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책임져?

【오마이베이비41】

등록 2000.01.31 00:00수정 2001.02.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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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졸리운 기미가 보이는 아이들을 거실 대나무 돗자리 위에 눕힌 뒤 불을 끄고 함께 눕는다. 큰딸 하늘이는 몹시도 졸리웠던 듯 얼마후 바로 꿈나라를 향한다. 그러나 둘째 바다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게 오늘도 한바탕 떼굿(?)을 벌인 뒤에나 잠이 들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지나 둘째 바다는 누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제 베개와 이불을 들고는 “아빠, 빠빠이” 하고 인사를 한 뒤, 안방에 있는 제 잠자리로 자리를 옮겨 눕는다.


요즘 들어 매일 밤마다 겪는 일인지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TV를 보며 거실에 누워 있는데, 잠시후 안방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둘째 바다가 베개를 들고 다시 거실로 나온다. 그리곤 내 옆에 다시 눕는다.

그러나 채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둘째 바다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아빠, 빠빠이” 하고 인사를 하고서는 안방을 향한다. 이번엔 침대로 기어 올라가 눕는다. 그리고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다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가, 다시 안방으로 향했다가를 반복한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둘째 바다에게는 이렇게 새로운 잠버릇이 하나 생겼다. 밤마다 거실과 안방, 안방 침대 사이를 열댓번은 왕복을 하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곤 한다. 졸립기는 한데 너무 더워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아무래도 제 딴에는 좀더 시원한 잠자리를 찾는답시고 그 난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베개를 들고 이리저리 잠자리를 옮겨 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잠버릇도 유전되는가?’ 싶어 살몃 웃음이 나온다. 어렸을 때 나 또한 여름이면 좀더 시원한 잠자리를 찾아 베개를 들고 몽유병 환자처럼 한밤중에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었기 때문이다.

만일 잠버릇도 유전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둘째 바다의 이 새로운 잠버릇도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아이들 외모가 못생긴 나를 닮았다고 구박(특히 집사람은 임신기간중 잘 생긴 사람만 쳐다봐야 이쁜 아기가 태어난다고 주장하며 미끈하게 생긴 연예인이나 예쁜 아기 사진들만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았는데, 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기어코 쳐다보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못생긴 나를 닮은 것이라고 지금도 주장한다)을 받고 있는 터에, 험한 잠버릇까지 아빠로부터 물려 받은 것을 알게 되면 필경 집사람의 구박이 한결 심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젠가 한번은 서울 부모님이 내 어릴 적 사진이라며 우리집에 오시는 길에 두세살 때쯤 찍은 사진 한 장을 가져 오셨는데, 이 사진을 본 집사람은 “완전 붕어빵”이라며 깔깔거리는 한편으로 “딸들 앞날을 책임(?)지라”고 한바탕 구박을 퍼부은 적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사진을 보니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거의 붕어빵이나 다름 없었다. 혈액검사나 유전자 감식 같은 거 없이도 친자 확인 소송시 충분히 법정증거로 채택되고도 남을만큼 꼭 빼닮았다.


이 사진을 본 이후로 아이들의 외모와 관련한 집사람의 나에 대한 구박은 더욱 심해진 감이 있는데, 추정컨대 아마 질투를 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자기를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아빠만을 빼닮은데 대한 질투….

그런 내 짐작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집사람의 태도다. 걸핏하면 “우리 애들만큼 예쁜 아기 봤냐?”며 아무에게나 자랑을 일삼으면서도, 유독 내 앞에서만 “여자애들인데 이렇게 못생긴 아빠를 닮아서 어쩌냐?”, “책임져라” 어쩌고 하며 생떼를 쓴다.

이런 판국이니만큼 만일 이리저리 잠자리를 넘나드는 험한 잠버릇마저 나를 닮아 그런 것임을 알게 된다면, 아마 집사람은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누? 이미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억울하면 니두 소설 속의 누군가처럼 한번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살펴봐라. 어쩜 발가락이라도 어디 한 군데쯤은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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