너 대형버스에 부품이 몇 개 정도 들어가는 지 아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모른다”고 내가 답하자 그는 “무려 33,000개나 된다”고 알려준다.
“중국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것 하고 대형버스에 부품이 몇 개 들어가느냐 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다시 내가 묻자, 선배는 빙그레 웃는다. 빙그레 웃으며, “바로 그 33,000개나 되는 부품을 통해 나는 중국의 무한한 잠재력을 봤다”는 것이었다.
선배의 말을 종합해 본즉, 자동차산업의 후발주자인 중국은 얼마 전부터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의 현지공장을 유치해 기술 습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고부가가치 산업인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데, 기술적인 면이나 산업수준 면에서는 우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정도로 아직 미미한 단계이지만, 자동차용어 같은 부문에서는 이미 우리를 크게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한 예로 대형버스에 들어가는 33,000여개 부품의 이름을 중국은 이미 100% 국산화 했다는 것이다. ‘버스’는 ‘크어츠어(客車)’, ‘엔진’은 ‘파뚱지(發動機)’, ‘타이어’는 ‘룬타이(輪胎) 하는 식이다.
고유의 엠블럼과 ‘Made in Korea’를 달고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 차를 수출해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긴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자동차 부품용어를 외국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와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배는 이를 보고 ‘저희 나라 언어에 대한 자긍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받아들이려는 노력 등을 통해 볼 때 이들의 현재는 우리보다 못하지만, 미래는 반드시 우리보다 앞서나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선배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으로는 과거 일 때문에 건설현장과 산업현장 등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꼈던 어떤 일 하나가 떠올랐다.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지 수십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곳곳에서 넘쳐나던 일본어 용어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찾아보면 적당한 우리말도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하는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그리고 이제 선배의 말을 들으며 그 때의 그 느낌을 되살려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 관련용어나 건설현장, 산업현장의 얘기만도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외래어들이 넘쳐나고 있고, 대화를 할 때 이런 외래어 한두마디쯤을 중간중간에 알맞게 잘 끼워넣으면 대단히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현실이 당연시되고 있다.
‘미용실’은 촌스럽고 ‘헤어아트홀’은 세련됐다는, ‘결혼식장’은 구식이고 ‘웨딩홀’은 현대식이라는 잘못된 인식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 우리의 현실을 보다가, 자동차 후진국인 중국이 무려 33,000개나 되는 자동차 부품이름 모두에 자기들 고유의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를 들으니 “중국의 미래는 우리보다 앞서나갈 것”이라는 선배의 얘기가 현실감 있게 가슴에 와닿는다.
큰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일단 뿌리가 견실해야 한다. 뿌리가 견실하지 못한 나무는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건간에 장차 큰 나무가 될 수 없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 남의 것을 받아들이되 우리 것화 하려는 노력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의 현실은 뿌리 없는 나무와도 같으며, 뿌리 없는 나무가 크게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바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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